홍윤희 사단법인 무의 이사장

그래도 대체로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AI 기술을 적절히 잘 활용하면 장애인들의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지점은 ‘적절히 잘 활용하면’이라는 단어에 있다.
몇 년 전 오픈AI가 시각장애인들이 도움 없이 혼자 택시를 타는 광고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비 마이 아이즈(Be My Eyes)라는 시각장애인 도움 앱과 협업해 챗GPT-4o기술이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광고에서는 시각장애인이 휴대폰과 흰 지팡이를 들고 길을 걸어가며 음성으로 도보 내비게이션을 따라가 정확한 위치에서 택시를 탄다. 폰 안에 깔린 AI가 컴퓨팅 비전을 통해 내비게이션 음성을 안내한다. 이 동영상은 이상향에 가깝고 아직 개발되고 있는 기술이다. 애플과 컬럼비아대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거리 탐색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오기도 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독립 보행의 안전성이다. 주변의 돌발 환경에 얼마나 대처할 수 있을지 개개인의 신체 능력이나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져서다.
난청을 가진 장애 당사자 팀원과 한동안 함께 일하며 AI 기술을 소통에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 가늠해 본 적이 있다. 해당 팀원은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면 알아들을 수 있지만 얼굴을 돌리고 이야기하거나 여러 사람이 한데 섞여 이야기하는 환경에서는 잘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문자통역이다. 문자통역사가 속기 형태로 타이핑을 해 주는 것을 화면을 통해 접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문자통역을 쓰긴 어려워서 화상회의의 AI 음성인식 기능을 사용했다. AI 음성인식 기능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러 사람이 겹쳐서 이야기하면 잡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차례대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결론적으로는 기술을 활용할 수는 있지만 사람이 하는 문자통역만큼 정확하게 전달하기는 어려웠다.
각종 AI 기술이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일부 도울 수 있고, 청각장애인 중 난청인의 일상 소통을 일부 도울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하는 건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애플 기술이 상용화되는 걸 기다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시각장애인들 독립보행에 당장 도움이 되도록 점자블록을 제대로 잘 깔아 놓는 것이다.
기술 도입 과정에서 당사자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들의 소통에 대해 논할 때는 소통 방식의 다양성을 이해해야 한다. 청각장애인은 스스로를 ‘농난청인’이라고 부른다. 청각장애는 ‘잘 듣지 못함’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농난청’은 해당 당사자가 ‘어떤 언어로 소통하는지 소통 방식에 초점이 맞춰진 표현이다. 농인은 한국수어가 제1언어다. 난청인은 한국어가 제1언어이기 때문에 문자통역이 좋은 방식이고 잔존 청력으로 알아듣거나 입모양을 보고 알아듣는 등 사람에 따라 다양한 방식을 쓴다. 그러므로 기술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직접 개입하는 문자통역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요즘 ‘배리어 프리 키오스크’ 도입에 대한 논란이 높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키오스크만 가지고 다양한 장애를 가진 고객들이 이용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기계 한 대가 시각장애인, 농난청인,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 발달장애인까지 모두 포괄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AI 기술을 기업들이 도입하는 주된 이유는 인력을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함이다. 장애인의 소통이나 이동은 같은 논리로 보면 안된다. 비용으로 보기 전 기본권으로 봐야 한다. AI 기술이 인간에게 이로워지고 특히 약자에게 도움이 되려면 기술 도입 과정에 장애 당사자들이 충분히 참여해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당장 필요한 물리적 인프라를 AI가 모두 대체할 수도 없고 대체해서도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