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語 달쏭思] 설날과 봄

입력 2019-01-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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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음력을 사용할 때는 설날이 한 해의 첫날이었지만 세계가 거의 다 양력을 사용하고 서기를 쓰는 지금, 설날은 새해맞이의 의미보다는 새봄맞이의 의미가 더 크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생명이고 희망이다. 설날과 함께 우리는 다시 희망찬 새봄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조선 말기로부터 항일 시기를 거쳐 광복과 6·25 동란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수난기를 다 겪으며 일생을 산 호남지방의 큰 학자이자 명필인 유재 송기면(裕齋 宋基冕:1882-1956) 선생은 작고하던 해인 병신년의 설날에 “누가 나서 가슴에 품은 부드러운 덕을 베풂으로써 온 세상이 화합하고 사람마다 각기 봄을 얻게 했으면…(何人能施柔懷德, 四海融融各得春.)”이라고 읊었다. ‘봄을 얻는다’는 것은 희망과 생기를 얻는다는 뜻이다.

송기면 선생이 이 시를 쓴 해인 1956년은 6·25 한국전쟁을 치른 지 3년도 채 안 지난 때라서 좌익과 우익이 아직 서로를 향해 살기를 띠고 있을 때이고, 또 전쟁으로 인한 폐허로 국민 대부분이 굶주림과 헐벗음에 빠져 있을 때다. 이러한 때에 송기면 선생은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면서 누군가가 나타나서 부드러운 덕을 베풂으로써 서로가 화합하여 국민 모두가 희망과 생기를 얻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시를 쓴 것이다. 중요한 점은 가슴에 품은 부드러운 덕을 세상에 베풀어야 온 세상이 화합하여 봄과 같은 희망과 생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한 점이다.

공자는 “정치로만 백성을 이끌고 법으로 형벌만 집행하여 다스리려 한다면 백성들은 그런 정치와 법률의 망을 피하려고만 들 뿐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導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고 하였다. 우리 사회의 민심이 날로 사나워지고 있다. 뭐든지 ‘법대로 하자’는 막된 풍조가 성하고 있다. 四海融融各得春! 부드러운 덕의 정치와 부끄러움의 회복이 절실한 때이다. 何:어찌 하. 能:능할 능. 施:베풀 시. 柔:부드러울 유. 懷:품을 회. 融:융합할 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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