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분양가 상한제, 내 이럴 줄 알았다

입력 2019-09-1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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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현 부국장 겸 부동산부장

내 이럴 줄 알았다. 아직 시행도 안 했는데 너무 앞서간 얘기가 아니냐고 핀잔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결코 빈말이 아니다. 그것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무슨 소리냐고 의아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앞둔 주택시장 얘기다. 분양가 상한제가 닻을 올리기 전인데도 시장 곳곳에선 파열음이 일고 있다.

 요즘 서울 강남권 새 아파트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매물이 없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이다.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았던 2017~2018년 집값 급등기에 찍었던 고점을 훌쩍 넘어선 곳도 수두룩하다. 분양가 상한제로 새 아파트 공급이 크게 줄 가능성이 커지면서 신축 단지의 희소성이 부각되고 있어서다.

 강남 요지 신축 아파트 매매값은 3.3㎡(1평)당 1억 원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반포동 아크로 리버파크 전용 59㎡(24평)가 최근 24억3000만 원에 팔렸다는 얘기까지 전해진다. “강남 3.3㎡당 1억 원을 막겠다(김현미 장관)”면서 국토부가 내놓은 대책이 되레 강남 집값 상승 가도에 ‘꽃길’을 깔아준 셈이다.

 분양가 상한제 시행 취지는 새로 공급하는 아파트 분양가를 낮춰 주변 집값을 잡겠다는 것이다. 분양가가 내리면 인근 집값의 거품이 꺼져 주택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시장은 국토부의 선한 의도와는 딴판으로 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집값이 미쳐 날뛸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청약시장은 또 어떤가.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광풍이 불고 있다. 분양 단지 견본주택은 주말마다 방문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청약경쟁률은 수십 대 1, 수백 대 1을 기록하기 일쑤다. 앞으로 신규 분양 물량이 급감하고 청약 당첨 커트라인도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불안감에 청약 가점이 낮은 무주택자들이 앞다퉈 청약에 뛰어든 결과다.

 분양가 상한제 시행 이후 낮은 가격의 분양 물량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시장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높은 분양가를 잡기 위한 규제가 오히려 청약 과열을 부추기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전세시장도 폭풍전야다.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로또 단지’ 분양을 기다리며 전세로 눌러앉는 청약 대기자가 늘면서 한동안 안정세를 보이던 서울 전셋값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강남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시차를 두고 마포·성동구 등 강북도 상승 대열에 합류하는 모양새다.

 분양가 상한제는 ‘공급 축소’라는 무서운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신규 택지 공급이 어려운 서울에서 유일한 주택 공급원인 재건축·재개발 단지 주민들이 분양가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사업을 연기하거나 포기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새 아파트 수요는 넘치는데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통한 신규 주택 공급이 막히면 분양가 상한제에서 비껴 난 재건축 단지나 신축 아파트로 자금이 몰리면서 집값 상승을 부채질할 게 뻔하다.

 청약 열기는 더욱 달아오를 전망이다. 칼집 속에 있는 상한제가 밖으로 나올 경우 수억 원의 웃돈을 기대한 무주택자들이 대거 분양시장으로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당첨만 되면 대박이라는데 팔짱 끼고 구경만 하거나 모른 척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분양가를 끌어내려서라도 서민들의 내집 마련 문턱을 낮추고 주변 집값도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수급 상황과 경쟁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 원리에 반하는 정책은 목표를 이루기는커녕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

 가뜩이나 대내외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건설경기까지 더 쪼그라들면 1% 후반대 경제성장률도 지켜내기 어려울 수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물론 일부 여당 의원들까지 섣부른 분양가 규제를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데도 국토부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밀어붙일 태세다. 이럴 줄 알았다. 김현미 장관은 시장의 후폭풍쯤은 가볍게 무시하고 마이웨이식 정책을 밀고 나갈 줄 내 진즉에 알고 있었다. ‘강남 집값과의 전쟁’이라는 프레임으로, 내년 4월 총선을 유리하게 끌고 가겠다는 정치적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부동산 정책에 정치가 덧씌워지는 순간, 집값도 못 잡고 표심도 잃는다. 시장을 억누르면 시장의 보복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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