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자가 해봤다] "몸이 아파 봐야 서로를 이해하지"…80대 노인 체험해 보니 '눈앞이 캄캄'

입력 2019-01-15 16:27수정 2019-01-15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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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아빠 잘 계시죠? 이번 크리스마스 못 갈 거 같아요. 내년엔 꼭 갈 수 있도록 할게요. 다 잘 될 거예요. 약속드릴게요. 아빠 메리 크리스마스.”

“나중에 봬요. 할아버지 메리 크리스마스.”

결국 80세의 노인 A 씨는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냈다. 매번 그의 아들과 딸은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핑계로 찾아오지 않았고 올해도 그는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낼 것만 같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A 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그의 아들·딸에게 전해졌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은 아들·딸은 곧바로 A 씨의 집을 찾아왔다. 슬픔에 잠긴 아들·딸 앞으로 세상을 떠난 줄 알았던 아버지가 나타났고, 그는 “내가 너희 다 모으려면 뭐 별수 있었겠니?”라고 말한다.

A 씨의 거짓말에도 그가 살아있음에 아들·딸은 죄스러운 마음과 함께 눈물을 쏟으며 기뻐한다. 그렇게 그는 가족들과 함께 모처럼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다.

이것은 독일에서 화제를 모은 대형 슈퍼마켓 체인 에데카(EDEKA)의 광고 내용이다. 이 광고는 매년 크리스마스에도 가족들이 찾아오지 않는 독거노인의 외로움을 그렸고, 큰 호응을 얻었다.

이 광고가 이처럼 큰 호응을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어쩌면 고령화시대를 마주한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2000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7% 이상인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데 이어, 17년 뒤인 2017년 8월에는 노인 인구가 전체 14%를 넘어선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빠르게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있으며, 혼자 사는 독거노인의 비중도 급증하고 있다. 올해 독거노인의 수는 140만5000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노인층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노인은 대체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노인층에 대한 복지 증대 역시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는 팔, 다리, 몸, 눈 등 80대 노인으로 변할 수 있는 체험복을 착용하게 된다.(이재영 기자 ljy0403@)

왜 노인들에 대한 인식은 고집이 세고, 막무가내이고, 화도 잘 내는 이미지로 굳어져 있을까.

14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노인생애체험센터를 방문했다. 이날 체험은 50~60대 4명과 사회복지사를 지망하는 대학생 4명, 본지 기자로 구성해 진행했다.

가장 의외인 것은 젊은 층의 참여뿐만 아니라 60대도 체험에 함께한 것이었다. 유엔 통계 기준으로 노인이 65세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이미 노인에 해당하는 이들도 노인생애체험에 나선 셈이다. 어쩌면 그만큼 노인에 대한 기준이 잘못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65세 이상의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자리를 지키며 꾸준히 일하고 있다. 젊은 층과도 경쟁하며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65세 이상 서울 시민 303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노인실태조사 결과, 이들이 생각하는 노인 기준 연령은 평균 72.5세였다. 10명 중 4명은 75세 이상이 노인이라고 응답했다. 유엔 통계 기준보다도 10세나 높은 셈이다.

이날 체험 역시 80세 노인의 삶을 대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60대의 노인생애체험 역시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사회복지사로부터 노인에 대한 이해를 위해 간략한 설명이 이어졌고 가장 인상 깊었던 설명은 '노인이 겪는 4고(四苦)'였다. 빈고(貧苦: 경제적 어려움), 고독고(孤獨苦: 소외감), 무위고(無爲苦: 역할 상실), 병고(病苦: 건강) 등 네 가지를 뜻하는데, 이 중에서도 고독고와 무위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에서 언급한 독일의 노인 광고처럼, 점차 무기력해지고 가족마저도 외면하는 노인에게 강한 자존심과 잦은 화를 내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80대 노인이 되기 위한 장비를 모두 착용했다. 이제 본격적인 노인생애체험이 시작된다. (이재영 기자 ljy0403@)

◇장비 착용하니 몸이 휘청…그간 몰랐던 불편과 위험이 눈앞으로=10분가량의 강의가 끝나고 본격적인 체험 활동에 들어갔다.

80대 신체를 체험하기 위해 팔과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리와 팔, 몸에 억제대를 채웠다. 눈에는 시야가 흐릿해지는 고글을 착용했다. 모든 장비를 착용하고 나니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움직일 때마다 저절로 허리가 굽어졌다. 공공생활 체험공간으로 이동을 시작하자, 모두 엉거주춤한 상태로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이다.

체험관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겪는 집 구조를 그대로 구현한 모습이었다. 첫 난관은 현관의 문턱. 평소라면 아무 거리낌 없이 드나들었겠지만, 모래주머니와 억제대를 착용하니 이것마저 쉽지 않았다.

▲노인들에게 욕실은 위험한 공간이자, 많은 개선이 필요한 공간이다. (이재영 기자 ljy0403@)

현관을 들어가자 문손잡이부터 과연 어떤 형태가 편할지 살펴볼 수 있었다. 손 관절을 이용해 돌려야 하는 일반식 문손잡이와 아래로만 내리면 되는 레버식 문손잡이가 눈에 들어왔다. 두 가지 방식 중 레버식 문손잡이가 문을 열기 훨씬 편했다.

이어 향한 욕실에서는 욕조용 벤치와 욕조용 리프트, 샤워용 의자, 변기 높이 시트, 높낮이 세면대 등을 체험할 수 있었다. 사실 노인들이 가장 위험한 장소이자, 불편을 느낄만한 장소도 이 욕실이다. 바닥에서 미끄러질 확률도 높고, 높이가 있는 욕조는 들어가고 나오는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욕조에 들어간 한 체험 실습자는 빠져나오기가 어려워 계속 허우적댔다. 그런 모습에 웃음도 나왔지만, 80대 노인이 만일 그런 상황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보니 왠지 아찔해졌다.

▲침대와 한몸이 됐다가 떨어지려고 하니 홀로 일어나기조차 어려웠다. (이재영 기자 ljy0403@)

다음은 침대 체험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생활하는 게 편할지, 바닥에 누워서 생활하는 게 편할지를 체험하는 것이었는데, 잠깐의 체험이 힘들어 이때만큼은 마냥 침대에 누워있고 싶었다. 막상 홀로 일어나려고 하니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 일어나는 것이 편했는데, 우리나라에 독거노인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조차 사치였다. 바닥에 눕는 것은 무릎부터 아파왔다. 벌써 여기저기서 “아이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교육을 담당한 사회복지사는 “가끔 어르신들과 식사 자리를 가질 때가 있는데, 좌식으로 된 식당을 가면 어르신들이 가게를 들어오다가도 밥을 안 먹겠다고 돌아간다고 한다”면서 “앉았다 일어나는 것이 그만큼 힘든 거다. 되도록 어르신들과 식사 자리를 하게 되면 식탁으로 된 입식 식당을 예약하라”고 당부했다.

▲80대 노인의 시력은 어둡다. 노인들이 편안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냉장고 안의 물품에 유통기한을 크게 적어놓고 물도 작은 용기에 넣어 놓는 것이 좋다.(이재영 기자 ljy0403@)

냉장고 체험에서는 80대 노인이 집에 있다면 냉장고 안 물품에는 유통기한을 크게 써 놓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음료병에 약품이나 몸에 유해한 제품을 담아놓는 경우 위험할 수 있는 만큼,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물은 2ℓ처럼 큰 통보다는 500㎖처럼 작은 통에 나눠 담아 놓는 게 바람직하고, 음식 통은 뚜껑 이음새 사이에 턱이 있는 제품을 사는 것이 편했다.

또 인덕션과 가스레인지 제품에 대한 비교도 해봤다. 인덕션의 경우 가스레인지보다 화재의 위험성이 없다. 여기에 큰 냄비를 올리고 내릴 때도 냄비를 밀기만 하면 돼 더 편리하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계단은 이날 체험한 장소 중 가장 힘이 들었던 코스였다. 계단의 턱은 평소보다 잘 보이지 않았고, 넘어질까 조심스러워 허리도 저절로 더 숙어졌다.

지하철역에서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찾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간 무심코 봤던 모습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편하지 않았다.

마지막 휠체어 체험에서는 휠체어 이용법부터 노인들을 편안하게 태우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기자에겐 할머니 생전 휠체어를 몰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익숙하면서도 자신이 있는 체험이었지만, 어느덧 잊고 있었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는 체험이기도 했다.

▲노인들에게 생활하면서 가장 어려운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계단이다. 시야도 흐리고 다리도 불편한 상황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려면 손잡이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재영 기자 ljy0403@)

◇내게도 올 80대…무엇을 준비해야 할까=그렇게 모든 체험을 마치고 뒤, 체험자들은 노인생애체험에 대한 소감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복지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박인혜(24) 씨는 “평소 노인이라고 하면 고집이 세고 시선이 좋지 않은데 나도 그런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라며 “그런데 오늘 체험으로 인해 앞으로 노인분들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시간의 체험을 마치고 나니, 아직 젊고 건강하다는 사실에 무척 감사했다.

그저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게 어떤 건지, 실제로 체험을 해보니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일상에서 가장 많이 하는 앉았다 일어났다 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너무 슬펐고, 이게 내게도 다가올 현실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짧았지만 길었던 2시간의 체험을 통해 지금의 날들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지 배웠다. 그리고 앞으로 맞을 80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 나 자신에게 진지하게 질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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