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생활임금 준수” 주문에 산하기관 ‘난감’…“노노갈등 유발"

입력 2018-12-1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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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투데이DB)

서울시 산하기관의 고민이 커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 및 산하기관 공무원을 대상으로 생활임금 규정 준수를 주문하면서다. 박 시장 지시대로 급여를 지급하려면 10%에 달하는 생활임금 인상률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 산하기관은 지방공기업 예산편성지침에 따라 인건비 예산이 정해져 있는데다가 임금 규정을 어길 시 경영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아 최악의 경우 3년간 성과급을 반납해야 한다.

서울시는 2019년도 생활임금이 1만148원으로 확정됐다고 10월 발표했다. 생활임금제는 근로자가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로 물가상승률, 가계소득•지출 등을 고려해 산정한다. 내년도 서울시 생활임금은 올해(9211원)보다 937원(10.2%) 높은 수준이며 내년도 법정 최저임금 8350원보다 1798원 많다. 1인 근로자의 법정 월근로시간인 209시간을 적용하면 월급은 212만932원에 달한다.

박 시장은 2015년 생활임금제를 도입하고 규정 준수를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2019년도 서울시 지방공기업 예산펀성기준'에서도 '서울특별시 생활임금 조례'에 따라 결정•고시된 생활임금을 준수하라고 명시돼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무원 보수체계를 적용받지 않는 서울시와 시 투자출연기관 21개 소속 직접고용 근로자, 서울시 투자기관 자회사 3개 소속 근로자, 민간위탁근로자, 뉴딜일자리 참여자 등 총 1만여 명이 수혜자”로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각 기관은 이도 저도 못하는 실정이다. 생활임금 규정을 맞추려면 우선 인건비 예산이 더 필요하지만 예산은 한정돼 있어서다. 서울시 산하기관 한 관계자는 "총예산은 정해져 있어 임금을 더 늘릴 수 없다"며 "무기계약직에게 생활임금제를 반영해 급여를 주려면 정규직 등 다른 직원 임금을 떼 줘야 하는데 노노갈등을 유발하는 셈"이라고 하소연했다.

물론 행정안전부는 ‘2019년도 지방공기업 예산편성 기준’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증가분에 대해 총인건비 제외특례를 신설했다. 해당 명목의 인건비 증가분은 총인건비 인상률 산정 시 제외된다. 관계자는 “제외특례가 있어도 생활임금 규정을 준수할 수 있는 만큼의 예산이 편성되지 않는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예산 문제뿐만 아니라 규정상 모순도 있다. 서울시 산하 기관은 인건비 인상률(물가상승률 수준)을 지키면서도 최저임금•생활임금 정책을 동시에 따라야 하는 딜레마에 처한다. 성과급 지급 혹은 임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방공기업 예산편성지침을 보면 각 기관은 경영 평가에 따라 평가급(성과급) 지급 여부 혹은 규모 등이 결정된다. 그런데 경영 평가지표 중 하나가 '임금 규정을 지켰는지'다. ‘2018년 경영평가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지방공기업은 리더십•전략, 경영 시스템, 경영성과, 사회적 가치, 정책준수 등 5개 대분류 지표로 평가되며, 그 중 정책준수 부문은 '인건비 인상률 준수 등 범정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가정책사업 및 지방공기업 경영정책 등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인건비 인상률을 지키지 않을 시 대가는 크다. 경영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성과급 미지급(라 등급), 더 나아가 임금 삭감(마 등급) 사태를 마주한다. 한 급여 업무 담당자는 “호봉제를 채택한 지방공기업의 인건비는 물가상승률에 연동돼 오른다. 하지만 생활임금 인상폭이 호봉제 인상폭보다 커 생활임금을 반영할 경우 임금 지침을 어기게 된다”며 “문재인 정부 지침인 최저임금 인상률(16.4%) 맞추기도 힘들었는데, 최저임금 넘으니 생활임금이라는 또 다른 벽이 있는 셈”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다른 요소에서 만점을 받았더라도 해당 요소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 상위 등급을 기대하기 힘들다. 특히 한번의 경영 평가가 3년간 영향을 미쳐 3년간 성과급을 받지 못할 것”이라며 “생활임금 취지는 좋지만 이대로라면 기존 임직원의 성과급이 날아간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인건비 예외 규정에서 최저임금은 인정되지만 생활임금은 인정되지 않고 있어서 행안부에 건의를 하고 있다"며 "생활임금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으로 보면 된다. 추후 (생활임금 미지급분에 대해) 소급 지급하는 등 점차 해결 방안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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