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자가 만났다] 소방관 파이터 신동국 “챔피언보다 소방관의 노고 알리고 싶다”

입력 2019-07-2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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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대전의 한 카페에서 '소방관 파이터' 신동국을 만났다. (김정웅 기자 cogito@)

짧게 자른 머리. 체지방이라곤 보이지 않고,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 터질 것 같은 근육. 타오르는 승부 근성이 뿜어져 나오는 이글이글한 눈매. 그 어렵다는 계체량 이후 체육관이 떠나가도록 내지르는 포효. 어떻게 보아도 분명한 모습의 파이터.

하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을 ‘소방관’으로 생각하고, 또 다른 이들도 ‘소방관’으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이투데이는 26일 ‘소방관 파이터’, 신동국을 만났다.

◇신인 '파이터'가 된 12년차 '소방관'

파이터 신동국. 그는 아직 4전 3승 1패의 신예 선수다. 하지만, 강철같이 강해보이는 그가 격투기에 입문한 계기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였다.

“시신을 보신 적 있나요? 저도 없었습니다. 소방관이 되고 나서야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죽는다는 걸 알았어요. 출동하는 현장마다 끔찍한 사고를 목격하고, 한 달에 시신만 10구를 수습할 때도 있어요. 순직하는 소방관보다 자살하는 소방관이 많다고 할 만큼, 저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소방관이 PTSD에 시달리고 있어요.”

소방관이 된 초기에는 불면증과 악몽으로부터 시작해, 우울증까지 겪어 신경정신과까지 방문했다고 한다. 급기야는 술로 우울감을 달래기 시작했고, 맨정신일 때가 드물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건강했던 몸도 망가지고, 무기력한데다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내고 다투게 됐었죠. 가정에도 소홀해지구요. 그때 부인이 이렇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예전에 항상 도전하는 자세였던 그 모습으로 돌아와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예전부터 동경해왔던 종합격투기였습니다. 밑바닥까지 추락한 바에야 못 할 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었죠.”

▲파이터가 되기까지 조력자가 되어 준 부인과 신동국. 부인에 따르면 신동국은 소방관이라서 그런지 "가스 잠궜냐"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김정웅 기자 cogito@)

그는 2016년 3월 종합격투기에 본격 입문했다. 충주에 사는 그는 종합격투기를 배우기 위해 원주에 있는 한 체육관을 찾았다. 이후 퇴근 이후와 비번 때마다 1시간 거리인 원주로 출퇴근하며 훈련에 매진했다.

2017년 4월 데뷔전을 치른 신동국. 4전의 전적에서 종합격투기 팬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경기는 일본 선수 하야시 타모츠와의 두 차례 경기다. 그는 판정패가 기록된 첫 번째 경기를 너무나 아쉬웠던 경기로 기억했다.

“지든 이기든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저는 소방관을 대표해서 나온 경기였어요. 일반 격투기 선수라면 이겨도 져도 성장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죠. 하지만, 제가 진다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관이 약하다며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비고의성 반칙인 로블로(낭심 가격)를 범하면서 신동국은 패배했다. “너무 아쉬운 경기였어요. 수많은 소방 동료들과 국민이 지켜보는 경기잖아요. 멋진 난타전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하야시 선수는 레슬링으로 공략을 해오더라고요. 레슬링은 더 정적이어서 관중들이 덜 선호하니까 너무 아쉬웠죠. 거기에 저는 심한 가격이 아니라고 생각해 더 싸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로블로로 경기 속행 불가를 선언한 하야시 선수에게 좀 야속했습니다.”

아쉬운 경기를 패배 판정까지 받으며 절치부심한 신동국은 삭발까지 하는 투혼으로 복수전인 2차전에 임했다. “일본 선수니까 한일전이기도 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경기였어요. 1차전보다 훨씬 간절했고요. 초반에 파운딩을 치면서 ‘준비를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너무 빨리 이기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니까요. 다행히 하야시 선수가 어느 정도 버티면서 TKO승을 할 수 있게 됐죠.”

▲삭발까지 하는 투혼으로 임한 하야시 타모츠 선수와의 2차전. (출처=유튜브 채널 '로드FC')

그가 파이터로서 동경하는 이가 누구인지 물었다. 뜻밖에 그는 10살이나 어린 김수철 선수를 꼽았다. “어리지만 제가 운동을 배우고 있는 동생이에요. 어린 나이에도 운동에 대한 열정이 엄청나게 강해요. 저도 정신력이 누구에게 뒤진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어떻게 저 어린 나이에 저렇게 강한 정신력을 가질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김수철 선수를 보면서 항상 자극받고, 그 진정성 있는 모습을 배우고 싶어요.”

파이터로서 신동국이 꺾어보고 싶은 상대를 묻자, 로드FC 라이트급 챔피언 만수르 바르나위의 이름이 나왔다. 근데 꺾고 말고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란다.

“사실 제가 전업 선수도 아니다 보니 챔피언과 싸워 이긴다는 목표가 어떤 분들에겐 말도 안 된다고 여겨질 수 있어요. 종합격투기 선수들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눈총을 받을 수도 있고요. 그런 의식을 피하기 위해 매 순간 훈련을 엄청나게 진지하고 혹독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프로선수들도 실패할 수 있다는 계체량에도 한 번도 실패한 적 없고요. 그래도 기왕 본격적으로 시작한 종합격투기인데, 승패를 떠나 챔피언과 겨루는 기회를 가져본다는 것은 영광이죠.”

◇"동료들에게 자긍심 주고 싶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전업이 아닌 소방관 직업을 가진 파이터임을 강조했다. 자신을 파이터보다는 소방관으로 생각한다는 그. 소방 동료들의 노고를 알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파이터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제가 종합격투기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방관들에게 재미있는 이벤트를 만들어주고 싶어서에요. 소방관 파이터 신동국이 일본 파이터와 싸운다고 하면 많은 소방관이 사무실에 모여서 볼 수 있잖아요. 재난 현장에서 목숨 걸고 땀 흘리는 동료들이 제 경기를 보면서 소방관의 자긍심을 느꼈으면 하는 게 첫번째 목표에요.”

육군 특전사, UDT/SEAL 교육 이수, 이라크 파병, 합기도 사범. 소방관이 되기 전까지 인간 신동국이 걸어온 길이다. 누가 봐도 세상 강인한 인간으로 살아왔을 듯한 이력. 그런데 소방관이 되기로 한 것은 무엇인가에 두려워하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였다고 한다.

“어느 날 아버지와 시내에서 대형 트럭이 전복되는 사고를 목격한 적이 있어요. 아버지는 의협심이 강한 분이라 바로 사고자를 구조하러 뛰어갔죠. 근데 저는 못 가겠더라고요. 끔찍한 사고가 눈앞에 펼쳐지는 게 무서웠어요. 마지 못해 아버지를 돕고 있을 때 제복을 입은 소방관들이 도착해서 구조장비로 사고자를 구조해내는 걸 봤습니다. 정말 멋있었죠.”

그간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교통사고 현장을 무서워하는 자신이 수치스러웠다는 신동국. 그때부터 공부에 매진해 2008년 충북소방구조특채에 합격할 수 있었다.

▲신동국은 한창 이슈가 됐던 소방관의 열악한 처우 문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김정웅 기자 cogito@)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소방관의 열악한 처우가 한참 논란이 되던 시기가 있었다. 신동국이 느끼는 소방관들의 현실은 어떨까.

“열악하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상당히 많은 소방본부는 인원과 장비가 부족해 현장 활동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제가 휴가를 가면 대체자가 없어서 휴가도 맘대로 갈 수가 없죠. 또, 화재 현장에 가려면 소방차에 5명이 타는 게 원칙이거든요. 사람이 부족해서 2명이 타는 경우도 있고, 이럴 때는 소방 호스를 원래 사용해야 하는 것보다 작은 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제가 속한 곳을 중심으로 설명했지만, 지금 대부분의 소방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됩니다.”

정신적인 고통도 너무나 크다고 한다. “소방관이 출동하는 현장은 언제나 ‘안 좋은 현장’이에요. 자살 사고, 교통 사고, 기계 사고.... 항상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일하다 보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노출되는 게 너무나 당연하죠.”

그는 정신적인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다른 소방동료들도 새로운 취미를 갖기를 권했다. 자신은 격투기라는 조금 독특한 취미를 가졌을 뿐이라고.

신동국과의 만남은 어떤 직업이 ‘뼛속까지 깊이 박힌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세간의 ‘소방관 파이터’라고 불리기보다 ‘파이터 소방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정도로. 그가 소방관 동료들과, 소방관을 믿어주는 국민을 위해 남기는 한 마디로 마무리해보자.

“파이터로서는 전국의 5만7000여 명 소방관들을 위해 즐겁고 통쾌한 경기로 소방관의 자부심을 느끼는 소방관 동료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보통 위험을 감지하면 숨으려 하는 것이 본능이지만, 사명감으로 위험에 뛰어드는 사람이 바로 소방관이라는 것을 국민 여러분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단 한 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소방헬멧을 머리에 쓴 신동국. 누가 봐도 '강인한 소방관'의 모습이다. (김정웅 기자 cog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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