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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찬국의 세계경제] 역사의 긴 손에 덜미 잡힌 브렉시트(BREXIT)
입력 2019-02-22 05:00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 시한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도 어떤 식의 결별일지 오리무중이다. 도박사 기질의 정치인들은 극단적 불확실성을 즐길지 모르나 기업들에는 독이다. 최근 일본의 닛산과 혼다가 영국 내 공장 축소를 발표했는데 비슷한 결정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의회민주주의 요람의 소위 엘리트 정치인들이 왜 극단적인 대립으로 국가 중대사를 이렇게 몰고 갔을까? 그레이트 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K: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라는 영국의 국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북아일랜드라는 암초에 좌초되어 위기를 맞고 있는 브렉시트호(號)가 여기까지 오기에는 정부의 무능, 정치 시스템의 마비, 그리고 유권자들의 오도된 선택이라는 세 가지가 기여했다.

2016년 EU 탈퇴 찬성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때 탈퇴 진영은 단기 및 장기적 효과가 상당하다고 허위 광고를 했다. 실제 탈퇴가 임박한 지금 일자리가 나라 밖으로 새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 시스템의 문제를 보자. 2017년 6월 의회에서 두 자릿수 차로 다수당이었던 보수당의 테리사 메이 총리가 압승하여 EU와의 협상에서 입지를 강화하겠다며 예정에 없던 선거를 치렀는데 결과는 대패였다. 작년 말 마무리된 EU와의 탈퇴 협정에 대한 올해 1월 의회의 표결에서 큰 표 차로 승인이 거부되었다. 이후 EU와의 재협상 시도도 무산되었고, 토론 및 표결이 거듭되었으나 여·야당 구분 없이 여러 갈래의 의견 차이의 골은 더 깊어지는 양상이다.

아킬레스건(腱)은 북아일랜드 문제다.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일부이나 본토 섬에서 바다 건너 서쪽에 위치한 아일랜드 공화국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아일랜드는 1921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한 후 1949년 현재의 아일랜드 공화국을 수립하며 완전히 독립했다. 현재 아일랜드는 EU의 회원국이자 영국과 달리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다.

오랜 기간 유혈 무력 충돌로 점철된 아일랜드와 영국의 갈등에는 종교의 차이가 중요한 원인이다. 영국은 신교(잉글랜드 성공회)가 주류인 반면 아일랜드는 대부분이 가톨릭 신도다. 역사적으로 보면 가톨릭이 국교였던 아일랜드 왕국이 1801년 잉글랜드 신교 왕국인 UK에 의해 합병된 이후 분리 움직임이 이어져 오다 20세기 초 본격적인 무력 항쟁화했다. 1919년부터 1921년 사이 전개된 게릴라전의 양측 사망자가 약 1400명에 달했다.

그런데 북부지역에는 신교도들이 더 많아 아일랜드가 독립한 이후에도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일부로 남았다. 하지만 이곳의 신·구교도 간 충돌은 계속 이어졌고 가톨릭 무장단체들이 1990년대까지 영국 본토에서 테러를 자행하기도 했다. 오랜 기간 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상이 계속 이어진 결과 1999년 드디어 분쟁 당사자, 아일랜드, 영국 정부 간 ‘벨파스트 협정’이 체결되었다. 북아일랜드에 연립정부가 구성되어 자치권을 행사하며 평화적 공존이 시작되었고, 협정은 향후 북아일랜드 주민이 원하면 아일랜드와 통합을 허용하기로 했다.

영국과 아일랜드가 EU 회원국일 때에는 자유이동 원칙에 따라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의 ‘국경’은 유명무실했으나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사정은 달라진다. 자신들과 북아일랜드의 동질성을 유지하려는 아일랜드의 입장에서 국경 통제는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EU는 회원국 아일랜드의 이런 입장을 대변하였다. 현재의 탈퇴협정은 북아일랜드에서는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새로운 해결책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존의 EU 규정을 유지하기로 했다.

EU와 확실한 절연(絶緣)을 원하는 의원들은 브렉시트 자체를 반대하는 의원들과 오월동주(吳越同舟)하며 협정의 의회 통과를 무산시켰다. 정부안 외 대안이 없다는 벼랑 끝 꼼수가 통하지 않으면 협의가 없는 브렉시트를 감행하기보다 연기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브렉시트 갈등은 역사가 얽혀 있을수록 이를 무시하는 행보가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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