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물이 들어와 노를 젓게 하려면

입력 2018-11-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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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주필

▲임철순 주필
문재인 대통령이 며칠 전 국무회의에서 자동차·조선업 실적이 회복되고 있다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속담을 인용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경기 하강세와 제조업 침체가 심각한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진 언급이어서 누구로부터 어떤 보고를 받기에 그런 말을 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물은 많은 것을 표상한다. 생명 인생 변화 학문과 같은 추상적 개념에다 경기나 부와 같은 구체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물이 이용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무실에는 ‘수도선부(水到船浮)’, 물이 불어나면 배가 저절로 뜬다는 말이 씌어 있었다. 원래 치지(致知)의 공부가 쌓여 모든 일이 절로 이치에 맞게 됨을 뜻하는 주자(朱子)의 말이다.

대통령들이 물을 언급하고, 물을 좋아하는 것은 의식하든 하지 못하든 물과 배와 국민(백성)을 이야기하는 주수군민론(舟水君民論)과 관련이 깊다. “임금은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는 순자(荀子)의 말이 그 뿌리이다.

조선의 19대 왕 숙종은 화공에게 주수군민이라는 말로 그림을 그리게 하고 친히 글도 지어 좋은 정사(政事)를 할 것을 다짐한 바 있다. 그러자 초야에 은거 중이던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이 그림과 관련된 글을 가려 뽑아 ‘어제주수도설발휘서(御製舟水圖說發揮序)’를 지어 올렸다. 나라를 다스리는 다섯 가지 방도에 관한 것이다. 그 다섯 가지는 학문을 좋아함, 어진 이를 가까이함, 간언(諫言)을 받아들임, 잘못을 고침, 검소하고 덕을 존중함이다.

이현일은 17세기의 대표적 영남 학자로 율곡을 비판하고 퇴계학 수호에 앞장섰던 선비이다. 그의 어머니 안동장씨는 시문에 능하고 수리학에도 통달해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과 비견되던 인물이었다. 그의 글을 길게 인용한다.

“정사를 보시는 틈에 한번 읽어 보시되 내용을 깊이 음미하여 이치가 가슴속에 푹 젖어들게 하고 아래위로 훑어보아 고금 역사의 득실을 환히 앎으로써, 마음으로 알고 깨달아 여유롭게 자득(自得)하는 데 이르기를 주자의 수도선부의 뜻과 같이하고, 어진 이를 임용하여 함께 시국의 간난(艱難)을 구제하기를 고종(高宗)의 거천주집(巨川舟楫)의 필요와 같이하고, 윗사람은 겸손하고 아랫사람은 기뻐하고 중심을 비워 상응(相應)하기를 주역(周易)의 주허리섭(舟虛利涉)의 괘상(卦象)과 같이하면 (중략) 반드시 실제로 훌륭히 성공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거천주집은 훌륭한 재상을 뜻한다. 은(殷)의 고종이 부열(傅說)에게 재상의 일을 맡기고 자신을 가르쳐 주기를 당부하면서 “만약 큰 시내를 건너고자 한다면 너로써 배[舟]와 노[楫]를 삼으리라”라고 말했다. 주허리섭은 일체의 선입견이나 사심이 없이 텅 빈 마음의 상태로 사물을 접응하는 것을 뜻한다.

갈암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듣건대 배를 조종할 때 형세가 편중되면 가기 어렵고 시내를 건너는 일은 굳건하지 않으면 순조로이 되지 않는다 하니, 이는 바로 배를 타고 물에 뜬 자가 응당 더욱 유의해야 할 점입니다. 물이 새어 배가 가라앉는 상황에서 사공이 닻줄과 노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배 안의 사람들은 모두 물속에 빠져 죽게 될 터이고 기슭에서 이 광경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때 사공을 불러 일깨워서 깊이 술에 취하지 않도록 하여 평정을 되찾고 힘을 다해 백성들을 구제할 뜻을 조금도 늦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 군주가 없지는 않으나 그런 정도로는 모자란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실제로 일을 성취하려면 자신을 돌이켜 보고 스스로 노력하며 쉬지 않는 성(誠)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옳은 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몸과 마음으로 익혀야 한다. 위에서 꼽은 다섯 가지 중 문 대통령이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은 어진 이를 가까이해 조언을 받아들여 잘못을 고차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충고한 말이지만 문 대통령도 ‘청와대 경연(經筵)’을 제도화해 끊임없이 나라와 자신을 점검하고 잘못을 고쳐가기 바란다. 그 경연이라는 게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자리만을 말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fused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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