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났다] 도쿄올림픽 방사능 포스터 게재한 '반크'…박기태 단장 "日역사세탁 막겠다"

입력 2020-02-21 16:00수정 2020-02-2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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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원 대 1만원의 싸움" 자평…"반일단체 아냐" 레이시즘 반대 포스터도 공개

▲20일 만난 박기태 반크 단장은 "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를 이용한 일본의 '역사 세탁'을 막고 싶다"라고 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고작 1시간 정도 게시된 세 장의 포스터에 일본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말. 보수언론도 비판에 가세했다. 곧이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불편한 반응을 내비쳤다. 작은 민간단체, 한국의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가 제작한 포스터가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2002년 무렵 설립된 반크는 세계 속에 한국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중심에는 박기태 단장이 있다. 그가 설립한 반크는 청소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사이버외교관, 한국홍보대사로 육성하는 교육에 앞장선다. 박기태 단장을 중심으로 독도, 인권, 역사 바로잡기 운동도 진행한다.

▲반크와 이제석 이제석광소연구소 소장이 제작한 도쿄올림픽 패러디 포스터. 방사능에 대한 경각심을 심기 위해 만들었다. (출처=반크 페이스북 캡처)

얼마 전 반크는 도쿄올림픽ㆍ패럴림픽을 앞두고 일본의 방사능 안전에 문제를 제기하는 포스터를 제작해 서울 종로구 율곡로에 있는 주한일본대사관 벽에 붙였다. 시간은 단 1시간. 이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이를 공개하면서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20일 이투데이와 만난 박기태 단장은 "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를 이용한 일본의 '역사 세탁'을 막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올림픽을 두고 "독도 문제, 방사능 등 그간 반크가 일본 정부와 싸웠던 모든 것이 응축된 격전장"이라고 강조했다.

▲박 단장은 "일본이 교과서로 다음 세대에 잘못된 사상을 심어주려고 한다"면서 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도쿄올림픽 홍보 1조 투입한 일본…"우리는 1만 원으로 맞상대"

화제를 모은 도쿄올림픽 포스터는 '광고 천재' 이제석 이제석광고연구소 소장이 참여한 작품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탁월한 기획가로 평가받는 그가 참여해 짧은 시간 동안 대대적으로 도쿄올림픽의 문제를 홍보할 수 있었다. 이 소장이 재능 기부로 비용도 거의 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석 소장이 먼저 반크를 도와주고 싶다며 찾아왔어요. 마침 일본 정부가 올림픽 때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쓴다고 했던 시기죠. 우리도 역량 있는 기획자가 필요한 시점이었는데 이 소장이 반크를 찾으면서 일본과 싸워볼 힘이 생겼어요. 욱일기, 방사능, 일본 교과서를 중심으로 기획하게 됐죠."

이렇게 탄생한 도쿄올림픽 포스터는 일본의 해외 홍보 예산에 준하는 효과를 냈다고 박 단장은 자평했다. 포스터가 알려진 이후 해외최대 청원사이트인 체인지에서 6만 명의 서명을 받으면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또, 구글에서 욱일기를 영어(The Rising Sun Flag)로 검색하면 일본 외무성의 설명과 반크 청원 게시글이 함께 첫 번째 페이지에 나온다. 3700만 개 게시물 중에서 말이다.

"일본이 홍보 일을 정말 잘해요. 한 해 국제 홍보 예산만 1조 원을 투입하죠. 로비도 잘하니까 IOC가 일본 정부의 항의에 못 이겨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거예요. 저희는 이 포스터 1만 원에 만들었습니다. 이 소장의 재능기부에 저희의 아이디어를 합친 작품이죠. 이게 반향을 일으키니까 IOC가 우리같이 작은 단체에 반응했다고 봅니다."

◇반크는 반일단체? "옳은 일을 위해 싸운다"

독도나 욱일기 문제에 관해 패러디와 비판을 하자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반크를 '반일단체'로 보는 시각이 많다. 후원자가 많지만, 이따금 사무실로 "한국과 일본 사이를 왜 안 좋게 만드느냐"는 전화가 온다고 한다. 하지만 박 단장은 단호히 말했다. 반크는 '반일단체'가 아니라고.

"우리는 일본 내 우익세력과 싸우는 겁니다. 일본이 과거 아시아에 막대한 고통을 줬는데도 이번 올림픽으로 그 역사를 세탁하려는 것, 방사능으로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죠. 오히려 일본 내 우익 정치인이 한국과 일본 사이를 나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지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왜 일본 만큼이나 중국과 북한을 비판하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박 단장은 이 역시 오해라고 선을 그었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자신들의 것으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 당시 가장 치열하게 항의하고 싸운 곳이 반크라고 했다. 결국, 반크는 역사 왜곡, 안전과 평화 등 보편적 가치를 위해 활동하는 셈이다.

"저와 반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특정 이념이나 정부가 아닙니다. 반일이나 반중 또는 친일과 친중이 아니란 뜻이죠. 저희가 하는 일에 정부와 협조한 적도 없습니다. 단지 세계환경이나 인권, 평화에 관심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한 것이죠. 편 가르기를 하지 않고 자유롭게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습니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요."

▲독일 주산지 '슈피겔'이 만든 표지를 비꼬는 반크의 포스터. 인종차별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출처=반크 페이스북 캡처)

◇화제를 몰고 온 또 다른 포스터 'DER SPIEGEL, Made in Racism'

반크는 또 한 번 세계가 주목할 만한 포스터를 만들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잡지 표지를 패러디한 것. 잡지 표지는 빨간색 방역복을 입은 남자를 배경으로 '코로나바이러스,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반크는 이를 '슈피겔, 메이드 인 레이시즘'이라고 패러디해 독일의 인종차별을 꼬집었다.

"유럽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중국인은 물론 일본, 한국인까지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어요. 이 사실에 분노했습니다. 홀로코스트도 처음은 유대인 차별이었습니다. 중국이라는 한 나라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나중에는 아시아 혐오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어요.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포스터를 제작했습니다. 잡지사에서 인종차별을 조장해서는 안 되죠. 특히 독일에서 말이에요."

인터뷰 마지막쯤, 박 단장은 소망을 내비쳤다. 현재 진행되는 청원의 사람이 더 많이 늘어나길 바라는 것. 이는 단지 숫자가 늘어나고 반크가 유명해지려는 것이 아닌 더 많은 여론을 모으고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다.

"많은 사람이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청원에 서명한 사람들이 제가 쓴 글이나 반크 포스터를 홍보하고 있어요. 유학생과 국외교포들도 많이 도와주고 있고요. 저희 같은 작은 단체가 어떻게 일본과 맞서겠어요? 하지만 온라인으로 끌어오면 충분히 해볼 만 합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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