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항공우주(KAI) 관계자의 토로다. KAI의 수난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현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 라인으로 분류되는 강구영 KAI 사장은 새 정부 출범 첫날 사의를 표명했다. 임기를 3개월 남긴 채였다. 강 사장 흔들기는 몇 달 전부터 시작됐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강 사장을 스마트플랫폼사업 중단 및 허위사실 유포, 폴란드 FA-50 수출 선수금 관리 부실 등의 내용으로 고발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KAI는 풍파를 겪었다. KAI의 대주주는 지분 26.4%를 가진 국책은행 수출입은행이다. 때문에 관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KAI는 압수 수색까지 당한 트라우마가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방산 적폐 척결을 주문했고 첫 사정수사 대상으로 오른 게 KAI였다. KAI와 박근혜 정부 간 유착 의혹이 규명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다름 아닌 윤 전 대통령.
분식회계라는 혐의가 씌워졌다. 검찰은 경남 사천 KAI 본사, 서울 중구 KAI 서울사무소, 협력업체까지 압수 수색을 진행했다. 하성용 KAI 전 대표는 2013~2017년 성과 포장을 위해 매출 5538억 원을 부풀린 혐의로 2017년 구속기소 됐다. 측근과 함께 20억 원 상당의 회삿돈을 빼돌리고, 2013~2016년 국회의원 동생의 조카, 전직 공군참모총장 공관병 출신, 사천시 국장 자녀 등 15명을 부정 채용했다는 혐의도 더해졌다. 검찰은 분식회계 혐의를 포함해 10여 개 죄목을 달아 하 전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그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먼지털기식 수사의 결론은 어땠을까. 7년 넘게 진행된 재판 결과가 지난 2월 나왔다. 대법원은 핵심혐의인 5000억 원대 분식회계 혐의를 포함 대다수 혐의에 무죄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 전 대표는 회사 공금으로 산 상품권 1억8000만 원어치를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와 2013~2016년 신입 사원 채용에서 탈락한 14명을 부당하게 합격시킨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았다.
KAI에 남은 상흔은 깊다. KAI는 해외 수주, 내수 사업이 모두 중단되면서 자금 융통까지 어려움을 겪었다. 김인식 당시 부사장은 사망했다. 직원들 역시 7년 동안 재판에 불려 다니며 심적 고통을 겪었다. “혐의가 제기됐을 뿐인데 유죄가 확정인 것처럼 다들 관심 가지더니 재판 결과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네요”. KAI 관계자가 쓴웃음 지으며 한 말이다.
KAI는 민간기업이지만 동시에 국내 항공우주 기술 자립 및 발전에 중요한 공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장이 교체되고, 회사가 존폐 위기까지 내몰리게 된다면 이는 큰 리스크다. ‘방산 4대 강국’을 앞세운 새정부가 자국 기업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는가. 수난사 굴레를 끊을 방법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