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댓트립] '니가 알던 내가 아냐'…녹사평과 인천의 '이유 있는 변신'

입력 2019-05-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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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명소로 탈바꿈한 지하철역과 호텔 터

▲녹사평역 지하 4층 전경.(사진제공=이하 한국관광공사)
가족과 함께하는 행사가 많은 달, 5월. 늘 가던 여행지보다 새로운 문을 연 '신상 여행지'로 발걸음을 돌려보는 건 어떨까. 단순히 전동차 탑승을 위해 이용하는 공간으로 여겨졌던 지하철역이 지하예술정원으로 다시 태어났고, 1888년 개항장 인천에 세워진 서구식 호텔은 40년간 공터로 있었지만, 그때 모습을 그대로 빼닮은 전시관으로 재탄생했다.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신상 여행지'를 소개한다.

◇ 지하철역, 예술이 되다!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 = 서울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용산구청)이 2019년 3월, 서울시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우리나라에서 지하철은 '지옥철'로 불리는 교통수단에 불과했다. 이 '어쩔 수 없이' 이용하는 공간이 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녹사평역의 플랫폼은 미술관처럼 꾸며졌다.

녹사평역은 지하 5층 승강장에 내리면, 지상으로 올라갈 때까지 '깊이의 동굴ㅡ순간의 연대기' '녹사평 여기…' '숲 갤러리' 등 작품을 연속적으로 만난다. 지나치면서 보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라 천천히 감상하기를 권한다. 특히 지하 4층에서 지하 1층까지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을 활용해 만든 '댄스 오브 라이트'는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의 걸작이라고 할 만하다.

유럽에는 미술관을 방불케 하는 지하철역이 제법 많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역은 투어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아 이색 관광 명소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제야 공공 미술이 도입되어 조금씩 변화하는데, 그 중심에 녹사평역이 있다.

▲김원진 작가의 '깊이의 동굴ㅡ순간의 연대기' 작품이 설치된 녹사평역.

지하철이 녹사평역에 멈추고, 스르르 문이 열리자 뜻밖에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지하철 광고판 자리를 차지한 그림은 김원진 작가의 '깊이의 동굴―순간의 연대기'다. 기억을 지층에 비유한 작품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는 사유를 은유적으로 시각화했다고 한다. 그림은 언뜻 보면 화사하지만, 자세히 보면 시간의 흐름이 담겼다. 마치 지하철이 지나갈 때 흘러가는 모습과 같다. 색연필로 선을 그어 지면을 채우고, 이를 얇은 조각으로 길게 잘라낸 뒤 한 조각씩 화면에 다시 붙였다고 한다. 작품이 승강장 구석구석에 있어 그림을 찾아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승강장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4층으로 올라가면, 천장에서 치렁치렁 내려온 조형물이 반긴다. 조소희 작가의 '녹사평 여기…'다. 알루미늄 선을 코바늘뜨기로 만든 작품인데, 무려 5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다양한 색 레이어가 은은하면서도 자연적이다. 덕분에 차가운 금속이 대부분인 지하 4층 공간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천장에 설치된 조소희 작가의 '녹사평 여기…' 작품.

지하 4층 구석에는 널빤지가 늘어섰다. 김아연 작가의 '숲 갤러리'로, 밖에서 보다가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많지만, 널빤지 안쪽으로 들어가면 깊은 숲속에 있는 느낌이 든다. 작가는 '자연을 예술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오랜 기간 벌채와 식재, 도시 오염으로 퇴행적인 천이를 겪은 남산 소나무 숲의 밀도와 시간, 그 안의 관계를 표현했다고 한다. 작품 소재도 소나무, 신갈나무, 때죽나무, 팥배나무, 단풍나무, 산벚나무 등을 사용했다.

지하 4층 개찰구 앞에서 에스컬레이터로 가는 길 양쪽에 나오는 영상은 정진수 작가의 '흐름[流]'이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는 시민에게 사람과 자연에서 발견한 작고 아름다운 순간을 채집한 비디오아트 작품이다.

▲녹사평역의 '시간의 정원'을 구경하고 있는 시민들.

◇ 어둠에서 빛으로…에스컬레이터로 증폭되는 감동 = 에스컬레이터 양옆에는 푸른 식물이 싱그러운 '시간의 정원'이 자리 잡았다. 휴식처이자 만남의 공간으로,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을 활용해 정원을 꾸몄다. 의자가 놓인 휴식 공간에는 녹사평역을 꾸민 작가들의 작품 설명이 있다.

이제 지하 4층에서 지하 1층까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차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시나브로 빛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이동하는 느낌이다.

▲햇빛이 쏟아지면서 장관을 이루는 녹사평역 내부.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면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의 하이라이트와 만난다. 유리 나루세와 준 이노쿠마 작가의 ‘댄스 오브 라이트’다. 돔 천장을 통해 내려오는 빛은 지하 35m까지 이른다. 작가는 지하 공간에서 펼쳐지는 빛의 댄스를 표현하기 위해 돔과 주변을 그물 같은 익스팬디드 메탈(expanded metal)로 만들었다. 덕분에 날씨와 시간, 계절에 따라 섬세하게 변하는 빛을 볼 수 있다. 풍성한 빛 한가운데를 에스컬레이터가 유유히 가르는 모습이 장관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누구나 예술 작품의 주인공이 된다.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의 '댄스 오브 라이트' 작품.

길은 지상으로 이어진다. 녹사평역 3번 출구로 나와 육교를 건너면 이태원 거리와 만난다. 거리에는 히잡을 쓴 이슬람교도, 유럽에서 온 여행자, 한국인 등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진다. 이태원은 명실공히 외국인, 외국 상품, 외국 문화의 집결지다. 그 이름은 조선 시대 이태원(梨泰院)이란 역원(驛院)에서 유래했다. 이곳에 군부대가 주둔한 건 일제강점기부터. 일제가 식민지 통치를 위한 군사기지를 용산에 뒀고, 해방 후에는 그 자리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녹사평역에서 이태원으로 이어진 육교에서 바라본 남산.

◇ '호텔'이라는 낯선 이름…개항장 인천의 랜드마크 되다 = 오랜 세월 공터로 있던 자리에 옛 주인이 돌아왔다. 1978년 철거된 대불호텔이 40년 만인 지난 2018년 4월, 중구생활사전시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대불호텔 자리에 개관한 중구생활사전시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의 역사는 1888년, 제물포항(인천항)에서 멀지 않은 일본 조계에 3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이 세워지며 시작됐다. 파란 눈의 이방인은 이곳을 호텔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불렀다. 식사하고 잠을 자는 공간이지만, 초가로 지은 우리네 주막이나 다다미 깔린 일본 여관과 달랐다. 객실에는 침대가 놓이고, 서양 음식이 제공됐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물론 영어에도 능통한 종업원의 맞춤 서비스는 대불호텔의 명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등공신.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는 '비망록'에 "놀랍게도 호텔에서는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손님을 편하게 모셨다"라고 말했다. 대불호텔이 '깨끗하고 매혹적인 건물'이라 극찬한 영국인 탐험가 새비지-랜도어 역시 '코리아 혹은 조선 :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현대적 말씨를 사용하는 종업원'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당시 호텔 서비스를 보여주는 전시물.

대불호텔 객실료는 상등실 2원 50전, 일반실 2원으로 다른 호텔이나 여관보다 비쌌지만, 이런 인기에 힘입어 11개 객실은 늘 만실이었다. 당시 한국인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23전이었다. 10여 년간 호황을 누린 대불호텔은 1899년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경인선이 놓이면서 위기를 맞았다. 경성(서울)까지 우마차를 타고 12시간 이상 걸렸는데, 기차를 이용하면 1시간 40분 내외로 줄었기 때문이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에 따라 서양인 왕래가 감소한 것도 악재다.

일본인 무역상 호리 히사타로가 소유한 대불호텔은 뢰씨 일가를 비롯한 중국인들에게 넘어가, 베이징요리 전문점 '중화루'로 다시 태어났다. 호텔에서 중국집으로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중화루는 인천을 넘어 경성까지 이름을 알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불호텔 경영에 악재로 작용한 경인선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대불호텔 객실을 재현한 공간.

40여 년을 승승장구하던 중화루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1960년대 들어 청관 거리 경기가 급격히 나빠지면서다. 중화루 폐업 후 월세방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던 3층 벽돌 건물은 1978년, 지은 지 90년 만에 결국 철거됐다.

◇ 대불호텔의 화려한 변신…그때의 인천을 품다 = 대불호텔 모습을 재현해 꾸민 이곳은 대불호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1관, 1960~1970년대 인천 중구의 생활사를 체험할 수 있는 2관으로 구성된다. 관람 동선은 3층으로 이뤄진 1관을 지나 자연스레 2관으로 이어진다.

▲중구생활사전시관 제1전시관.

중구생활사전시관에서 먼저 할 일은 대불호텔이 지나온 파란만장한 세월을 돌아보는 일이다. 흥했다가 망하고, 다시 성했다가 쇠하는 그 과정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한 130여 년 전 개항장 인천과 많이 닮았다.

1관에는 대불호텔의 흥망성쇠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다양한 전시물이 있다. 2층과 3층에는 당시 호텔 객실과 연회장을 재현한 공간이 있고, 개항 이후 국내에 들어온 카메라와 회중시계 같은 진귀한 소품도 전시됐다. 1층 전시관 바닥 일부를 유리로 마감해 대불호텔 유구를 볼 수 있도록 한 것도 흥미롭다.

▲중구생활사전시관 제2관.
▲인천개항박물관 외부.

중구생활사전시관 2관은 1960~1970년대 인천 중구의 모습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공간이다. 당시 상류층 주택을 재현한 전시물부터 이발소, 다방, 극장까지 중구에 실재한 건물과 시설을 기반으로 꾸며, 전시관을 돌아보는 것만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든다.

중구생활사전시관을 돌아본 뒤에는 개항장역사문화의거리도 찬찬히 걸어보자. 중구생활사전시관 옆으로 조선은행이라 이름 붙은 구 인천일본제1은행지점(인천유형문화재 7호)과 구 인천일본제18은행지점(인천유형문화재 50호), 구 일본제58은행지점(인천유형문화재 19호)이 나란히 자리한다.

▲일본식 건물이 남아있는 거리.

청일전쟁 후 경제 수탈의 첨병 역할을 한 이들 일본 은행 건물은 현재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일본제18은행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일본제1은행은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운영된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활용하는 일본제18은행에서는 답동성당과 존스턴 별장처럼 현재 인천 중구에 있거나 과거에 있던 근대건축 모형이 전시돼, 개항 당시 인천의 모습을 상상하기 좋다. 부둣가 창고를 지역 예술인의 창작 공간으로 꾸민 인천아트플랫폼,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한중문화관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한중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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