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소법 숨은 발톱] 기준 모호 ‘위법계약 해지권’…‘도덕적 해이’ 부추겨

입력 2020-02-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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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 부작용 우려…법안 통과 땐 시행령 제정 필요

금융권이 27일 임시국회에서 통과가 유력한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안(이하 금소법)’을 놓고 우려의 시선이 깊다. ‘위법계약의 해지’ 조항 때문이다. 판매자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최대 5년 내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명시하겠다는 것인데, 계약해지 요건이 구체적이지 않아 입법 취지와는 다르게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법안 통과 땐 구체적인 시행령 제정 필요성이 요구된다.

◇금소법의 숨은 발톱, 계약해지권이 뭐길래? = 금소법 제48조 ‘위법계약의 해지’는 금융상품 판매업자가 영업행위 준수사항(△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 의무 △불공정 행위 금지 △부당 권유 금지 △허위·과장 광고 금지)을 위반해 계약을 체결한 경우, 금융소비자에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간(5년 이내) 내에 해당 계약의 해지 요구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재 여야에선 금소법에 대한 이견이 없고, 최근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 사태와 겹치며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소법이 본회의를 통과해 정식 발효되면 일반 예금은 물론 보험, 대출상품을 팔 때도 적합성과 적정성 원칙을 지켜야 한다.

◇구체적인 기준 부재… 사각지대 활용한 부작용 우려 = 금융권은 금융소비자에게 불리한 계약이 계속 유지되는 문제를 ‘위법계약의 해지권’을 통해 소비자 보호를 하겠다는 입법 취지는 공감하지만, 향후 금융시장 적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우선, 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계약해지 요구권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것이다. 제정안에는 영업행위 준수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위법성 판단 기준을 명시하지 않고 있는데, 이와 같이 포괄적으로 계약의 해지요구권을 인정하면 금융상품에 따라 거래 안정에 미치는 효과가 다르게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대출성 상품의 경우 계약기간 중 일시적으로 대출 상환이 불가능한 소비자가 채무불이행의 책임을 모면하고자 계약 해지요구권을 악용할 소지가 있다. 이로 인한 분쟁 해결 과정에서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보험업권의 경우는 다른 금융상품과 달리 이미 청약철회제도(30일 이내 청약철회), 품질보증제도(3개월 이내 계약취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소비자에게 5년 이내 계약해지권을 부여하는 것은 당초 입법 취지와 달리 해지권 악용 등으로 인한 불필요한 계약해지 및 민원 등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제정안과 같이 광범위한 해지요구권을 인정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손해배상이라는 또 다른 구제수단을 통해 피해 회복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여지는 판매행위규제의 경미한 위반에 대해서까지 계약해지권을 부여할 경우, 계약해지권 부여를 통해 달성하려는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침해되는 금융기관의 영업상 이익이 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후 6대의무를 지켰는지 입증하는 방법도 문제다. 금융회사는 금융거래의 적법성 입증 및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 대비해 거래마다 입증자료를 수집·보관해야 하므로, 그에 따르는 막대한 비용부담을 고려한다면 이중의 부담을 금융기관에 강요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금융상품별 특성 고려해 차등 적용해야” = 금융권 전문가들은 금융상품별 특성 등을 고려해 계약해지 기간을 차등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제정안은 5년 이내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간 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는데, 적용대상이 투자성 상품, 보장성 상품, 대출성 상품 등 모든 종류의 금융상품을 포괄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상품에 따라 계약기간이 매우 다양한 현실을 감안할 때, 해지기간을 일률적인 기간으로 설정하기보다 금융상품의 특성, 계약기간 등을 감안해 합리적인 차등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라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나, 부작용 방지 대비책을 향후 시행령에 충분히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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