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의 만년필 이야기] 43. 만년필 세계의 명작 여덟 개

입력 2019-09-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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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연구소장

이집트 쿠푸 왕의 피라미드, 바빌론의 공중정원, 그리스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일부이다. 이렇게 정해진 것이 기원전 2세기경이라니, 이런 방식은 꽤나 오래된 구식(舊式)이다. 사전에서 구식을 찾아보면 ‘예전의 형식이나 방식 또는 케케묵어 시대에 뒤떨어짐’으로 나와 있지만 어떤 대상을 쉽게 설명하는 데 이것만 한 것이 없다. 마치 구식인 만년필이 지금도 최고(最高)의 필기구(筆記具)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워터맨58’. 주의할 것은 처음 등장했다고 이들 중 1등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상 첫 번째라는 점이다. ‘워터맨58’은 1910년대 초반에 등장했다. 워터맨은 아시다시피 1883년 모세관 현상을 이용해 실용적인 만년필 세계를 연 만년필의 종갓집이고, ‘58’은 그 워터맨이 약 30년 동안 성공한 것들의 집합체(集合體)였다. 만년필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펜촉, 셔츠에 꽂을 수 있는 클립, 스포이트 없이 잉크를 넣을 수 있는 잉크 충전방식이 적용되었다.

셰퍼 ‘라이프 타임’이 두 번째이다. 셰퍼는 ‘워터맨58’이 만들어질 때 즈음인 1913년 설립된 회사이다. 1910년대까지 약 30년 동안 워터맨의 시대였다면, 1920년대는 셰퍼가 주도했다. 1920년 셰퍼는 워터맨이 만든 ‘58’에 평생보증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더해 ‘라이프 타임’을 내놓았다. 사용자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도록 펜촉을 두세 배 두껍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세 번째는 파커 ‘듀오폴드’. 파커는 워터맨만큼 오래된 회사였지만, 워터맨이 1등을 달리는 동안 이렇다 할 히트작은 없었다. 1921년 파커는 셰퍼의 성공에 힌트를 얻은 25년 보증에 새로운 개념인 컬러를 마케팅 전면에 내세운, 몸체가 빨강색인 ‘듀오폴드’를 내놓았다. 검정색이 주종이었던 만년필 세계에 빨강색 만년필은 눈에 확 들어왔고 이것은 크게 성공하였다.

▲만년필의 암흑기에 그 세계를 지켜낸 파커75.
1929년엔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만년필이 연달아 등장했다. 1920년대 평생보증과 컬러 등 새로운 것이 등장했지만, 만년필은 원통형의 몸체와 흔히 고무튜브라고 말하는 고무색(rubber sac)에 잉크를 저장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또 1929년은 대공황이 시작된 해라 사람들은 여간해서 지갑을 열지 않았다. 이 어려운 시기 셰퍼는 위와 아래가 뾰족한 유선형 만년필인 ‘밸런스’를, 독일의 펠리칸은 고무색이 아닌 몸통에 직접 잉크가 충전되는 새로운 방식인 피스톤 필러의 ‘펠리칸 만년필’을 내놓았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는 모두 파커 만년필이 차지했다. 1941년과 1963년에 각각 출시된 ‘파커51’과 ‘파커75’이다. 펜촉이 숨겨진 것으로 유명한 ‘51’은 혹서와 혹한은 물론 항공여행에도 문제가 없었다. 그야말로 만년필 세계의 현대를 연 것이다. 또 워터맨이 구축한 전형적인 펜촉의 세계를 허물어 원통형, 삼각형, 마름모 등 다양한 펜촉이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75’는 몸체 전체가 금속으로 만들어진 올메탈(all metal) 시대를 연 것이 가장 큰 공로이다. 그리고 볼펜의 강세로 암흑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만년필 세계를 지켜낸 것 또한 ‘파커 75’가 들어가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마지막 여덟 번째는 유일하게 현재도 생산되는 ‘몽블랑 149’이다. ‘149’는 1952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함없는 모습으로 생산되고 있는 최장수 만년필이다. ‘149’는 앞서 말한 만년필들의 장점을 대부분 흡수한 것이다. 워터맨이 구축한 전형적인 펜촉, 셰퍼의 유선형, 펠리칸의 잉크 충전 방식 등 모든 것이 녹아들어가 탄생한 것이 ‘149’이기 때문이다.만년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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