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태희의 통상브리핑] 미세먼지와 통상협상

입력 2019-02-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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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특임교수 前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

2013년 늦가을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 한·중 FTA 8차 협상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수석 대표로 참석한 필자는 인사말을 하면서 창문 너머 송도의 뿌연 하늘을 가리키며 ‘중국 공장에서 발생하는 매연과 황사로 한국 국민들은 청명한 가을 날씨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중국 측이 사과하고 이번 협상에서 많은 양보를 해 주기 바란다’는 요지로 발언했다. 이 말을 듣고 중국 대표는 잠시 생각하다가 “한국 사정도 딱하지만, 중국도 피해자”라고 답변했다. 베이징도 몽고 고비사막에서 날아드는 황사로 눈을 뜰 수가 없을 지경인데, 따지려면 몽고에 따지라는 것이다. 중국의 답변이 괘씸했지만 과학적 증거나 정확한 통계 없이 환경오염을 논하다가는 큰코다치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국경을 넘어선 환경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1920년대 미국·캐나다 간 환경분쟁이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트레일 제련소에서 배출한 아황산가스가 바람을 타고 컬럼비아 강 계곡에 유입되면서 미국 워싱턴주 사과 농장에 큰 피해를 주었다. 미측 피해자들이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인과 관계 입증이 어려워 1928년 합동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외교적 해법을 선택했다. 그래도 진전이 없자 중재 재판이 수년간에 걸쳐 열렸고, 1941년 최종 판결에서 캐나다 제련소가 배상금 43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 판결로 어느 한 국가의 국내 활동으로 다른 국가의 환경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국제법상의 원칙이 세워졌다.

그러나 국제 환경분쟁은 당사국에만 맡겨서는 해결이 안 된다. 앞의 사례와 반대로 1970년대 북미 산성비 오염사건에서는 미국이 가해자가 되었다. 미국 오대호 공업지역의 자동차, 화학공장 등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으로 캐나다의 산림자원은 큰 산성비 피해를 보게 되었다. 양국은 수년간 옥신각신하다 1978년 연구그룹을 결성하고 공동조사를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1980년 레이건 행정부 출범 이후 산성비 피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과학적 증거가 없다며 제동이 걸렸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입씨름만 계속하고 있다. 항상 그렇듯이 국제 환경분쟁도 강대국이 우기면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보다 효과적인 대책은 국제사회에 부당성을 알리고 객관적 입장에서 해결책이 마련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1950년대 북유럽 산성비 오염사건에서는 피해자인 스웨덴은 영국과 서독에서 날아온 아황산가스를 주범으로 지목하고 먼저 연구 결과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발표했다. 그 뒤 스웨덴 정부는 1972년 ‘인간 환경에 관한 유엔 회의 선언’(스톡홀름 선언)이 채택되도록 국제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국제공조를 얻어냈다. 애초 혐의를 부인했던 영국과 서독도 국제적 압력에 굴복해 유럽 11개국이 참여하는 대기 오염물질 이동 측정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1979년 회원국 의무를 규정한 국제협약이 서명되었다.

요 며칠 우리나라 날씨를 보면 미세먼지 문제는 단순한 환경문제를 넘어 전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최대 현안이 되었다. 국내에서의 자동차 운행 제한, 발전소 가동이나 건설 사업장의 단축 운영 등으로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새해 들어 1㎥당 150㎍을 넘는 고농도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발생하고 있는데, 중국으로부터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 가해자라는 과학적 증거와 객관적 데이터를 많이 확보해야 한다.

최근 중국 사정으로 연기된 한·중·일 국책연구기관의 미세먼지 공동 조사를 이른 시일 안에 재가동해야 한다. 한·중·일 환경장관회담(TEMM)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관된 메시지로 중국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해야 한다. 또한 각종 국제회의나 통상협상에서도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누누이 중국 측 책임을 묻고 대책을 요청해야 한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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