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다주택 공직자 집 팔라더니 결국 헛말이었나

입력 2020-03-2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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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서울과 수도권 등에 집을 여러 채 보유한 청와대 참모들에게 사는 집 한 채만 남기고 팔라고 권고했다. 국토교통부의 ‘12·16 부동산 대책’ 발표에 맞춰, 다주택자들의 매도를 유도하는 데 공직자들이 솔선함으로써 집값을 안정시키자는 의도였다. 사실상 지시에 다름 아니다. 곧바로 정부 부처 고위 공무원들에게도 같은 압박이 가해졌다.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20년 공직자 정기 재산변동현황을 26일 공개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올해 3월 2일 신고한 내용인데, 고위 공무원 3분의 1가량이 여전히 자신과 배우자 등의 명의로 집을 두 채 이상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산공개가 의무화된 중앙부처 공무원은 750명으로, 대통령과 장관급 이상, 대통령 비서실 수석급, 차관급, 국립대학 총장, 고위공무원단 ‘가’급과 함께 공직유관단체장 등도 포함된다.

이들 가운데 248명이 집을 두 채 이상 갖고 있었다. 2주택자는 196명, 3주택자 36명, 4주택 이상도 16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반면 중앙부처의 다주택 보유 고위공무원 중 극히 일부인 20여 명 정도만 작년이나 올해 초 집을 판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의 다주택은 아니지만, 노영민 비서실장도 서울 서초구와 충북 청주에 아파트 두 채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노 실장 말고도 청와대 참모진과 정부 장차관 중에서 여전히 서울 강남 3구에 집을 보유한 다주택자가 여러 사람 있다.

다주택자들이 집을 처분하려 해도 금세 팔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개인의 재산권까지 침해하는 무리수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집값을 잡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다주택 고위 공직자들에게 집을 팔라고 요구한 뜻은 이해한다.

그러나 아무 실효성도 없이 결국 보여주기 행정에 그치고 있다. 애초 전문가들과 시장의 반응도 냉소적이었다. 청와대와 정부가 주택의 수요와 공급으로 시장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를 무시한 채, 다주택자의 투기를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규정한 것부터 잘못된 접근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다주택 고위 공직자들이 보유한 몇십∼몇백 채 집을 매물로 내놓는다고 해서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정부는 그동안 수도 없는 부동산 대책과 세금 올리기를 통해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라고 압박했다. 서울 강남이 그 표적이다. 강남 집값을 가라앉히는 데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그런데 다주택 고위공직자들이 정작 집을 팔아도 강남이나 수도권의 집은 남기고 지방 주택부터 처분한다. 이게 시장에 주는 신호는 설명할 필요도 없고, 국민들의 공감을 사기도 어렵다. 오히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신만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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