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경기 추락하는데 어긋난 정책만 고집

입력 2019-01-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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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체감경기가 34개월 만에 가장 나쁜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전국 3027개 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30일 발표한 ‘1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서 전체 산업의 업황 BSI는 69로 2016년 3월(68) 이후, 특히 제조업은 67로 2016년 2월(63)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기업 BSI는 기업이 경기 상황을 판단하는 심리지표이다. 100 미만이면 경기를 비관하는 기업이 좋게 보는 곳보다 많다는 의미다. 2003년부터 작년까지 제조업 BSI의 장기평균은 79였는데 급격하게 추락한 것이다. 자동차·조선·철강 등 주력산업이 쇠퇴하고 있는 데다, 그동안 경기를 홀로 지탱해온 반도체가 수요 둔화로 부진에 빠진 까닭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 요인도 크다. 제조업 중에서 중소기업 BSI가 61까지 떨어져 지난달보다 8포인트나 내려간 것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 2월 제조업 전망 BSI가 65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4월(59)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반도체 부진에 따른 전자·통신, 설비투자와 관련된 기계장비, 자동차 및 건설의 전방산업인 고무·플라스틱 업종 등의 하락폭이 크다. 비제조업 전망 BSI도 70으로 전달보다 2포인트 빠졌다. 최저임금에 민감한 도소매(64)와 숙박(45) 업종이 많이 떨어졌다.

지금 경기 형편이나 앞으로의 전망 모두 암울하기 짝이 없다. 가라앉는 제조업을 일으킬 새로운 성장동력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호조를 보였던 수출까지 작년 12월에 이어 이번 달에도 감소세를 나타낼 것이 확실하다. 기업들이 최대 애로 요인으로 꼽은 내수 부진이 소비 증가의 긍정적 신호를 보이고는 있으나, 여전히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다.

결국 정부는 더 이상의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지방의 도로·철도·공항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23건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고 24조1000억 원의 재정을 쏟아붓기로 했다. 대부분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됐으나 지역균형발전의 명분을 내세워 대규모 토목·건설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이 같은 토건사업이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산업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대책과 거리가 멀다. 국민 혈세 낭비를 차단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를 어겼고,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무리수다.

근본적으로 핵심 경제 주체인 기업의 투자심리를 되살리고, 산업 구조조정과 노동개혁이 뒷받침돼야 경기 회복의 돌파구를 마련하면서 지속 가능한 경제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실패한 ‘소득주도 성장’을 고집하면서 조금도 정책 방향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세금 퍼부어 경기를 살리겠다는 무모한 실험만 되풀이하고 있다. 장기 불황의 악순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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