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이코노미] 영화 '소공녀' 속 슈바베지수…"집은 없어도, 취향은 있는" 청년들의 결말

입력 2018-12-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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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이솜 분)와 한솔(안재홍 분)의 사랑을 막는 유일한 방해꾼은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단칸방의 추위다. (사진제공=광화문시네마)

사각형의 좁은 공간. 전구에서 나오는 희미한 붉은 빛만이 방 안을 비춘다. 불빛 아래서 장난을 치던 남녀의 눈이 마주친다. 3초간의 정적. 뜨거움에 휩싸인 커플이 벌떡 일어나 옷을 하나둘 벗기 시작한다. 탈의한 남자가 거칠게 여성을 끌어당기는 순간.

"앗 차가워!"

"안 되겠지? 봄에 하자."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단칸방. 남녀는 너무 차가운 서로의 살갗에 화들짝 놀라며, 다시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미소(이솜 분)와 한솔(안재홍 분)은 서로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는다. 허탈한 웃음을 짓자 입김까지 나온다. 남녀는 따뜻한 봄으로 잠시 사랑을 미룬다.

▲자신을 '프로가사도우미'로 칭하는 미소는 일당으로 4만5000원을 받으며, 인생의 모토인 '빚 없이 살기'를 매일 실천한다. (사진제공=광화문시네마)

영화 '소공녀'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미소의 하루 일당은 4만5000원이다. 월세 1만 원, 식비 1만 원, 약값 1만 원, 위스키값 1만2000원, 세금 5000원, 담뱃값 4000원을 빼면 6000원이 마이너스다. 설상가상으로 월세까지 5만 원 인상되자, 미소는 과감히 집을 포기한다.

미소의 이야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년 빈곤층의 이야기다. 동시에, 주변에서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대학가나 역세권은 물론 역에서 한참 떨어진 비역세권까지 주거 비용이 점점 오르면서 힘들어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지만, 집을 포기하는 청년은 없다. 다른 지출을 막더라도 집이라는 공간 만큼은 수호한다.

이를 수치화시킨 것이 '슈바베지수'다. 슈바베 지수는 1868년 독일 통계학자 슈바베가 베를린의 가계조사를 진행하며 발견한 법칙을 지수화한 것이다. 고소득층일수록 가계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고, 저소득층일수록 가계에서 주거비 비중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고소득층은 주택을 소유한 경우가 많으므로 임대료로 지출하는 비용이 없다. 반면, 집이 없는 저소득층일수록 임대료에 지출하는 비용이 많다. 따라서 수입이 일정한 청년들은 전셋값이 오를수록 슈바베 지수가 높아져 빈곤층에 속하게 된다.

▲집은 포기해도 술과 담배는 포기할 수 없는 미소는 친구들의 구박에도 자신의 취향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진제공=광화문시네마)

미소는 집을 포기함으로써 주거 비용을 '0'으로 만든다. 수치상으로는 최상위 고소득층이다. 하지만,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 한 잔과 담배 한 갑은 포기하지 않는다. 차라리 술과 담배를 끊고 집을 구하라는 친구들의 말에도 미소는 본인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집을 포기하자 미소는 자연스럽게 떠돌이가 된다. 대학 시절 함께 밴드 활동을 하던 친구들에게 연락하며 재워달라고 부탁한다. 대기업에 다니지만 "예민해서 누구랑 같이 잠을 자는 게 불편하다"라며 부탁을 거절하는 친구, 시집살이에 시달리며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는 친구, 이제 결혼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며 사랑 없는 청혼을 던지는 친구. 여러 친구를 만나지만, 미소를 반기는 친구는 많지 않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친구는 대용(이성욱 분)이다. 대용은 매월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100만 원씩 아파트 빚을 갚는데 지출한다. 이렇게 20년을 지출하면 아파트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다. 대용의 슈바베 지수는 50이 넘어 극 빈곤층에 속한다. 대용은 집은 가졌지만, 본인의 취향 하나 제대로 누릴 여유가 없다.

▲남자친구 한솔마저 해외 파견으로 곁을 떠나자, 미소에게 남은 유일한 안식처는 담배와 위스키 한 잔이다. (사진제공=광화문시네마)

영화 말미에 미소는 일자리도 잃고, 잠시 신세를 지던 친구집에서도 쫓겨나면서 진짜 노숙자가 된다. 미소는 한강 둔치 한가운데 텐트를 치고, 그 속에서 지낸다. 영화는 약을 먹지 못하면 백발이 되는 미소의 병을 통해 미소가 얼마나 경제적으로 궁핍한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백발의 미소는 2000원이 올라 1만4000원이 된 위스키를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는 붉은빛이 퍼지는 미소의 텐트를 애처롭게 연출하지 않는다. 작은 공간이지만 어떤 공간보다도 따뜻함이 가득찬 행복의 공간으로 비춘다. 방 한 칸 없이 담배 한 갑과 위스키 한 잔으로 채워지는 미소의 행복. 이 행복이 집 없이 떠돌고 있는 모든 청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한 줄기 위로로 다가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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