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하는 시간] 여름잠을 자는 식물들

입력 2019-08-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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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일 신구대학교식물원 원장·신구대학교 원예디자인과 교수

그렇게 뜨거웠던 여름도 이제는 그 기세가 한 풀 꺾였음을 느낍니다.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창문을 닫게 합니다. 여름 내 더위를 식혀주며 애쓰느라 지쳐 축축 처지던 식물원의 나무와 풀들도 다시 생기가 도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식물들은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굳건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여름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저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식물 모두 뜨거운 햇볕과 높은 온도에 고생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렇게 뜨거운 여름을 지낼 때 식물의 생장을 조금 과학적으로 살펴보면 얼마나 고생하는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식물의 생장은 간단히 광합성과 호흡에 의해 결정된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광합성은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생장에 필요한 물질을 합성하는 과정이고, 호흡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몸에 저장된 물질을 분해해 에너지를 소비하는 과정입니다. 식물이 생장하기 위해서는 광합성량이 호흡량보다 꾸준히 많아야 합니다. 마치 저축이 증가하기 위해서는 수입이 지출보다 많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봄철에는 광합성량이 호흡량에 비해 현저하게 높던 것이 여름이 되면서부터는 그 차이가 아주 작아지거나 때때로 역전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광합성량이 줄기 때문이 아니라 호흡량이 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광합성량이 호흡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지면 식물은 생명활동을 최소화하기도 합니다. 즉, 호흡량을 줄이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광합성량도 줄게 됩니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 수입도 줄이는 아이러니한 행동을 식물이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여기에서 설명하는 것은 너무 복잡한 일이니 생략하기로 합니다.

어떤 식물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아예 이 기간에는 지상부의 잎과 줄기를 모두 없애버리고 땅속에 훗날을 기약할 수 있는 생장조직만을 남겨둔 채 긴 휴식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식물이 휴식에 들어가는 것을 휴면이라고 하는데, 보통은 겨울에 휴면하는 식물이 많지만 이렇게 여름에 휴면하는 식물들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수확하는 양파, 마늘과 같은 식물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봄에 열심히 일해서 양분을 땅속 줄기에 저장해 두고 힘든 여름에는 아예 쉬어버리는 겁니다. 늦은 가을부터 땅속에서 활동을 시작해 겨울 동안 천천히 일하다가 봄이 오면 다시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이른 봄에 여러 식물원과 정원들에 예쁜 꽃물결을 만들어주는 튤립도 이런 유형 중의 하나입니다. 양파가 6월에 제일 맛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식물들의 원산지는 여름이 아주 뜨겁고 건조한 곳입니다. 어떤 식물도 견디기 어려운 여름이 있는 곳입니다. 그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남다보니 유전자에 그 특성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뜨겁긴 하지만 습한 우리나라에 살 때도 그 특성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이 식물들이 휴식을 하지 않고 뜨거운 여름에도 계속 일하려 했다면 아마도 살아남기 어려웠을 겁니다.

사람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휴식 없이 늘 일만 해서는 창의성도 떨어지고 일의 효율과 그에 따른 성과도 떨어집니다. 한 단계 뛰어넘는 성장을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주말에 하루 이틀 쉬는 것이 아니라 여름휴가와 같은 긴 휴식이 필요합니다. 십여 년 일했다면 최소한 한두 달의 휴식 기간을 가질 수 있어도 좋겠습니다. 주변에 누가 긴 휴가 중이라면 나중에 그 사람이 크게 성장하겠구나라고 기대해도 좋겠습니다.

저를 포함해 아직 여름휴가를 가지 못한 분들은 당장 이삼 일이라도 휴식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더 큰 성장을 준비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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