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년 만에 또 교사 사망… ‘학교 민원 체계’ 바뀐 것이 없다

▲지난 22일 제주 한 중학교 교사가 학생 가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가운데 교육청의 교육 활동 보호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서울 경복궁 영추문 앞에서 열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 36주년 전국교사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교육 대개혁 실현, 안전하게 교육할 권리보장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제주도의 한 중학교에서 숨진 채 발견된 40대 교사 A씨가 개인 휴대전화로 걸려오는 학생 가족 민원에 시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발단은 A씨가 올 3월 초 평소 결석과 흡연 등 학칙 위반을 하던 학생의 담임을 맡아 “왜 학교에 나오지 않느냐”며 혼내면서부터다. 학생 가족은 이때 폭언이 있었다며 교육청에 아동학대 취지로 민원을 제기했다.

유족에 따르면 학생 가족은 하루에 많게는 12차례씩 A씨에게 민원 전화를 했다고 한다. 오전 6시 또는 자정에 전화를 걸기도 했다. 유족 측은 “A씨가 스트레스에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했다. 사망 전날에도 제자에게 ‘아프면 병원 들러서 학교 오세요’라고 문자를 남겼던 A씨는 가족과 제자한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재작년 서울 서이초등학교 2년 차 교사도 지속적인 학부모 민원에 시달린 끝에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땅에 떨어진 교권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국가적 충격이 컸다. 악성 민원, 학부모 갑질, 욕설과 폭행에 시달리던 교사들도 분노해 길거리로 나섰다. 교육 당국은 부랴부랴 학교에 민원 대응팀을 두는 등 ‘교권 회복·보호 강화 종합 방안’을 발표했다. 학교에서 해결이 안 되면 교육청에서 해결하겠다고 하는 등 모든 민원을 개인 교사가 아닌 학교와 교육청이 대응하는 체제로 바꾸는 게 핵심 골자였다.

그러나 실제 개선이 이뤄진 것으론 믿기 어렵다. 학교 측은 여전히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고, 문제 학생에 대한 제재도 거의 없다. A씨 사례에서도 체계적인 민원 처리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이런데도 당국은 교권 보호 종합 대책을 ‘적극 행정 우수 사례’로 꼽으며 자화자찬했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공교육의 핵심 주역은 교단을 지키는 현직 교사들이다. 그 교사들의 사기가 회복 불능수준으로 저하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최근 스승의 날을 앞두고 전국 교원 55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교사 90%가 “저연차 교사의 이탈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교권 침해’다. 교단의 무력감이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전국 교대 수시 합격선이 내신 6, 7등급까지, 정시 합격선이 4등급까지 내려간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26일 A씨를 애도하면서 “교권이 쓰러지면 학생의 권리도 함께 무너진다”며 “선생님에 대한 존중은 모두가 행복한 학교 공동체를 만드는 기초”라고 했다.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하다. 교권이 회복되지 못하면 교단은 기피 구역이 되고 만다. 공교육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교권 추락은 민주화 이후 권위주의 청산 요구 속에 교육 정책이 학생과 학부모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치우치면서 초래된 부작용이다. ‘내 자식만 귀하다’는 풍조가 바뀌지 않고는 교권 회복은 요원하다. 학생 인권 쪽으로 과도하게 기울어진 교육 환경을 균형 있게 바로잡는 것이 당면과제다. 말잔치는 그만하고 실효성 있는 교권 보호책을 내놓아야 한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서로 존중하는 건강한 교육 생태계가 없다면 백년대계도 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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