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식의 시사 인문학] “큰 나라 다스리기는 작은 생선 요리하듯”

입력 2018-12-20 05:00수정 2018-12-2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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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칼럼니스트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治大國若烹小鮮]. 약 2500년 전에 노자(老子)가 한 말이다. ‘팽(烹)’은 대개 ‘삶을 팽’이라고 푼다. 그래서 이 부분을 옮길 때 ‘삶다’ ‘굽다’ ‘찌다’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그렇지만 이 말에서 요리 방법 자체는 본질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으므로 ‘요리하다’로 두루뭉술하게 해석해도 될 것이다.

생선의 특성·조리법부터 꿰고 있어야

노자가 정치를 작은 생선 요리하듯이 하라고 했으니, 국가 정치의 요체를 파악하려면 작은 생선 잘 요리하는 길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작은 생선을 잘 요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요리하려는 생선 자체에 관해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작은 생선’이라고 하지만 크기나 생김새가 비슷해도 실제 명칭은 전혀 다를 수 있고, 이름이 다른 만큼 그 특성이 판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살이 단단하고 비교적 오래 상하지 않는 게 있는가 하면 살이 무르고 금방 상해 버리는 것도 있다. 비슷해 보인다고 하여 같은 생선인 줄 알고 요리하다가는 그르치기 쉽다.

둘째로, 조리 도구들도 적절히 쓸 줄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같은 생선을 굽더라도 가스 불이냐 전자 오븐이냐 연탄불 위에 올려놓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같은 가스 불을 쓰더라도 센 불에 잠깐 굽느냐 약한 불에 오래 굽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 요리를 제대로 하려면 여러 조리 도구에 대해 훤히 꿰고 있어서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한다.

끝으로, 진중(鎭重)한 자세로 요리해야 한다. 그까짓 작은 생선쯤이야 했다가는 큰코다친다. 아니, 작은 생선이니까 더욱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큰 생선은 요리하다 어느 한구석 실수를 저질러도 덩치 자체가 크니까 다른 데서 만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생선을 요리할 때는 사소한 실수라도 전체 요리를 망칠 수 있다. 요리 도중 생선을 이리저리 뒤적이거나 냄비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지 말아야 하는 일도 중요하다. 까딱하면 조바심 때문에 요리를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비결에 반드시 추가해야 할 사항이 더 있다. 어쩌면 이것은 추가사항이 아니라 제시된 여러 요령을 실천하는 데 일관되게 유념해야 할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요리하면서 각 요소가 과연 ‘적당’한지 항상 신경 쓰는 것이다. 즉, 요리의 모든 과정에서 중용(中庸)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지 늘 살펴야 한다. 뭐든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하지 않는가. 중용적 해법을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중간치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잘못된 생각이다. 진정한 중용적 대응은 어떠한 상황이나 사태에 가장 적합한 해법을 동원하여 가장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겨우 일곱 자로 된 노자의 말에서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정치의 대상을 ‘큰 나라’라고 한정하고 있는 점이다. 새삼스레 ‘약팽소선(若烹小鮮)’의 자세가 요구되는 국가의 크기가 궁금해진다. 노자가 ‘큰 나라’의 스케일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바 없으므로 그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 여러 나라를 염두에 둔 것으로 짐작해볼 수밖에 없다.

인구나 국토의 면적, 국가 제도의 복잡성 등을 고려할 때 현대 국가들은 대체로 노자의 ‘큰 나라’에 해당함직하다. 나아가서, 현대 사회의 다원성과 국제적 특성을 떠올려보면 노자의 ‘큰 나라’는 굳이 국가 규모에 관한 언급으로 국한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그가 말하는 ‘큰 나라 다스리기’의 원리는 리더십 일반 원리로 확대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다.

▲서예가 하석 박원규 작 ‘약팽소선(若烹小鮮)’. .

적폐청산 한다면서 새 폐해를 쌓는 꼴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 가장 공들여온 일로 ‘적폐청산’을 들 수 있다. 이 과제는 현재진행형이고 그 큰 가닥 중 하나가 사법 개혁으로 추진되고 있기도 하다.

적폐는 지속적으로 켜켜이 쌓인 폐단이다. 사람과 제도와 문화라는 3요소가 짝짜꿍하여 쌓이는 폐단이다. 적폐 발생에는 일차적으로 폐단(잘못)을 저지르거나 협력하는 당사자 또는 집단이라는 인적 요소가 있다. 폐단 발생에 멍석 역할을 하는 다양한 제도적 측면 또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적폐 형성에는 여러 관행처럼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적 요소 역시 엄연히 작용한다.

이 세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일시적 폐단이나 개인적 범죄는 생길 수 있어도 그것이 누적되는 수준, 즉 적폐에 이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달리 말하면, 적폐청산을 제대로 하려면 이 세 가지 모두를 광정(匡正)해야 한다. 적폐청산이란 과제가 결코 녹록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노자가 말한 ‘작은 생선 요리하기’와 썩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성공하기 어렵고 조심스럽게 추진해야 하는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현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적폐청산 작업을 한번 짚어보자. 적폐 발생 요소들 중 제도적 측면과 문화적 측면은 접어두고 인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춰본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인사 중에 국정농단 혐의로 갇히거나 재판받고 있는 사람이 대충 100여 명 되고 자살로써 대응(?)한 사람도 적지 않다. 며칠 전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이런 성과에 대해 적어도 인적 적폐청산은 성공적이다, 잘 진행됐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함량미달 인사들에게 맡긴 국가요직

다른 문제점은 제쳐 놓더라도, 적폐청산 과정에서 자살한 사람이 나온 사실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적폐청산의 주역들은 이 점을 매우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역사적인 대과제를 추진하다 보면 소수의 희생이나 부작용쯤은 발생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여긴다면 경박함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엄벌에 처해 마땅한 중죄인일지라도 수사, 재판 과정에서 기본적 인권은 마땅히 존중돼야 하기 때문이다. 혐의자나 피의자를 수사할 때 무죄 추정의 원칙은 분명히 지켜져야 하지 않겠는가.

적폐청산과 관련하여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국가 요직의 인사 행태이다. 다소 거칠게 단순화하면, 이전 정권 대부분의 적폐는 부적합한 인사에서 비롯되었다. 적재적소(適材適所)는커녕 국가 공직을 기본 함량조차 미달인 인재(?)에게 전리품처럼 배분하는 인사,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책에 관련 경험조차 별로 없는 사람을 앉히는 ‘보은 인사’ 등등. 이런 시대착오적 행태가 드물게 있었던 게 아니라 비일비재(非一非再)했다. 인사 측면에서 과연 현 정권은 이전 정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뚜렷이 개선됐는가? 개선은 고사하고 더욱 나빠진 면도 있다고 평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현재진행형인 적폐청산 작업을 노자의 ‘작은 생선 잘 요리하기 지침’에 한번 비춰 보고 싶다. 과연 청산 대상자를 적절히 선택하고 적합한 청산 방법을 구사했는가? 무엇보다도 중용적 관점에서 적폐청산의 노력을 기울였는가? 아무리 너그러운 눈길로 봐도 작은 생선을 조심스럽게 요리하는 듯한 진중함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비린내만 풍긴 채 요리 망친 사법개혁

사법개혁 문제도 한번 살펴보자. 현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부 수장으로 임명된 이래 사법 분야에서도 나날이 적폐청산(개혁)의 큰 파도가 넘실대고 있다. 사법부의 중추인 판사들의 엄중한 회의에서 적폐의 원흉격인 판사들에 대한 탄핵 요청이 의결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적지 않은 판사들이 사법 적폐청산 대상자로서 명단에 올라갔고 공개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전직 대법관 몇 명에게 인신구속 영장이 발부되기 직전 단계까지 갔었다.

이런 사법개혁에도 노자의 렌즈를 한번 들이대 보자. 생선 요리가 잘 안 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요리에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툭하면 전임 주방장 탓이나 하고 사방에 냄새만 풍기면서 생선 요리 자체는 제대로 되지 않는 형국이다. 사법부 안에서 해결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어 보이는 문제를 자꾸 울타리 밖으로 내동댕이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까마득한 옛 성현 노자를 다시 소환하여 리더십의 요체를 물어보더라도 대답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리더십은 작은 생선을 요리하듯이 발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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