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신동빈 회장이 외면한 ‘기업보국’

입력 2019-04-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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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선 유통바이오부 기자

“아버님이 창업하면서 품었던 ‘기업보국’의 뜻을 실현하겠다.”

경영비리에 이어 국정농단에 연루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해 8월 열린 항소심에서 혐의가 유죄라고 해도 집행유예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혐의가 작아서가 아니라, 나라 경제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신 회장은 항소심 최후변론에서 “기업보국의 뜻을 실현하겠다. 국가 경제를 위해 다시 한번 일할 기회를 달라”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집행유예로 풀려나 경영에 복귀한 지 6개월. 신 회장은 과연 ‘기업보국’을 실현하고 있을까.

롯데마트 무기계약직 직원들은 22일 회사가 억울한 누명을 씌워 직원을 해고하고 ‘묻지 마’ 인사를 내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았다며 서울 송파구 롯데마트 본사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해고 건은 법원이 직원 손을 들어줬지만, 롯데마트는 이에 불복했다.

‘불공정 갑질’처럼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행위는 회사 내부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이어진다. 적자에 허덕이는 대형마트 업계가 가격 경쟁을 타개책으로 내놓자, 롯데마트는 통이 크다 못해 ‘극하게’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9년 전 ‘대기업의 소상공인 죽이기’ 논란을 낳고 판매를 중단했던 5000원짜리 통큰 치킨을 다시 선보였고, 경매에 참여해 사들인 소고기를 시세보다 절반가량 싸게 판매했다. 대형마트는 일부 특정 상품을 손해 보고 무리해서 팔아도 일단 손님을 끌면 다른 상품을 팔아 손해를 메울 수 있다. 그러나 대형마트가 손해 보고 팔기로 작정한 특정 업계의 소상공인은 손 쓸 겨를 없이 손님만 뺏긴다.

갑질 근절, 상생과 협력은 분명한 시대적 과제다. 시대적 과제를 과감히 거스른 롯데가 실현하고자 했던 기업보국은 무엇이었나. 나라를 위해 할 일이 많다던 그의 변론은 절박한 상황에 내뱉은 변명이었을까 아니면 진심이었을까. 진심이었다면 이를 증명해야 할 시간은 촉박하다. 그는 아직 대법원 선고를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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