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어디갈래] '오방색'에 새겨진 욕망과 감정, 제임스 진 '끝없는 여정'展

입력 2019-04-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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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신작 9점 비롯해 500여점 전시…롯데뮤지엄 개인전

▲작가 제임스 진.(사진제공=이하 롯데뮤지엄)
완벽한 테크닉과 환상적인 화면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제임스 진(40)의 대규모 기획전 '끝없는 여정'이 4일부터 서울 송파구 신천동 롯데월드타워 내 롯데뮤지엄(LMoA)에서 열린다.

제임스 진은 1979년 대만에서 태어나 세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SVA)를 졸업하고 2001년부터 미국 만화산업을 대표하는 DC 코믹스(DC Comics)의 '페이블즈(Fables)' 표지 아티스트로 일하면서 예술계에 입문했다. 200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페인팅 작업을 시작했고, 2009년 뉴욕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미국, 일본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 전시에 참여하면서 예술 세계를 확장했다.

그는 패션 브랜드 프라다(Prada)와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름을 더욱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총 3번에 걸쳐 진행된 프라다와의 협업에서 몽환적인 이미지와 패션, 애니메이션과 공간 디자인까지 결합한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제임스 진은 3일 기자들과 만나 전시장을 돌며 자신을 향한 궁금증을 풀어줬다. 롯데월드타워 6층에는 제임스 진이 한국 전시를 위해 제작한 대형 회화 9점이 걸렸다. 또 그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하는 코믹북 커버 150점, 드로잉 200점을 비롯해 대형 회화와 조각, 영상 등 총 500여 점이 출품된다.

▲Aviary - Red Fire, 에이비어리 - 레드 파이어, 캔버스에 아크릴릭, 304.8x624.8cm, 2019.

◇ 현실을 압도하는 환상, 환상을 압도하는 현실 = 제임스 진은 아시아 시각 문화의 모태가 되는 '오방색'(Five Cardinal Colors·붉은색, 푸른색, 검은색, 흰색과 노란색)을 작품의 주제로 선택했다.

'붉은색'은 활활 타오르는 지옥 '인페르노-레드 파이어'(2018)와 붉은 새들이 화면 중심에 가득 차 있는 꿈의 세계 '에이비어리-레드 파이어'(2019)로 표현했다.

'인페르노-레드 파이어'에서 작가는 뜨거운 불길로 형벌을 받는 지옥을 매우 독특하게 표현했다.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는 푸른색의 거대한 나뭇가지를 중심으로 불길을 피우고 있는 어린 악마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푸른색의 나뭇가지 주변과는 대조적으로, 붉은 선만으로 표현된 불길과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다른 지옥도와는 다르게 유쾌하고 평화롭다. 제임스 진은 푸른색과 붉은색, 나무와 불길, 어린아이들과 악마라는 상반되는 요소들을 화면에 조합해 생명과 죽음, 행복과 고통이 혼합된 혼돈의 세계를 보여준다.

▲Descendents - Blue Wood, 디센던츠-블루 우드, 캔버스에 아크릴릭, 335.2×1097.2cm, 2019.

'푸른색'에서는 세 점의 대형 작품을 볼 수 있다. 입구에 놓인 대형 회화 '디센던츠-블루 우드'(2018)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하늘 세계를 보여준다. '추락', '하강'이라는 단어적 이미지와는 다르게 어린아이들이 국화, 모란, 연꽃 등 구름처럼 만개한 꽃들 사이를 노닐 듯 떠다니고 있다. 그는 "전시를 제안받은 뒤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했는데 건물이 너무 높아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며 "어릴 적 읽은 '잭과 콩나무' 동화가 생각났고, 구름 위를 떠다니는 소년의 이미지로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화려한 색채를 사용해 바다 위의 거대한 배의 모습을 보여주는 '패시지-블루 우드'(2018)와 수많은 말의 무리가 동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스탬피드-블루 우드'(2018)도 볼 수 있다.

▲Whirlpool - Black Water, 월풀 - 블랙 워터, 캔버스에 아크릴릭, 304.8x1005.8cm, 2019.

'검은색'으로 표현된 세계는 소용돌이치는 바다인 '월풀-블랙 워터'(2018)와 흑발의 님프들이 멱을 감고 있는 '베이더즈-블랙 워터'(2018)이다. 제임스 진의 작품에는 거대한 파도와 물결이 자주 등장한다. 작가에게 물결은 인생의 거대한 에너지면서도 작품을 그릴 때마다 느끼는 불가항력의 에너지다. 작가는 빠져나가려고 하면 할수록 더 빨려 들어가는 소용돌이와 같이, 통제할 수 없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미지의 에너지를 거대한 물결로 시각화했다.

▲Tiger - White Metal, 타이거- 화이트 메탈, 뚜껑이 달린 구리의 혼합 매체, 152.4x152.4cm, 2019.

'흰색과 노란색' 섹션에서는 검은색과 대조적으로 흰색으로 표현된 어린 호랑이를 지키는 어미 호랑이의 모습을 담은 '타이거-화이트 메탈'(2019)을 볼 수 있다. 작가는 미국과 멕시코의 정치적 문제로 국경 지역에서 지주자와 그 자녀들을 분리한다는 뉴스를 듣고 이 작품을 제작했다. 노란색의 '가이아-옐로우 어스'(2019)에서는 만물의 어머니이자 땅의 여신인 가이아와 용맹스러운 호랑이가 같이 등장한다. 작가는 스테인드글라스라는 빛과 예술이 조화된 방식으로 성스러운 자연과 그의 에너지를 표현했다. 구리 패널과 유리 등 다양한 재료와 방식이 더해졌다.

◇ "모든 작품은 드로잉으로부터 시작합니다." = 롯데뮤지엄에서는 1999년부터 2014년까지 제임스 진의 예술적 궤적을 보여주는 드로잉 작품들도 볼 수 있다. 그의 드로잉들은 작품의 시작점이다. 작가는 대학시절부터 드로잉을 통해 본격적으로 상상의 세계를 시각화하기 시작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수시로 들러 오귀스트 로댕과 에드가 드가, 프란시스코 고야 등 거장들의 작품들을 수년간 연구하며 인체 드로잉을 발전시켰다.

2006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숙련된 드로잉 테크닉으로 도시의 일상적 모습을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특히 2007~2008년 제작된 드로잉에서는 주변 인물들과 일상의 모습, 만화 속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제임스 진의 드로잉들은 작품의 시작점이다. 드로잉 작품 '피기백'(Piggyback).

제임스 진은 본격적으로 순수 회화를 제작하면서 드로잉을 통해 독창적인 도상을 완성한다. 2011년 제작된 드로잉에는 동물과 식물, 자연과 인간 등 이질적인 요소들을 혼합하여 탄생한 기괴한 세계가 담겨있다. 이 시기 드로잉에서는 잔혹한 욕망을 대변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찾아볼 수 있다. 2014년 드로잉들은 무한한 상상력이 응집된 결과물이다.

제임스 진의 다양한 경험들은 그의 작품이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데 일조했다. 그는 "순수미술을 할 때와 상업미술을 할 때 마음 가짐이 다르다"며 "선천적으로 예술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서 상업미술을 하게 됐다. 상업미술을 할 때 완전히 예술적으로 허락하는 브랜드와 작업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라고 했다.

전시장에서는 그가 참여한 영화 포스터도 볼 수 있다. 작가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을 비롯해 '마더', '플레이드 러너 2049'의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올해 7월 개봉하는 한국 영화 '사자' 포스터도 눈길을 끈다.

▲영화 '사자' 포스터.

지난해 1월 개관한 롯데뮤지엄은 댄 플래빈, 알렉스 카츠, 케니 샤프 등 거장이라 할 작고·원로 작가를 소개해 왔다. 구혜진 수석큐레이터는 "롯데뮤지엄은 동시대 훌륭한 아티스트를 찾고 전시하는 게 목표"라며 "앞서 거장들의 전시와 다르게 젊은 작가, 그리고 대중과 예술을 소통할 수 있는 작가를 찾았다. 제임스 진은 대중과 예술의 관계를 나타낼 수 있는 작가다. 새로운 미술 장르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제임스 진, 끝없는 여정'은 9월 1일까지 롯데뮤지엄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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