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고야 성 복원에 한국 벤처기술 활용된다

입력 2019-07-2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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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업 5년 파셉, 일본 수출 계약

첨단 플라즈마 기술을 목재건조에 적용시킨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기계가 일본으로 수출돼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재인 나고야 성 복원에 참여하게 됐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차 대전에 불탄 뒤 시멘트로 복구한 나고야 성을 무려 5000억 원을 들여 복원하는 야심찬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목재가 들어가는 바람에, 일본 목재회사들은 예정된 시간 안에 공사를 끝내기가 어렵게 됐다. 다급해진 일본의 전통 목재가공기계 회사가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개발한 완벽한 목재건조 시스템을 수입하기로 한 것이다.

3대 째를 이어온 일본 목재가공기계 전문업체인 히다카는 이제 설립한 지 5년 밖에 안 된 우리나라의 벤처기업 파셉과 목재건조기계 수출입 계약과 공동 기술개발 MOU를 맺었다. 그리고 파셉은 8월 첫 번째 기계 세트를 일본으로 선적한다.

파셉의 건조 기술은 획기적이다. 목재 건물을 지을 때 가장 큰 어려움은 목재를 갈라지지 않게 말리는 일이다. 수분이 약 70%인 생나무에서 수분을 효과적으로 빼내기 위해 수천 년 동안 목수들은 온갖 방법을 다 사용했다. 바닷물에 넣어 삼투압 작용으로 건조하거나, 야산에 몇 년을 방치하면서 자연 건조하는 방법도 있다.

▲파셉 건조 기계에서 막 나온 나무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다.

요즘에는 밀폐된 컨테이너 안에 목재를 넣고, 뜨거운 수증기를 불어넣어 목재를 찌는 ‘라디에이터 방식’을 많이 쓴다. 그러나 라디에이터 방식은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데다 아무리 경험과 전통 지식을 동원해도 목재가 갈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목재는 건조하면 갈라진다는 수천 년 된 상식은 결코 깨질 수 없는 요지부동의 장벽이었다.

이 상식이 보기 좋게 깨졌다.

파셉이 개발한 목재 건조기계에 넣으면 정말 신기하게 목재가 아주 곱게 마른다.

한 달이 걸리는 굵은 소나무도 반나절이면 마른다. 굵은 나무는 손가락이 들어가는 정도의 균열이 생기는 것은 보통인데, 파셉 기계로 말리면 눈으로는 드러나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실금만 생기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 아주 깨끗해서 감탄을 자아낸다.

▲ 라디에이터 방식으로 말린 목재.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균열이 생긴다.

▲파셉 건조기로 말린 목재는 할열과 변색 없이 외관이 깨끗하다.

일본에서도 3대 전통을 자랑하는 목재 기계 전문기업이 한 걸음에 달려와서 계약을 할 만큼 세계 최고의 목재 건조 전문가들을 흥분시킨다. 일본 전문가는 세계적으로 목재건축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최근 다소 삐걱거리는 한일관계의 불협화음 가운데 일본인의 자부심인 나고야성 복원에 한국과 일본기업이 손을 잡았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더해준다.

파셉 건조기는 플라즈마 현상을 이용한 미래 발전기술을 연구하던 박수훈 박사의 기술전수로 탄생했다. 파셉 건조기는 쉽게 말하면 젖은 목재를 전자레인지에 넣어 말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마이크로파가 나와서 젖은 나무 안에 있는 수분을 가열시켜 나이테 사이의 헐거운 목질 사이로 수증기로 빼내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나무의 겉과 속이 균일하게 마르게 하는 공정기술이 탄생하기까지 다양한 물리학의 법칙이 적용됐다.

김현승 파셉 대표는 “우리 목재 건조 기계가 한일관계의 회복과 우호증진에 작은 밀알이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과학기술과 사업의 융합으로 예상보다 빠른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성과는 플라즈마를 연구하는 박 박사가 첨단 기술을 사업으로 뚫고 나가려는 젊은 김 대표를 만나 이뤄졌다.

물리학에서도 매우 앞서가는 에너지 분야인 플라즈마를 연구하는 박 박사와 몇 가지 실패를 맛본 젊은 창업자는 기술적 사업적으로 융합의 시너지를 발휘했다.

박 박사는 “요즘 기술융합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플라즈마 기술을 임업에 응용하는 것이야말로 대표적인 기술융합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파셉은 이 기술로 영월에 계획 중인 한옥 호텔건축에도 참여한다.

◆첨단 기술을 사업으로 연결한 김현승 파셉 대표

▲파셉 김현승 대표

파셉의 김현승 대표는 학사장교를 거쳐 1999년 대위로 전역했다. 10년 넘게 무역과 유통 등 다양한 사업을 하다가, 전공인 물리학을 살릴 수 있는 첨단기술제품에 눈을 돌렸다. 미래 에너지로 플라즈마를 이용한 발전기술을 연구하던 박수훈 박사를 만나 연구개발 및 사업에 손을 잡았다.

파셉(PACEP)이라는 회사 이름 역시 플라즈마(Plasma) 어플라이드(Applied) 클린(Clean) 인바이로먼트(Environment) 프로그램스(Programs)의 영어 머릿글자를 딴 것이다.

재선충 살균 기계에서 출발해서 목재건조 시장으로 진출한 파셉은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한옥박람회에 진출했다. 그 중 고주파 진공건조기를 전시한 한 업체는 일본 진출을 권유했다. 20년을 일본과 거래한 이 업체는 나고야 성 복원사업에 깊이 참여한 일본업체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고주파 진공 건조기는 얇은 판재는 건조하지만, 대형목은 건조가 어렵다. 파셉 같이 통나무를 순식간에 건조하는 기술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없다.

처음 반신반의하던 일본 기업은 파셉이 보낸 과학적 데이터와 수분함유율, 사진 등을 보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아버지를 이어 가업으로 목재 가공 기계를 생산하는 일본 기업 히다카는 건조과정을 1년간 4차례 방문해 실험 결과를 세심하게 직접 확인한 뒤에 망설이지 않고 수입계약을 맺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7세기에 건설한 일본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나고야 성 은 일본의 자존심이 걸린 유적지다. 일본은 15년 전 부터 목재 8000본을 준비하다가 3년 전 약 5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필요한 나무의 절반밖에 충당을 못하면서 목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나고야 성을 복원하려면 굵은 나무가 많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나무 가운데 드릴로 구멍을 뚫어서 열을 가해 목재 심부를 건조했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데다 길이가 10m이상 되는 나무는 구멍 뚫기도 쉽지 않다.

현재 일본에서 쓰는 목재는 직경 200㎜ 안팎이지만, 파셉 건조기를 사용하면 직경 400㎜ 목재도 생산할 수 있다. 일본 대표가 ‘목재건축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유이다.

◆연구개발의 풍부한 경험 가진 박수훈 박사

박수훈 박사는 플라즈마 기술을 응용한 미래발전 기술을 연구했다. 그러다가 물리학과 출신의 젊은 사업가인 김현승 대표를 만났다.

▲박수훈 박사(왼쪽)와 김현승 대표.

박 박사는 처음에는 플라즈마를 이용한 마이크로웨이브 기술로 재선충 살균장비를 개발했다. 우리나라가 재선충으로 죽은 소나무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소나무를 잘게 잘라 묻거나 태우는 방법 외에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다. 박 박사가 개발한 재선충 살균장비는 산림업계와 지자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재선충 살균 사업은 10월말에서 3월말이면 끝이 난다. 재선충 사업이 필요하지 않은 시간에 목재 건조사업으로 눈을 돌린 끝에 일본시장 진출이라는 좋은 기회를 잡았다.

한편, 김현승 대표는 세계시장 진출에 필요한 지식재산 전략을 수립하고, 새 협력 파트너를 찾기 위해 최근 KAIST 지식재산전략 최고위과정(AIP)을 수료하는 등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KAIST 지식재산전략 최고위과정은 중소기업의 지식재산 역량 강화 및 사업화 능력 함양에 그 목표로 두고, 체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중소벤처기업부는 기획 및 재정을, 특허법원은 교육과 실습을, 특허청은 교육과 홍보를, KAIST는 교육과정의 운영을 주관하는 국내 유일ㆍ최고의 지식재산전문 교육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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