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현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트럼프 행정부의 최종 정책 목표는 중국이다. 노골적으로 러시아 편을 든다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려는 이유도,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모두 미국의 힘을 중국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미국의 영원한 우방이던 유럽이 소외되었다.
바이든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유럽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었다면, 트럼프는 유럽을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본다. 유럽에 ‘중국은 미국이 처리할 것이니, 너희들은 러시아나 신경 쓰라’라는 식이다.
유럽 내에서도 트럼프에 대해 실망의 목소리가 크다. 미국이 자유 세계를 이끌 자격이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금까지 유럽은 미국이 제안한 의제를 따라가는 처지였지만, 이제부터는 독자적인 태도를 보이겠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의 사이가 틀어지면 중국이 비집고 들어가는 공간이 나올지도 모른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통일전선 이론은 주적과 싸우기 위해 전략적으로 다른 세력과 연합할 필요성을 가르친다. 적의 적은 내 편이다.
2023년 유럽에서 출간된 연구보고서에서는 미국이 동맹국과 멀어지면서 독자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유럽 경제가 나빠지는 상황이 오면, 중국이 유럽 기업의 기술을 쉽게 이전받게 되어 기술 독립에 성공할 수 있다고 예측한 바 있다(MERICS, ‘Shaky China’).
중국은 유럽에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서 다자주의를 부활하자고 속삭인다. 지난 2월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영국, 아일랜드, 독일을 순방했다. 왕이는 외교 테이블에서 거친 발언을 자주 하는 인물이지만, 이번 유럽 순방에서는 상호 협력과 소통을 부드럽게 강조하였다.
지난주에는 유럽연합(EU)과 중국이 오는 7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덧붙여 중국의 연구기관들은 유럽에 대해 ‘미국 없는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군불을 땐다.
그래도 유럽이 표변하여 중국과 가까워지란 쉽지 않다. 첫째,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지만, 중국은 무조건 러시아 편이다.
둘째, 중국산 전기차의 유럽 진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유럽 자동차 산업의 생태계가 큰 타격을 받았다. 중국이 유럽과의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유지하려면 유럽으로 수출되는 제품을 줄이고, 더 많은 유럽산 제품을 수입해야 한다. 그러나 자국 경제에 여유가 없는 중국은 유럽의 요구를 들어줄 형편이 안된다.
자신을 밀어내는 미국과 신뢰할 수 없는 상대인 중국 사이에서 유럽은 미국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를 내는 다자주의를 선호한다.
지난달 독일 외교협회가 발행하는 잡지(IPQ)에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분석 기사가 실렸다(A new German strategy toward China). 원래 유럽은 G7을 그대로 유지하길 바랐고, 미국은 한국, 호주, 인도, 러시아 등으로 확대하길 원했다. 트럼프는 2020년에 G7을 G11으로 확대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런데 G7에 속한 유럽 국가의 힘만으로는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고, 중국을 막는 데 한계가 있으니 한국, 호주, 인도를 끌어들이자는 제안이다. 세계 경제의 혼란 속에서 우리가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역할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 세계, 가치동맹국 사이에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