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펀치] 아직도 국민을 계몽하려는 정부

입력 2019-03-12 18:14수정 2019-03-1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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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우리가 사는 사회를 흔히 후기 산업사회라고 한다. 후기 산업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의 이익이 집단적 이익보다 우선된다는 점이다. 집단적 이익 갈등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노동자와 자본가 집단 사이의 갈등이라 할 수 있다. 즉 노동자 집단과 자본가 집단 사이의 이익 갈등이 산업사회의 가장 주요한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런 집단적 이익 갈등에 대해서는 이데올로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노동문제에 있어 이데올로기는, 노동자 집단이나 자본가 집단에, 지금 그들이 갖는 불만의 원인을 설명해 주고, 그 불만 해소 방안을 제시해 주며, 동시에 불만과 갈등이 해소되고 난 이후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데올로기의 이런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일반인들은 집단적 갈등에서 파생되는 불만의 근본 원인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불만을 갖고 있기는 한데 그 불만의 구체적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그 불만을 해결해야 할지 모른다. 이때 이데올로기가 그런 불만의 원인을 설명해 주고 불만 해소 방식까지 제시해 주는 일종의 지도(地圖)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데올로기는 불만의 원인과 불만 해소를 위해 취해야 할 방식까지 계몽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산업사회의 문제 해결 과정에서는 계몽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개인의 이익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기 때문에, 이런 계몽적 역할을 담당하는 이데올로기는 힘을 쓰지 못한다. 개인 차원의 이익 갈등은 복잡한 양상을 띠기에, 이데올로기에 의한 계몽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 쓰레기 소각장이나 화장장 같은 혐오시설 설립이 추진될 때, 이를 반대하는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계몽하거나 설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현 정권의 담당자들은 아직도 계몽주의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요즘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어려운데, 제로페이가 일반화되면 수수료가 낮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 말이다. 제로페이라는 것이 활성화되면 분명 자영업자들에게는 일정 부분 이득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찬 대표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명분적으로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제로페이를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제로페이는 신용카드와는 달리, 일시불만 가능하다. 또 은행에 있는 잔고 범위 내에서만 지불이 가능하다. 이뿐만이 아니라 카드를 썼을 때, 카드사로부터 제공받는 여러 혜택도 없다. 상황이 이럴진대 정부와 서울시는 국민들의 ‘선함에 호소’하거나 ‘계몽’하려 든다.

이는 분명 시대착오적 접근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역시 개인적 이익이 상당히 두드러진 상황으로 이런 분위기에서 국민들에게 호소하거나 국민들을 계몽하려 드니, 정부의 말이 먹힐 리 없다. 아마도 그러니까 연말정산 때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줄이겠다는 얘기가 한때 나온 것 같다. 이런 행위는 오히려 개인적 이익 침해를 가중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해, 불만을 배가시키게 될 것이다. 도무지 현 정권이 하는 일에서, 공감이나 자발적 참여를 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지 반문하고 싶다. 거의 매일 나오는 말이라곤, 자신들은 선하니까 믿어 달라든지, 아니면 우리 정책의 취지는 선하니까 당연히 공감해야 한다는 식의 계몽이나 하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현 정권 담당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 국민들은 계몽을 받아야 뭔가를 깨우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또, 정치와 경제 정책에 관한 모든 것은 계몽한다고 알게 되는 존재가 아니다. 정치와 경제라는 것은 국민들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느끼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사회적 멘털을 가지고, 또, 자신들이 대학생 시절의 흑백 논리적 이분법을 가지고, 21세기의 정치와 경제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개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한쪽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익의 절충을 꾀해 타협안을 만드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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