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펀치] 북한의 무례함

입력 2018-10-3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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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이 말은 지난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우리 대기업 총수들에게 한 말이다.

이런 북한의 무례한 언행을 모르고 넘어갈 뻔했지만, 해당 발언은 2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게 질의하면서 알려졌다. 정 의원이 조 장관에게 “옥류관 행사 때 평양을 찾은 대기업 총수들이 냉면을 먹는 자리에서 리 위원장이 불쑥 나타나더니, 정색하며 ‘아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했다. 보고받았느냐”라고 물었고, 이에 조명균 장관은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고 답했다.

리선권 위원장은 과거에도 비슷한 모욕적 발언을 한 바 있다. 10월 5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단 협의에서 우리나라의 조명균 장관이 예정된 시간보다 2∼3분 늦게 회의 자리에 나타나자, 그는 “단장부터 앞장서야지 말이야”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조 장관이 “시계가 고장 나서 늦었다”고 답하자, 그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자동차라는 게 자기 운전수를 닮는 것처럼 시계도 관념이 없으면 주인을 닮아서 저렇게…”라고 했다. 이 장면은 TV에도 보도됐다.

이렇듯 ‘대놓고’ 면박 주는 모습을 자주 연출하는 북한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조 장관은 리 위원장이 우리 대기업 총수들에게 무례한 발언을 한 것을 두고 “북측에서는 남북관계가 속도를 냈으면 하는 게 있다”고 답했다.

한마디로 남북관계에 속도가 안 나서 총수들에게 면박을 줬다는 말인데, 북한이 진짜 대기업 총수들에게 핀잔을 주면 남북관계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생각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남북관계가 지지부진한 이유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가시적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라는 사실을 본인들도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상식의 영역이다. 더구나 “밥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우리 속담이 말해주듯이, 밥 먹는 자리에서는 총수가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문화이다. 그런데 걸핏하면 민족을 꺼내드는 북한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북한이 우리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만일 북한이, 자신들은 핵보유국이기에 이런 무례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면, 북한의 비핵화가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수도 있다.

한반도 평화가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평화를 추구하는 과정도 매우 중요함을 이번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다. 상대가 우리를 이런 식으로 대한다면, 이런 과정을 통해 구축될 평화는 우리가 바라는 평화와는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즉, 평화는 상대를 배려하고 역지사지하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무례하게 우리를 대하는 북한 정권과 과연 어떤 평화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10월 15일 열린 고위급회담에서도 리선권 위원장은 “역지사지하면서 하나하나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조명균 장관의 말에 “다음부터는 역지사지라는 얘기는 피하자”라고 잘라 말했다. 한마디로 역지사지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태도를 보이는 북한이, 앞으로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전개되면 과연 어떻게 나올지 정말 모르겠다.

이 같은 언행은 북한의 예측 불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북한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부분이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이 더욱 걱정되는 이유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는 적극적 의미의 평화여야 한다. 적극적 의미의 평화란 무력사용의 잠재적 가능성이 제거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북한이 과연 그런 상대인지는 의문이다. 북한이 무조건 자신들의 요구만을 관철하려는 것은 아닌지, 정부 차원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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