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교수, 미 법인세 감세 1년 기업과 주주 주머니만 챙겼다

입력 2019-01-0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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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 낮춰 투자 늘린다는 것은 신자유주의 허상, 경제학계 정설은 어렵다

“법인세율을 낮춰줌으로써 투자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은 신자유주의 이념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현재 경제학계의 정설은 법인세를 통해 투자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준구<사진>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구랍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감세정책으로 인한 긍정적 효과가 부분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 과실을 누가 주로 가져가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감세가 투자 증가로 이어지고 그 결과 일자리가 늘어나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내는 한에서 감세정책이 정당화될 수 있다”며 “그러나 (미국) 감세정책 실시후 1년이 지난 지금의 중간성적표를 보면 그런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졌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 오직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기업과 주주들이 감세정책으로 인한 과실을 거의 모두 주머니에 챙겼다는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35%였던 법인세율을 21%로 낮춘바 있다. 이를 통해 미국 기업들은 2000억 달러에 이르는 법인세를 절약할 수 있었다. 다만 골드만삭스 전망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이 지난해 전체에 걸쳐 수행한 자사주 구입액은 무려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 교수는 “기업이 사내에 유보된 자금을 자사주 매입에 썼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주주들에게 그만큼의 배당을 지급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사주 매입이 주식 가격을 올려 주주들에게 자본이득(capital gains)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며 “이와 같은 기록적 자사주 구입의 배경에 법인세율 인하로 인한 세후 수익의 급격한 증가가 있을 것임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감세로 노동자들에게 돌아간 몫은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봤다. 실제 감세로 투자를 확대하고 임금 인상과 보너스 지급을 약속했던 기업 중 모범사례로 꼽히는 애플사의 경우도 2018년 한 해 6000명 고용에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1000억 달러에 이르는 자사주 매입과 더불어 20억 달러의 추가 배당금 지급을 발표했다. 애플은 5년 동안 2만 명 고용을 약속한 바 있다.

되레 고용을 줄인 기업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가 꼽힌다. 이 교수는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감세정책 덕분에 수십 억 달러에 이르는 세후 수익의 증가를 누리고 이를 대규모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증가에 썼다는 사실”이라고 일갈했다.

다음은 이준구 교수의 페이스북 글 전문.

[ "미 법인세 감세 1년, 기업들 배만 불렸다 ..... 일자리 줄기도" ]

이것은 오늘 한국일보 22면에 실린 기사의 제목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트럼프(D. Trump)가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한 일이 바로 법인세율의 대폭 인하였습니다. 35%였던 법인세율을 21%로 낮추었으니 이만저만 큰 폭의 세율 인하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트럼프는 지난 해 말 이 감세정책을 발표하면서 미국 국민에게 엄청난 크리스마스 선물 보따리를 안겨 주었다고 자랑했다지요.

우리나라 보수언론들은 그 소식이 나오자마자 부러움에 가득 찬 전망 기사들을 쏟아냈습니다. 이제 미국 기업들은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에 따라 일자리도 무척 많이 만들어질 것이라구요. 감세정책이 발표된 직후 해외로 나갔던 몇몇 미국 기업들이 돌아오고 투자를 늘릴 기미도 보였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일보가 인용한 New York Times의 기사는 그 감세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감세정책 덕분에 미국 기업들은 무려 2천억 달러에 이르는 법인세를 절약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 기업들은 절약된 법인세를 투자 확대, 임금 인상 그리고 보너스 지급에 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노동자들에게 돌아간 몫은 그 중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그 기사의 지적입니다. 미국 대기업들이 2018년도 3분기 자사주 구입(stock buybacks)에 쓴 돈은 무려 2천억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기업이 사내에 유보된 자금을 자사주 매입에 썼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주주들에게 그만큼의 배당을 지급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입니다. 자사주 매입이 주식 가격을 올려 주주들에게 자본이득(capital gains)을 가져다 줄 테니까요.

골드만삭스의 전망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이 2018년 전체에 걸쳐 수행한 자사주 구입액은 무려 1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기록적 자사주 구입의 배경에 법인세율 인하로 인한 세후 수익의 급격한 증가가 있을 것임은 너무나도 뻔한 일입니다.(2018년 3분기의 세후 수익은 전년도 동기에 비해 20%나 되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결국 감세정책 덕분에 기업이 절약할 수 있었던 법인세의 거의 대부분이 주주들의 주머니로 들어간 셈입니다. 이에 비해 노동자의 복지 향상으로 들어간 돈은 매우 미미하다는 것이 그 기사의 지적입니다.

그 기사는 그래도 가장 약속을 잘 지킨 기업의 예로 애플사를 들고 있습니다. 애플사는 5년 동안 2만 명을 더 고용하기로 약속한 바 있는데, 2018년 한 해 동안 6천 명을 더 고용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1천 억 달러에 이르는 자사주 매입과 더불어 20억 달러의 추가적 배당급 지급을 발표한 것을 보면 감세정책의 주 수혜자는 주주임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감세정책이 실천에 옮겨진 후 일부 기업들은 약속대로 고용을 늘렸지만 반대로 고용을 줄인 기업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뱅크 오브 아메리카나 웰즈 파고 같은 은행인데, 그들은 고용 감축의 이유로 모바일 뱅킹의 증가 등을 들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감세정책 덕분에 수입 억 달러에 이르는 세후 수익의 증가를 누리고 이를 대규모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증가에 썼다는 사실입니다.

법인세율의 대폭 인하가 투자의 획기적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도 그리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2018년 1분기와 2분기에 (비주택) 고정투자는 각각 11.5%와 8.7%의 높은 증가율을 보인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3분기에 들어와서는 2.5% 수준으로 급격히 떨어지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2019년도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감세정책의 투자촉진 효과가 급격히 감소할 것임을 예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세정책이 발표된 직후의 급격한 투자 증가세는 지속되기 어려운 일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는 셈이지요.

내가 늘 지적하는 바지만, 법인세와 투자 사이의 연결고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확실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법인세율을 크게 내려준다 해서 투자가 분명하게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다는 말입니다. 법인세가 투자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연구한 수많은 논문의 결과가 그렇습니다.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법인세제상에 투자 유인책을 도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와 같은 정책의 핵심은 투자와 관련된 기회비용을 줄여줌으로써 투자를 촉진시키자는 데 있지요. 그러나 많은 연구결과가 투자의 기회비용이 줄어든다 해서 투자가 증가한다는 보장은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경제학계의 정설은 법인세를 통해 투자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법인세율을 낮춰줌으로써 투자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은 신자유주의 이념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입니다. 불행히도 일반인으로서는 이 허상을 정확하게 꿰뚫어볼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감세정책으로 인한 긍정적 효과가 부분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실을 누가 주로 가져가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감세가 투자 증가로 이어지고 그 결과 일자리가 늘어나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내는 한에서 감세정책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세정책 실시 후 1년이 지난 지금의 중간성적표를 보면 그런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졌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오직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기업과 주주들이 감세정책으로 인한 과실을 거의 모두 주머니에 챙겼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누구를 위한 감세정책인가?”라는 본질적 의문은 또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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