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시각] 슬기롭게 여름을 나는 법

입력 2019-08-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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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학 저술가

여름은 빠르게 와서 오래 머물다 가는 계절이다. 여름의 섬광이 금속인 듯 번쩍일 때 고온다습한 기후와 열대야는 도처에서 불치병처럼 돋아나 번성한다. 도심의 아스팔트가 고열로 녹아내리고, 식물의 잎들은 삶아낸 듯 늘어진다. 번성하는 여름, 폭주하는 여름, 난감한 여름! 우리는 더위에 시달리느라 타인에 대한 관용과 연민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실내에서 그림자처럼 서성이며 정오 뉴스를 시청하거나 지구의를 보며 아직 가보지 못한 먼 이국의 풍광을 꿈꾼다. 떠나지 못한 여행과 가 보지 못한 장소에 대한 동경이 어우러져 여름의 멜랑콜리를 만든다. 우리는 여름에 지지 않으려고 수박과 복숭아를 사고, 보리빵을 씹으며, 더러는 냉면과 콩국수를 먹으며 여름의 중력을 견딜 수 있을 뿐이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본격적인 불볕더위가 대지를 달군다. 공중에는 하얀 화염이 타오르는 듯하다. 한여름에는 자칫 권태와 무기력에 빠져 지내기 일쑤다.

어린 시절엔 여름을 정말 좋아했다. 한낮의 매미소리와 느티나무 그늘을 좋아하고, 냇가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 것을 좋아하고, 찐 감자와 삶은 옥수수, 저녁때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는 수제비를 좋아하고, 은하수가 흐르는 어둔 하늘에서 별똥별이 금을 그으며 떨어지는 것도 좋아했다. 소년들은 자고 일어나면 키가 쑥쑥 자라난다. 여름마다 나는 가장 먼 지구 저편에 사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소년을 그리워했다. 계절에 윤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그 무렵이다. 여름의 윤리는 울울창창한 숲속에서 명랑하게 울려퍼지는 새들의 합창 속에서 단단해진다. 여름의 윤리는 뻗치고, 자라나며, 거침없이 침투하고, 휘감으며, 생장하는 것들의 바특하고 강건한 논리 위에 세워진다는 것, 그것은 천지간에 벚꽃이 눈이 부시도록 만개해 흥청이던 봄의 연민과 환대로 충만한 윤리와는 다르다는 것, 여름의 윤리는 헌법만큼이나 삼엄하고 엄격하다는 것을 알면서 나이를 먹었다.

나른한 소진 속에서 여름의 생을 탕진하지 않으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나는 하얀 불꽃 같은 땡볕 아래를 걸어서 동네 카페에 나가 여름의 습기와 더위를 견뎌내고 있다. 오늘 오후 카페에 나가 읽은 책은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란 장편소설이다. 소설가로는 무명이나 다름없는, 평생 동물행동학 분야에서 활동해온 델리아 오언스가 칠순을 앞두고 처음으로 펴낸 이 장편소설은 우연한 계기로 세상에 알려진 뒤 2018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어머니가 떠나고, 오빠와 언니마저 다 떠난 습지의 오두막에 7세 소녀가 혼자 남는다. 문명사회와 동떨어진 거친 노스캐롤라이나의 습지에 방치된 문맹의 소녀가 문자를 깨우치고 외로움 속에서 책을 섭렵하며 자립하는 이야기는 뛰어난 풍광 묘사와 함께 벅찬 감동을 안겨준다. 그 소녀의 성장담을 중심축으로 사랑과 배신, 살인사건, 법정 스릴러가 엉킨 채 바다와 습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아름다운 소설은 아주 잘 읽힌다.

습지의 오두막에 버려진 소녀는 야생의 동물과 다를 바 없다. 소녀는 자연이 좋아서 사회의 교류를 끊고 은둔한 것이 아니다. 공립학교에 갔던 첫날에 이미 자기가 세상에서 버림받고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소녀는 다시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 소녀는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하게, 혼자 외떨어진 채 자연 속에 웅크리고 숨은 것이다. 고독에 강제로 유폐되는 것은 소외의 감옥에 갇히는 것과 같다. 그 고독은 아무 이유도 없이 받은 사회적 따돌림과 처벌의 결과물이다. 소녀는 가난과 고립 속에 방치되지만 끝내 살아남는다. 소녀는 야생 자연 속에서 수렵과 채집 활동을 하며 살아남은 놀라운 생존력을 가진 종의 후예가 아니던가! 다이앤 애커먼은 ‘휴먼에이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종은 크고 작은 빙하기, 유전적 병목현상, 전염병, 세계대전, 갖가지 자연재해를 어떻게든 극복하고 생존해왔다.” 소녀는 문명과 기술의 편의성에 길들여진 뇌가 아니라 험한 자연에 놀라운 친화력을 갖고 적응하는 뇌, 그리고 민첩한 몸과 예민한 존재의 감각을 가진 존재임을 증명해낸다.

소녀는 생물학적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은 습지와 바다에서 구한다. 바다는 해양 생물의 서식지이자 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야생의 장소, 다이앤 애커먼의 말대로 “식량 저장고이고 놀이터이고 생명으로 소란스러운 저택”이다. 소녀는 바다에서 홍합을 채취하고 물고기를 잡아 훈제해서 가게에 넘기고 그걸로 생필품을 조달하며 꿋꿋하게 제 삶을 꾸린다. 그런 방식으로 최소한도의 원시적인 경제생활을 하는 것이다. 소녀는 사랑조차도 습지 생물들의 엽기적인 짝짓기 경쟁을 관찰하면서 배웠지만 야생 소녀의 탐스러운 육체만 탐닉하고 배신하는 마을 청년의 기만적인 애정 행각에 상처를 받는다. 소녀를 꾀어 동침을 한 뒤 딴 여자에게 구애를 하고 결혼을 해버린 바람둥이는 자연계에 흔한 “음흉한 바람둥이 섹스 도둑들”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을 주었다가 버림받은 소녀는 이렇게 외친다. “인생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거라지. 하지만 난 알고 있었어. 사람들은 결코 내 옆에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야.” 낯가림이 심한 야생 소녀에게 다가온 소년과의 첫 사랑, 이별, 재회…. 살인사건 피의자로 기소되어 지루하게 전개되는 재판 과정. “그녀만큼 이 지구라는 별과 그 속의 생명체들과 끈끈하게 유착되어 살아가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흙 속에서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대지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서.” 소녀는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한 지역의 유명 작가이자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생물학자로 성장한다. 그리고 ‘검고 긴 머리는 모래처럼 하얗게 센’ 예순여섯 살의 여성으로 고요히 생을 마친다.

습지의 생물 생태계, 바람과 조수의 흐름에 대한 뛰어난 묘사,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 습지 생태계에 대한 박물적 지식과 시…. 차별과 악덕이 있는 인간 사회와 모든 생물이 평등한 바다의 순수함,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날실과 올실로 교직되어 짜인 문장들은 명석하고 아름답다. “시들한 해의 엉덩이가 무거운 먹구름 사이 틈새를 찾아내어 모래톱에 닿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류와 장엄한 노도(怒濤)와 이 모래사장이 공모해 정교한 그물망을 짜낸 게 틀림없다.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조개껍데기의 표본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카야가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다. 모래톱의 각도와 부드러운 흐름이 바람이 부는 반대편에 조개껍데기들을 모아 하나도 깨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내려놓은 모양이었다.” 나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난 뒤 책을 덮었다. 책을 덮고도 한참 동안 휘몰아치는 이야기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인간 내면에 깃든 고독에 대한 성찰에서 빛난다. 한 점의 때도 묻지 않은 감수성으로 자연을 응시하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야생 소녀의 파란만장한 생존의 모험을 다룬 일대기는 알도 레오폴드의 ‘모래 군의 열두 달’과 견줄 수 있을 만큼 탁월한 생태주의 문학의 한 성과로 꼽을 만하다.

460쪽이 넘는 소설을 다 읽고 고개를 들었을 때, 카페의 창밖으로 푸른색과 회색이 뒤섞인 여름 저녁의 빛이 퍼지고 있었다. 그 저녁의 빛 속에 서 있는 나무들이 바람을 맞으며 수런거렸다. 어느덧 가로등이 켜지고 가게의 입간판들에는 조명이 밝혀졌다. 여름 저녁이 오고, 나는 몇 시간이나 몰입해서 책을 읽느라 출출해졌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은 뒤 허기와 강렬한 식욕이 돋아났다. 내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선명한 자각과 함께 후각과 청각, 촉각과 시각, 그리고 미각 같은 무뎌지거나 사라진 존재의 감각이 돌아온 것이다. 서둘러 돌아가 저녁밥을 먹고 싶다는 욕구는 강렬했다. 카페를 나오면서 문득 또 한 번의 여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여름이 저 무한을 통과하며 지나는 중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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