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자가 만났다] '백년가게 1호점' 김운창 사장 "돈 욕심 있다면 순댓국 5000원에 못 팔죠"

입력 2018-12-2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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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가게 서울1호점인 '삼거리먼지막순대국' 김운창 사장이 1976년 구청에서 발급받은 '식품업객업소등록증'을 설명하고 있다. (유정선 기자 dwt84@)

뜨끈한 국물이 떠오르는 스산한 겨울의 어느 날. 대림동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한 순댓국집을 찾았다.

'삼거리먼지막순대국'라는 이름의 이 순댓국집은 올해 9월 서울시 백년가게 1호점으로 선정된 곳이다. '백년가게'는 정부가 30년 이상 한우물 경영을 한 우수 소상공인을 발굴해 100년 이상 존속·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육성사업이다.

가게에 들어가니 순대 특유의 비릿한 냄새보다 참나무 향이 먼저 반겼다. "순대 냄새 싫어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일부러 참나무를 태워 냄새를 잡는 거죠." 가게를 지키고 있는 김윤창(65) 사장의 설명이다.

현판식에는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직접 찾아 순댓국 한 그릇을 먹고 가기도 했다. 김 사장은 "장관님이 순댓국을 드시더니 가격이 싸고 맛도 좋다며 흡족해하시더라"고 웃었다.

김 사장은 2013년 자신의 가게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뒤, 백년가게 모집 공고를 우연히 접하고 '백년가게'를 신청하게 됐다. 어떠한 혜택이나 대가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단지 음식에 대한 자부심 하나 때문.

음식에 대한 자부심은 가게 곳곳에서 묻어났다. 출입문 위쪽에 붙여놓은 큼지막하게 붙여놓은 '1959'라는 숫자는 언뜻 보면 전화번호 같지만, 선친이 본격적으로 가게를 시작했던 연도를 뜻한다.

▲5000원짜리 순댓국에는 김운창 대표의 자부심과 깊은 '정'이 듬뿍 담겨 있다. (유정선 기자 dwt84@)

김 사장의 부친은 1957년 대림시장에서 국수를 팔다 1959년 정식 영업허가를 받고 순댓국 장사를 시작했다. 테이블 몇 개를 갖다 놓고 순댓국을 팔기 시작한 선친은 대림동에서만 40년을 영업했다. 김 사장은 장남으로 대를 물려받아 20년째 한자리에서 손님들에게 따뜻한 순댓국을 대접하고 있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좀 더 번화가로 가게를 옮기고 싶은 욕심도 날 법했다. 하지만, 그는 손사래부터 쳤다.

"아버지 손님들이 4~5대째를 이어서 가게를 찾고 있어요. 지금도 30ㆍ40대가 아이들을 데리고 먹으러 오는 거죠. 그 때문에 꼬마 손님이 가장 귀한 손님입니다. 앞으로 우리 집을 찾을 거잖아요. 추가로 뭘 달라고 하면 돈도 안 받고 아낌없이 줍니다."

김 사장은 또 다른 이유로 임대료를 지적했다. 조금만 번화가로 나가도 임대료가 두 배 비싸진다는 것. 여기서 장사하는 이유 역시 싼 임대료를 내면서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손님들에게 순댓국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손님이 배불리 돌아갈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그의 설명이다.

김치도 4일에 한 번씩 직접 담근다.

"백년가게로 선정되고 손님들이 부쩍 늘었어요. 젊은 사람들도 온라인을 통해 알아보고 찾아오고, 방송에도 몇 번 나오니 손님들이 부쩍 많아지면서 김치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죠."

김 사장은 좁은 주방에서 김치를 담그는 데 한계가 있어 결국 지하까지 확장해 그곳에서 김치를 담그고 있다. 보통 손님이 갑자기 늘면 맛부터 떨어진다던데, 힘든 여건에서도 변함없는 맛을 고수하는 그의 뚝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가게에는 유명 연예인은 물론, 지방에 사는 손님들까지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사실 반찬으로 나오는 다진 마늘은 개그맨 신동엽의 아이디어에요. 원래는 저민 마늘을 내놨는 데 '마늘을 다져서 주면 어떨까'하고 조언을 하더라고요. 그날 스태프들이 와인을 사 들고 와서 순대와 함께 먹기도 했죠."

청주는 물론, 대전, 남양주 등지에서도 그의 순댓국집을 찾는 손님들이 많다. 가격도 저렴하면서 깔끔한 맛이 구미를 당기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그런 손님들의 마음을 알기에 고춧가루 하나까지 허투루 쓰지 않는다. 써보니 장호원 고춧가루가 가장 좋았다면서, 좀 거리가 있긴 해도 장호원까지 직접 가서 고춧가루를 산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백년가게'로 선정되면 백년가게 인증 현판과 확인서가 제공되고 컨설팅, 마케팅, 금융지원, 교육, 소상공인방송홍보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김 사장은 온라인에 홍보되는 정도 빼고 나머지 혜택은 차차 알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1호점이다 보니 백년가게 홍보물에도 그의 얼굴이 실려 있다. 그는 '초상권 신경 쓰지 말고 맘껏 써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백년가게 확인서. 김 대표는 '백년가게'로 선정된 후, 젊은 고객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유정선 기자 dwt84@)

음식점이 유명해지면 그다음은 체인점을 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삼거리먼지막순대국'은 체인점이 없다. 맛 때문이란다.

"큰돈 벌고 싶다면 순댓국을 5000원 받고 안 팔죠. 안 그래요? 가게(체인점) 내 달라는 사람도 많았는데, 다 거절했습니다. 그냥 자식이나 조카가 물려받으면 물려주고요. 이것도 여의치 않으면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운영할 생각이에요."

김 사장은 목공예가 취미다. 그래서인지 가게 곳곳에는 그가 만든 조각물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조각을 연신 자랑하던 그는 "원래 예술가는 배가 고픈 것 아니냐"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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