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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속으로] 분식회계와 외부감사인의 책임
입력 2019-05-15 17:58
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

▲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
‘아더 앤더슨(Arthur Andersen)’은 필자의 첫 직장이었다. 회사의 지명도와 전문성, 영향력으로 인해 로고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설렘도 잠시, 2002년 아더 앤더슨은 돌연 해체됐다. 미국 굴지의 에너지 운송업체 엔론(Enron)이 저지른 15억 달러(약 1조7000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 사건 때문이었다.

한 회사의 감사 책임으로 90년 역사를 지닌 회사가 일순간에 공중분해됐다. 엔론의 CEO 제프 스킬링은 증권사기죄로 24년형을, CFO 앤드루 패스트는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재발 방지를 위해 미국 정부는 사베인스-옥슬리 법(Sarbanes-Oxley Act of 2002, SOX)을 제정해 기업의 내부회계관리를 엄격하게 통제했다. 당시 기억은 풋내기 신입사원이었던 필자에게 기업의 지배구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분식회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생생하게 알려준 경험이었다.

이후 SK글로벌, 두산 등 한국의 각종 분식회계 사례를 접할 때마다 분식 규모와 페널티를 따져보는 습관이 생겼다. 엔론의 상황과 비교하면 결과는 늘 비슷했다. 분명 처벌은 관대하고 대책은 미흡했다. 예컨대 대기업집단의 경우 총수가 실형을 받은 후 집행유예로 면죄부를 받는 방식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한국의 회계투명성 순위가 2018년 IMD(국제경영개발원) 기준 세계 63개국 중 62위로 수년째 최하위권인 사실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인간의 본성상 ‘당근과 채찍의 총합’에 따라 행동 여부를 결정한다고 보면, 처벌이 가벼울 경우 적발 시 손해는 적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얻게 되는 엄청난 이익에 이끌려 사건은 재발할 수밖에 없다. 문제가 생겨도 관련자를 비난하거나 처벌하면 그만이다. 근본적인 재발방지책이 뒤따르는 경우도 드물었다.

하지만 최근 총수가 없는 기업인 대우조선해양 사태부터 상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금감원 기준 약 8조 원 규모의 분식회계가 밝혀졌다. 당시 재임한 두 CEO는 각각 대법원에서 징역 9년, 항소심에서 징역 5년형을, CFO는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담당 회계법인도 이례적으로 상황에 따라 회사가 문을 닫을 수 있는 수준인 ‘신규 감사업무 1년 금지’, 담당 회계사들도 각각 라이선스 등록 취소에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외부 감사인의 역할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주주 등 회사의 이해관계자들이 기업 실적과 재무 상태를 판단할 때 회계법인의 의견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또한 매일 숫자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자본시장이 작동하기 위한 기본조건인 신뢰의 근간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최근 외부감사법이 개정되면서 변화가 이뤄지는 상황은 매우 고무적이다. 우선 2019년 상장사의 정기주주총회에서 상정된 정관 변경 안건 상당수가 ‘외부 감사인 선임’에 대한 것이었다. 외부 감사인 선임 시, 회계법인이 대표이사나 회사에 영업을 해서 선정되던 관행을 탈피해 감사위원회나 선임위원회를 통해 좀 더 객관적으로 선정한다는 내용이다. 감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분식회계에 대한 손해배상과 형사처벌도 상한이 없는 수준까지 대폭 강화돼 책임이 막중하다.

2019년 2월 금융당국은 두 가지 과감한 조치를 더했다. 평소엔 회사가 자율적으로 외부 감사인을 선임하되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금융당국이 지정하는 회계법인으로부터 3년간 감사를 받는 ‘외부 감사의 주기적 지정제도’를 도입했다. 이 경우 회사와 회계법인의 유착 위험이 줄어 감사인의 독립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또한 ‘표준감사시간’을 도입해 각 회사별로 일정 시간 이상의 감사는 반드시 하도록 했다. 이제 보수가 적어 감사를 소홀히 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하고 최소한의 감사 품질만큼은 담보할 수 있게 됐다.

다시 엔론 사태로 돌아가보자. 내부통제 장치와 기업의 책임이 남았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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