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톡!] 상생 꾀하는 ‘상표공존동의制’

이형진 변리사

상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팔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소비자가 상품을 기억하고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힘은 브랜드에서 나오고, 그 브랜드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핵심 수단이 바로 상표다. 하지만 과거의 우리나라 상표 제도는, 누군가가 유사한 상표를 먼저 출원하거나 등록한 경우, 후출원인은 상표 사용 분야가 다르더라도 등록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에 따라, 기존 상표 제도는 상표 간 충돌 여부를 표장과 지정상품의 형식적 유사성만으로 판단하여, 현실의 공존 가능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상표 사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2024년 5월 1일부터 ‘상표공존동의제도’가 시행됐다. 기존 상표권자의 동의가 있으면 유사한 후출원상표도 등록이 가능하도록 해, 심사관의 일방적 판단이 아닌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해 상표 공존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상표공존동의제도의 실효성은 실제 실무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의료기기 제조업체 A기업은 자사 상표 출원에 대해 선등록된 유사 상표가 있다는 이유로 의견제출통지를 받았고, 당초에는 선등록 상표에 대한 불사용취소심판을 고려했으나 시간과 비용 부담이 컸다. 이후 상표공존동의제도 시행에 따라, 선등록권자인 B기업으로부터 공존동의를 받아 별도의 심판 없이 상표 등록에 성공하였고, 이를 통해 분쟁 없이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처럼 상표공존동의제도는 특히 브랜드 구축 초기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이나 소상공인, 중소기업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제도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공들여 만든 브랜드를 단지 유사한 상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해야 하는 상황은 이들에게 큰 타격일 수 있다. 상표공존동의제도는 이러한 리스크를 협의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브랜드 교체에 따르는 비용을 줄이고, 법률적 분쟁 없이 자율적인 해결을 가능하게 하며, 선의의 사업자가 자신의 브랜드를 정당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상표는 단지 상품과 서비스의 이름이 아니라, 기업의 얼굴이며 고객과의 약속이다. 상표공존동의제도는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당사자 간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상생의 방식으로 시장을 넓혀가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식재산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이 제도를 통해 기회를 찾고, 지식재산권을 경쟁의 수단을 넘어, 공존의 수단으로 활용해나가기를 기대해본다. 이형진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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