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환의 Aim High] 약한 자는 살아남지 못하는 지옥의 불반도

입력 2019-09-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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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부장

지도에서 헬조선 한반도 주변을 둘러보면 단군의 위치선정 능력에 의문을 품게 될 때가 있다. 만만해 보이는 이웃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자리이다 보니 말갈족, 흉노족, 거란족 등이 흔적 없이 사라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한반도 동이족만 유독 자유로운 영혼으로, 그것도 주변 강대국 깔보며 따로 노는 모습은 가히 인류사의 미스터리라 불릴 만하다. 우리 자신도 잘 모르는 힘의 원천은 어디일까. 조용히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면 감당 못할 일을 당하는 생태계에 힌트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아재들이라면 중국매미의 요란한 울음소리를 기억한다. 여름만 되면 밤이고 낮이고 온 동네 떠나가라 왱왱대던 중국매미는 열대야와 컬래버를 이뤄 수면 부족을 일으키는 밉상이었다. 게다가 나무에 붙은 뒤 수액을 닥치는 대로 빨아먹어 말려 죽이고 사람까지 공격하는 포악한 녀석이라 순둥이 토종매미는 노숙자가 돼 산천을 떠돌아야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부부젤라 같던 중국매미 소리가 잦아든 대신 맴맴맴 정겨운 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한반도에는 ‘꽃매미벼룩좀벌’이라는 터줏대감이 있다. 이 녀석은 꼭 개미처럼 생겼는데, 벌집을 만들지 않고 꽃매미 알 속에 자신의 알을 낳은 뒤 그 양분을 빨아먹게 하는 기생 방식으로 번식한다. 어느 날, 꽃매미벼룩좀벌 육아 커뮤니티에 “중국매미알에 산란을 했더니 애기들이 잔병치레도 없고 발육이 남다르더라”는 후기가 올라왔다. 맘카페에 한 번 소문이 나자 중국매미들은 이날로 벼룩좀벌 맛집이 되고 말았다.

천조국 출신 파괴왕 배스와 블루길, 이들은 다른 물고기나 곤충은 물론 알과 민물새우까지 먹어치워 하천 생태계의 씨를 말리던 무법자다. 이 구역 일진이던 가물치는 옆 웅덩이에 도장깨기를 하고 다니는 놈들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맞짱을 뜨기로 했다. 미국산 근육돼지들은 귀엽게 생긴 가물치가 나타나자 "What the FxxK?"을 외치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가물치가 누구인가. 물리면 손가락이 잘리는 이빨에 남다른 턱 힘이 거드는 가물치는 한입에 민물계 서열을 정리한 뒤 아메리카 원정길에 올랐다. 지금 미국에서는 연방정부가 나서서 약품을 뿌려가며 가물치 사냥에 힘쓰고 있다. 자연생태계에는 코리안 가물치를 대적할 적수가 없어 U.S. 민물어류가 멸종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란다.

한때 골치를 썩였던 황소개구리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계곡과 하천을 쑥대밭으로 만들던 이 녀석은 사촌지간쯤 되는 두꺼비에게 몰살당하는 중이다. 두꺼비는 짝짓기를 할 때 수컷이 암컷 위에 올라타 몸을 꽉 조르는 습성이 있다. 암컷의 몸에서 나온 알에 수컷이 정액을 뿌리는 방식의 체외수정을 하는데, 최대한 많은 알을 짜내기 위해 수컷이 있는 힘을 다해 암컷의 몸을 조른다. 그런데, 토종 두꺼비는 시력이 그리 좋지 못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주변에 암컷 두꺼비 비슷한 것만 눈에 띄면 일단 올라타서 조르고 보는데, 황소개구리는 몸집이 크다 보니 눈 나쁜 두꺼비에게 종종 발각되고 만다.

하지만 아무리 조여도 황소개구리에게서 두꺼비 알이 나올리는 없는 노릇. 그렇다고 수컷 두꺼비가 번식을 포기할 리도 없다. 식음을 전폐하고 밤낮으로 죽을힘을 다해 조르고 또 조르니 황소개구리는 결국 질식하거나,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터지거나, 아니면 둘이 같이 굶어죽거나 셋 중 하나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최근에는 삶의 터전을 뺏겼던 토종 개구리들이 두꺼비의 백어택을 보고 배워 따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계곡에 주로 사는 토종 개구리인 한국산개구리(원래 아무르 개구리라고 불리다 오직 한반도 산기슭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공식명칭이 한국산개구리로 바뀌었다.)에게 걸리면 몸에 피가 다 빠져나갈 때까지 졸림을 당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고 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이름처럼 수중 생태계의 여포인 물장군은 곤충임에도 물고기를 주로 잡아먹는 포식자인데, 황소개구리 올챙이를 맛본 뒤 생선은 입에도 대지 않는 육식러가 됐다. 국내 연구진에 따르면 물장군 집단에게 물고기와 황소개구리 올챙이를 마음대로 먹게 했더니 94%가 물고기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뉴트리아와 붉은귀거북은 영장류인 동이족에게 제대로 낚였다. “정력에 좋다”는 고전 수법을 써 봐도 통하지 않자 잡아오면 뉴트리아는 한 마리당 2만 원, 붉은귀거북은 1000원씩 준다는 현상금이 걸렸다. 뉴트리아 때문에 배추농사를 망친 동이족 농부가 이 소식을 듣고 5000마리를 한꺼번에 잡아 트럭에 싣고 나타났다. 의심하는 공무원을 상대로 시범까지 보인 뒤 1억 원의 포상금을 타가자 숨어서 지켜보던 뉴트리아들은 한반도를 탈출하기 시작했다. 함께 쫓기던 붉은귀거북이들은 나름 전속력으로 달렸지만 대부분 체포돼 동물원에 억류돼 있다.

작고 약골 같아 보이는 이 땅의 토종들, 굳이 한반도에 살면서 주변 일진들을 무시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약한 자는 살아남지 못하는 땅, 이곳은 불반도다.w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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