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키워드] 사기(士氣) - 자신감이 있어야 미래를 그리지

입력 2018-12-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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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마지막으로 웃은 게 언제였나. 사람들은 아까운 목숨을 스스로 끊고 있고, 어처구니없는 사건·사고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이런 날이 계속되면서 우리는 사기(士氣)를 잃고 있다. 자신감 사라진 국민이 되고 있다. 강추위가 오기 전에 우리 마음이 먼저 식었다. 사기가 높으면, 자신감이 불타오르면 굶주려도 추워도 이겨나간다는데 그 어느 것도 없다. 더 춥고 더 힘들어졌다.

사기와 자신감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은 많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러시아군 총사령관이었던 미하일 쿠투조프 원수(1745~1813)도 그중 한 명이다.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를 침공, 모스크바까지 점령하지만 쿠투조프의 반격에 병력 대다수를 잃고 러시아에서 쫓겨난다. 이때부터 나폴레옹의 패망이 시작됐다. 쿠투조프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셈이다.

나폴레옹과 쿠투조프는 1812년 8월 26일 모스크바 인근 보로디노에서 크게 한판 붙는다. 러시아군 4만4000명, 프랑스군 4만 명이 희생됐다. 일견 승자 없는 전투였으나 나폴레옹은 여기서 확실한 승리를 챙기지 못해 역사에서 패배자가 된다.

보로디노 전투 후 모스크바로 물러난 쿠투조프는 황제와 대다수 참모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나폴레옹에게 러시아의 상징인 이 도시를 내주기로 한다. 개전 초 “나폴레옹을 이기고 싶으냐”는 물음에 “아니, 나폴레옹을 속이고 싶을 뿐”이라고 답했던 쿠투조프는 나폴레옹을 속이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철수했다.

승리를 확신하고 모스크바로 들어온 나폴레옹은 200만 명의 인구 중 겨우 1만 명만 남아 있는 것에 당혹해 하고, 러시아가 화평을 구걸하는 사절단을 보내올 것이라는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도시 전체를 불태운 방화와 게릴라전에 시달렸을 뿐이다

▲ 미하일 쿠투조프. 젊을 때 전투에서 오른쪽 눈을 잃었다.
러시아의 혹한이 오기 전에 전쟁을 끝내고 싶었던 나폴레옹은 결국 자신이 먼저 평화회담을 제의한다. 그러나 쿠투조프는 “전쟁은 이제부터요”라고 답한다. 나폴레옹은 결국 점령 두 달 만인 11월 7일 모스크바를 버리고 달아나야 했다. 완전한 참패였다. 나폴레옹은 죽기 며칠 전, “모스크바에 들어간 직후에 죽었어야 했다”는 말을 남겼다. 그 이후에는 살았어도 산 것이 아니었다는 회한을 품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쿠투조프는 부하들이 프랑스군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데에 힘을 썼다. 또 싸움이 벌어지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믿음도 심어줬다. 병사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을 군인 이전에 사람으로 대했다. 보급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함께 나누었다. 병사들은 쿠투조프와 있으면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이게 나폴레옹을 꺾은 원동력이다.

“그는 죽음과 싸우는 수십만의 인간을 단 한 사람이 지휘할 수 없다는 것을 다년간의 군사 경험과 노인의 지혜로 이해하고 있었고, 또한 전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총사령관의 명령도, 군대가 배치된 장소도, 대포나 전사자 수도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이른바 사기라고 불리는 포착하기 어려운 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 힘을 주시하고 자신의 힘이 미치는 범위에서 그것을 지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쿠투조프에게 바친 이 찬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통합의 상징이었던 넬슨 만델라(1918~2013)를 감동시켰다. “만델라는 쿠투조프 장군이 러시아 사람들을 마음속 깊이 이해했기 때문에 나폴레옹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대목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미테랑 대통령 때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지낸 자크 랑은 ‘만델라 평전’에 이렇게 썼다. 쿠투조프는 부하들이 원하는 것을 완벽히 이해했기 때문에 그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었다는 말일 것이다. 만델라는 국민들의 필요를 완벽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어두움과 혼란이 쉬 걷힐 것 같지 않은 나날이다. 사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데, 사기를 불러일으켜야 할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승전가를 부른다. 미래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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