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광고로 보는 경제] 80년대 새마을호는 '비즈니스 클래스'급!

입력 2019-05-2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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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열차는 통일호

1988년 5월의 철도청 광고.

“여보! 오늘 출장은 안전하고 여독이 없는 기차로 다녀오세요. 네!”

“그럼, 열차가 얼마나 편리하며 안락하고 쾌적한데,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 정말 최고야!”

이 멘트들은 요즘 상황에 대입해도 큰 차이가 없다. 여전히 열차는 편리하고 안락하고 쾌적하다. 출장에 많이 쓰이는 것도 똑같고.

그럼에도 광고가 게재된 당시의 철도와 지금의 철도는 미묘한 차이점이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광고 속의 색동저고리를 입으신 아내분의 패션과 올드하고 진부한 멘트가 좀… 아니 그거 말고도 차이점은 많다.

◇80년대 당시 기차의 위상은

1992년, 공기업 코레일이 출범하기 전까지의 열차 운행은 코레일의 전신이며 당시 건설교통부 산하기관인 철도청에서 도맡아 했다. 철도청이 운영하던 때만 해도 열차 운행은 여행객을 위주로 열차 편성 및 운영이 이뤄졌다.

왜냐하면 당시의 철도 여행이란 것은 지금보다 훨씬 위상이 높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의 광고를 보자.

▲'유선형' 새마을호 열차가 새로 운행한다는데, 유선형이라고 부르기엔 많이 각진 느낌이다.

주목할 것은 하단의 ‘편리하고 저렴한 키지 관광열차’ 부분이다.

매주 화‧수요일에 효도 관광열차’. 요즘엔 사라진 말이지만 ‘딸 낳으면 비행기 태워준다’라는 말이 쓰이던 때가 있었다. 아들보다 딸이 효성이 깊을 것이라는 편견이 담긴 90년대의 전형적인 성차별 유머다. 성차별 요소를 제외하고 보면 90년대만 해도 이미 ‘부모님께 효도해드리려면 기본적으로 해외여행은 보내드려야 한다’라는 인식이 보편적임을 알 수 있다.

위 광고들은 1988년에 게재됐고, 전 국민 해외여행 자유화는 1989년에서야 이뤄진다. 이때만 해도 부모님끼리만 오붓하게 보내드릴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가장 고품격이었던 여행수단은 철도여행뿐이었다.

‘경주, 부곡, 제주, 설악산에 신혼열차 운행’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은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많이 가고, 그보다 옛날엔 발리나 보라카이 같은 휴양지를, 그보다 더 옛날엔 괌이나 하와이에 많이 갔지만, 이땐 모든 게 불가능했다.

당시는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이어서 관광 목적의 출국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반인이 해외에 나가려면 기업의 출장, 학생의 유학, 해외취업과 같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경주나 제주도, 설악산으로 신혼여행을 많이 갔고, 이런 신혼여행 상품이 철도청의 주력 상품이기도 했다.

‘서울, 설악산 관광열차’가 있는 걸 보면 당대에 설악산은 지금의 제주도 느낌에 해당하는 인기 여행지였던 것으로 보이며, 63빌딩, 명동 등 서울을 유람하는 코스도 인기가 있었던 듯하다.

◇분화된 열차 여객 수요

짤막하게 언급하고 싶은 것은 위 광고 속의 ‘새마을호’다. 이때의 새마을호는 가장 빠르고, 가장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최고급 열차의 지위를 갖고 있었다. 명실상부 국내 최고등급의 열차였기 때문에 출장이나 중산층 가족의 여행 등에는 새마을호가 주로 이용됐다.

▲KTX의 등장. 새로운 철도 시대의 개막이었다. (뉴시스)

많이들 아시겠지만 2004년 한국고속철도, KTX(Korean Train eXpress)의 등장은 가장 빠르고, 가장 최고급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열차라는 새마을호의 지위를 가져갔다. 이후 새마을호는 점진적 퇴역 절차를 밟으면서 맨 위 광고에서 나온 편리하고 안락한 출장 목적의 고속 운송수단인 열차라는 지위는 모두 KTX의 몫이 됐다. 말하자면 ‘비즈니스 클래스’가 된 것이다.

그럼 열차여행 수요도 KTX가 모두 빨아들였을까? 그렇지 않다. 요즘도 웬만한 재력을 가졌거나, 큰 결심을 한 게 아니고서야 비즈니스 클래스로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이 흔치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제주도보다 후쿠오카 경비가 싸다는 요즘. 평범한 대학생도 알바해서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동남아에 유럽까지 갈 수 있을 만큼 해외여행은 보편화했다. 때문에 항공 여객 수요와 정면으로 대결할 경우, 철도 여행엔 사실상 승산이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그래서 코레일은 열차여행의 세일즈 포인트를 감성가격경쟁력으로 설정했고, 그 판단은 적중했다. 그렇게 요즘의 2030세대 중 안가본 사람이 없다는 청년들의 감성 철도 자유여행패스, ‘내일로’가 탄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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