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冷면 아니라 金면" 냉면 한그릇 1만4000원 시대..."그래도 서민의 음식인데"

입력 2019-05-16 18:50수정 2019-05-1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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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00원 일제히 인상…업주들 "재료‧임대료 탓에 어쩔 수 없어“ 항변

▲서울 중구에 위치한 냉면집 대기석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많은 인파를 보고 발길을 돌린 손님도 많았다. (홍인석 기자 mystic@)

30도에 육박한 더위 탓인지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냉면집은 발을 디딜 틈이 없었다.

한 그릇에 1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 더는 ‘서민 음식’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가격이었지만, 인근 직장인들은 이르게 찾아온 더위를 잊고자 냉면집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정오가 되기도 전, 대기 순서를 적는 종이는 3장째를 넘어갔다.

냉면값 인상이 예사롭지 않다. 1월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의 외식비 가격 동향에 따르면 △김밥 △짜장면 △칼국수 등 8개 외식 품목 중 지난 1년간 가장 많이 오른 품목(서울특별시 기준)이 바로 냉면이다.

서울 중심가의 유명 냉면집들은 성수기인 여름이 되기도 전에 가격을 일제히 올렸다.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한 평양냉면집은 한 그릇 가격을 1000원 인상한 1만4000원에 팔고 있었다. 같은 지역 다른 평양냉면집 역시 1만1000원에서 1만2000원으로 최근 가격을 올렸다. 마포구에 있는 냉면집 역시 1000원 올린 1만2000원으로 가격표를 고쳤다.

평양냉면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함흥냉면을 파는 곳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여의도에서 인기가 있던 한 냉면집 역시 1000원씩 가격을 인상했다. 8000원에 팔았던 물냉면과 비빔냉면은 이달부터 9000원을 받고 있었다.

▲가격을 올린 업주들은 한우 등 식재로 가격이 인상되어 가격인상이 불가피했다고 입을 모았다. (홍인석 기자 mystic@)

◇냉면집 앞 시민들 "어쩌다가 한 번 먹는 음식될 것 같다"

이날 중구에 있는 한 유명 냉면집을 찾은 손님의 상당수는 가격이 오른 것을 모르고 있었다. 또 알고 있더라도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불평했다. 7000~8000원 수준인 백반과 비교해보면 1만 원이 넘는 냉면이 체감상 훨씬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난 이순희(81) 할머니는 “1만2000원이었을 때도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1만4000원을 받으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 할머니는 날도 덥고 해서 모처럼 와서 먹기는 했지만, 비싼 가격 탓에 자주는 못 올 거 같다고 말했다.

박명현(55) 씨는 "평양냉면을 좋아해 계절과 관계없이 자주 왔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라면서 "이 가격이라면 '어쩌다 한 번 먹는 음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냉면은 조선시대 말부터 왕부터 서민까지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었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그러나 냉면은 이제 어쩌다 접하는 부담스러운 가격의 음식이 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물론, 냉면값이 오르는 게 당연하다는 반응도 일부 있었다. 서울 마포구 냉면집에서 만난 회사원 최모(55) 씨는 “물가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서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라면서 "가뜩이나 정부가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려 물가가 더 올랐는데, 냉면값이라고 안 오르겠냐"라고 말했다.

◇업주들 "1000원 비싸게 받는다고 돈 벌 것 같아요?"

냉면집 업주들은 재료비와 임대료 상승 압박을 가격 인상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일부는 "1000원 올렸다고 큰 돈이라도 벌 것 같냐"라고 기자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한 냉면집 업주는 “채소와 고깃값이 많이 올라 우리도 할 수 없이 가격을 올린 것”이라면서 “맛과 품질 때문에 한우 냉장육만 사용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한우와 외국산, 냉장육과 냉동육의 차이가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이들 업주는 상승하는 임대료도 냉면값 상승의 요인 중 하나라고 짚었다. 서울 주요 시내에 있다 보니 같은 크기라도 외곽에 있는 곳보다 임대료가 더 비싸다는 설명이다.

또다른 냉면집 업주는 “임대료가 몇 년째 무섭게 상승하는 추세라서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리게 된 것”이라면서 "돈 벌려고 가격을 계속 올린다고 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라고 억울해 했다.

▲서울 청량리에 위치한 냉면집은 수년째 가격이 그대로다. 두 명이 1만 원이면 한 끼 식사가 가능하다. (홍인석 기자 mystic@)

◇유명세 치르지만, 수년째 가격 동결한 곳도…

그렇다면 모든 냉면집이 가격을 올리고 있을까. 수년째 가격을 동결하고 있는 곳도 있다. 청량리에 있는 냉면집들이다. 수십년 째 영업을 하고 있는 이들 냉면집들은 이미 인터넷에서 '맛집'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가격은 절반 수준인 5000원 그대로다.

물론 이들이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도 명확하다. 재료값과 임대료의 차이다.

청량리에서 냉면집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유명 체인 냉면집은 고기와 메밀을 국내산을 사용해 가격이 더 비싸지만, 우리는 육수를 낼 때, 조미료를 쓰고 고기도 수입육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격이 싸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곳이라고 임대료가 안 오르는 것은 아니다. 또 수입육이라고 가격이 마냥 저렴하게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격을 올리면 손님들의 발길이 줄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서 만난 김모(61) 씨는 "아무리 좋은 재료를 쓰더라도 밑반찬도 거의 없는 냉면이 1만2000원, 1만4000원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이곳마저 가격이 오르지 않을까 불안할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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