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행시패스하고도 한은 왔는데…

입력 2011-10-2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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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그들은 누구인가]⑤옛 영광 그리는 韓銀맨

한국은행의 국장급 이상 직원 중에는 내로라하는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한 인재들이 수두룩하다. 최고로 꼽혔다는 경기고-서울대를 졸업한 KS라인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당시에는 한국은행 떨어지면 산업은행으로 가고, 산업은행 떨어지면 외환은행이나 시중은행으로 하향지원했다.

한은 직원들도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행정고시에 붙고도 한은행을 택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관료 못지 않게 권한도 많았죠.”

학문적 성취 말고도 ‘권력의 달콤함’까지 얻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적어도 과거엔 그랬다.

한은 내 기구였던 은행감독원이 지난 1999년 금융감독원으로 통합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은의 권한은 막강했다. 시중은행장 자리는 한은 출신이 점령했다. 한은에서 부장만 달아도 은행 감사 자리는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시중은행의 K부행장은 “당시에는 한은 조사역이 전화를 걸어와 대출을 줄이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은감원이 검사를 나왔다 하면 현재의 금감원 보다 큰 위세를 떨쳤죠”라고 회고했다.

지금의 한은 사람들에게 ‘권력’이란 말을 꺼내면 손사래를 친다. 은행 검사권은 제한적인데다 제재권도 없는 터에 권력이라니, 말도 안 된다는 반문이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탓일까. 한은은 직장으로서의 위상도 한층 떨어졌다. 지난해 한은에 입행한 신입행원 중 한명은 법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기 위해 은행을 그만뒀다.

“현재도 한은에 들어오는 게 힘든 건 사실입니다. 시험도 어렵습니다. 여전히 좋은 직장이기도 하죠. 하지만 행시 1, 2순위로 꼽히는 정부 부처에 비하면 직장 선호도에서 한은은 이보다 아래죠.”(A신입행원)

젊은층에게 한은의 매력이 떨어진 데는 뒤떨어진 처우도 한몫했다. 지난해와 올해 한은에 입행한 78명의 신입직원은 월 기본급으로 160만원 가량 받는다. 세계 금융위기로 신입직원 임금 삭감이란 된바람을 피하지 못한 탓이다. 이들에게 지난 9월 국정감사 때 제기된 ‘한은 직원 4명 중 1명은 억대연봉자’란 지적은 다른 세상 얘기다. 한은 관계자는 “이 같은 처우가 지속되면 직장이탈이 가시화될 것이란 공감대도 형성됐다”고 털어놨다.

한은은 아직까지 신입행원 임금 원상복귀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물론 변화의 봄바람도 분다. 지난 8월 임시국회에서 한은법 개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금융안정 기능을 추가한 것이 골자다. 김중수 한은 총재도 이에 대해 “항상 중앙은행 영역이 줄었는데 처음으로 늘었다”고 평가했다. 개정안은 오는 12월17일에 발효된다.

시중은행도 개정안 통과 이후 한은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한은의 공동검사 권한이 강화된 탓이다. 얼마전 시중은행의 B부장은 한은 금융안정분석국에서 전화를 받았다.

“지역별 여수신 동향에 대해 상세히 보고하라는 전화였습니다. 통상 여수신 정보에 대한 업무는 통계국이나 금융시장국에서 합니다. 금융안정분석국에서 전화가 온 것은 이례적이었죠. 시누이 노릇을 하려는 사전 정지 작업은 아닌지…”라며 B부장은 말꼬리를 흐렸다.

한은은 이에 대해 기우라고 일축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트렌드가 변했습니다. 개별 은행에 대한 지도 대신에 거시경제에 대한 책임이 강화됐습니다. 한은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도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하는 것입니다.”(한은 C고위 관계자)

최소한의 변화일지, 최소 노력으로 최대 이익을 탐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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