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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의 인문경영] 아버지 부(父)에 담긴 뜻은?
입력 2019-02-18 05:00
작가

얼마 전 한 여성 아나운서가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다”고 고백하는 글을 올려 네티즌의 관심을 받았다. 개천에서 난 용인데도 ‘용’을 만들어준 노고에 감사하긴커녕 오히려 부끄러워했던 과거를 후회한다는 내용이었다. 하긴 부모님을 떠올릴 때 후회를 넘어 참회하지 않을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릴 때의 느낌은 다소 다르다. 어머니가 애틋하다면 아버지는 뭉클하다.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그리움이라면 아버지에 대한 마음은 아쉬움이다.

대중가요 가사만 봐도 그렇다. 어머니는 김창완의 노래 ‘어머니와 고등어’처럼 다정하고 구체적이다. “어머니 코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보다. 소금에 절여놓고 편안하게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구일 먹을 수 있네~” 하는 식으로 가까이에서 관찰한 소소한 삶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반면에 아버지는 어떤가. 역시 대중가요의 가사를 통해 살펴보자.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했었다.”(인순이 ‘아버지’) “한평생 처자식 밥그릇에 청춘 걸고 새끼들 사진 보며 한 푼이라도 더 벌고, 눈물 먹고 목숨 걸고 힘들어도 털고 일어나, 아빠는 슈퍼맨이야, 얘들아, 걱정 마.”(싸이 ‘아버지’) 대중가요에서 묘사되는 아버지상(像)의 공통점은 가까이 가기엔 너무 먼 강한 모습이다.

동양의 대표적 고전 ‘논어’ 등에 아버지로서의 공자의 모습을 기록한 글을 봐도 그렇다. 평생 3000명의 제자를 길러낸 그이지만 아들 백어(伯魚)에겐 “시를 배웠느냐” 한마디 불쑥 던지곤 “시를 배우지 못했으면 남과 더불어 사물을 제대로 말할 수 없느니라” 하는 게 고작이다. 공자의 부인, 즉 친모가 돌아가셔서 슬피 우는 아들에게 “예절을 넘어선다”고 훈계하는 게 아버지로서 드러난 모습 전부다(공자의 이혼 여부는 설이 분분, 정확치 않다).

속으론 끌탕할망정 밖으론 강한 척하는 게 전통적 아버지상이다. 밖에선 슈퍼마켓맨을 하더라도 집에선 슈퍼맨으로 변신하고픈 게 아버지의 마음이다. 하긴 ‘아버지 부(父)’의 한자 자원(字源)을 살펴보면 이는 가장의 천형(天刑)이자 천부적(天賦的) 권리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父의 자원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설은 ‘도끼 부(斧)’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다. 돌도끼 또는 몽둥이를 쥐고 있는 손의 모습이다. 돌도끼는 원시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이자 기본적인 생산 도구였다. 그리고 적과 싸워서 가족을 지키고, 사냥을 해오는 것은 성인 남자의 책임이었다. 아버지는 돌도끼를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밖으로 나가 수렵에 종사하고 야수나 적의 침입을 막았다. ‘가마솥 부(釜)’에 父 자가 들어가는 것은 아버지처럼 큰 솥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선사시대 이래 남성 위주의 역사가 진행되면서, 그 역사를 주도해 왔던 왕(王)을 비롯하여 사(士, 무사, 후의 문인관료), 부(父, 아버지, 가족의 가부장) 등은 모두 도끼의 상형문자란 게 일치된 견해다. 나무를 베거나 목을 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서 도끼가 권력자 내지 권력자의 생사여탈권을 상징하게 되었다.

‘王’은 도끼의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다. 도끼 자체는 날과 머리 그리고 중간에 자루를 끼우는 구멍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이 세 부분의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가 바로 王이다. 도끼는 도구를 넘어, 물리적 강제력과 더불어 생사여탈권 등 권력의 상징이다. 왕의 도끼가 궁실의 권위라면 아버지의 도끼는 가정에서 권위의 상징이었다. 이에 반해 ‘어머니 모(母)’는 손을 모으고 있는 여인(女)에 유방을 의미하는 두 점이 더해진 모습이다. 즉 젖을 먹여 자식을 키우는 모습이다.

요즘 부권(父權)이 날로 추락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가부장(家父長)이 아니라 가모장(家母長) 사회라고도 한다. 슈퍼맨 같은 아버지에서 프렌드형(型)이 뜬다고도 한다. 아버지 부의 한자 자원을 살펴보면 원시농경사회가 아닌 정보화사회에서 아버지상의 변화는 예고된 결과다. 도끼의 용도는 산업혁명을 거치며 그 생명을 다했지만 젖을 먹이는 역할은 여전히 유용하지 않은가. 아버지 부를 대체할 한자를 새로 만든다면 도끼 부 대신 어떤 상징을 넣어야 할지 자못 궁금하다. 앞으로 아버지 관련 대중가요는 ‘아버지와 라면’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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