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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의 중국 경제인열전] ‘알리바바’의 마윈 - 작고 못생긴 청년, 세계적 기업을 ‘창조’하다
입력 2018-10-10 18:42   수정 2018-10-10 18:55
국회도서관 조사관

2017년 11월 11일, ‘중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로 불리는 광군절(독신자의 날, 光棍節) 세일에서 무려 1682억 위안(元)이라는 매출 기록이 세워졌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30조4000억 원이다. 이 엄청난 매출액은 중국 최대 온라인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가 단 하루 동안 성취해낸 것이었다.

대입시 두 번 낙방한 ‘수포자’

알리바바의 화려한 변신을 성공시킨 CEO 마윈(馬雲)의 삶이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부친이 국민당 말단직을 맡았던 경력 때문에 우익으로 분류되어 이른바 출신성분이 좋지 않았던 그의 가정환경은 빈곤했다.

그는 중국의 유수한 명문대학은커녕 중·고등학교도 3류나 4류 학교를 다녔다. 대학시험에도 두 차례나 실패하였다. 첫 번째 시험에서 수학 성적은 고작 1점이었다. 두 번째 시험에서도 수학 성적은 겨우 19점이었다. 세 번째 시험에서도 총점에서는 불합격이었지만 영어 성적 우수자에게 특별히 기회가 생겨 간신히 항저우(杭州)사범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에 들어간 뒤 그는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고 성실한 학생으로 변했다. 성적도 우수했고, 학생회장에 당선되어 연임하였다.

마윈은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처음엔 컴퓨터 기술을 전혀 알지 못했다. 훗날 그는 “나 자신이 IT 분야에 무지했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젊었을 때는 취업이 되지 않아 KFC 매장 매니저를 비롯해 여러 곳에 지원서를 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사촌형과 함께 호텔 직원에 응모했지만, 사촌형만 붙고 그는 뽑히지 못했다. 호텔 사장은 훗날 그가 마르고 키가 작은 데다 못생겨서 뽑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그는 뛰어난 영어 통역사로 고향 항저우에서 이름을 날렸지만, 그가 세운 조그만 통역회사는 도대체 벌이가 신통치 않았다. 사무실 임대료가 2000위안이었는데, 한 달 수입은 700위안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보따리 장사로 이웃도시인 이우(義烏)와 남쪽 대도시 광저우(廣州)까지 가서 물건을 들여와 어디든 누구에게든 팔아야 했고, 그의 통역회사는 꽃과 선물용품도 팔았다. 훗날 마윈은 당시 결코 실패한 것만은 아니며 대담한 성격을 얻고, 또 ‘시장(市場)’에 대해 예민한 후각을 지니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모든 기업이 부자 되게 하는 문

그가 인터넷에 눈을 뜬 것은 미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귀국 후 곧바로 인터넷 회사를 차린 그는 1999년 항저우에서 알리바바를 창업하였다.

알리바바란 잘 아는 바와 같이 “열려라, 참깨!”라는 뜻이다. ‘영세기업들에 재부(財富)의 문을 열어 준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었다. 지금도 마윈이 내세우는 기업 사명은 “세상에 어려운 사업이 없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세운 사업체는 초기에 단 한 건의 거래도 성사시키지 못하며 폐업 위기까지 몰렸다. 그러나 낙관적인 인생관을 지닌 그는 어려움을 뚫고 끝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중국 저장(浙江)성의 ‘이우’라는 도시는 인구 75만 명의 중소도시로 세계 최대의 소상품 집산지이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집집마다 한 가지 이상의 상품을 생산한다. 모두가 자영업자 사장이고, 각자 시장에 자신의 조그만 판매대가 있다. ‘있어야 할 것은 모두 갖춰진’ 이러한 시장에서 물건은 교역을 통하여 다시 필요로 하는 지역과 사람들에게 물 흐르듯 끊임없이 유통되었다.

알리바바는 ‘중국 공급업자’라는 전문 코너를 개설함으로써 중소형 가공기업들의 상품 정보를 무료로 전 세계에 제공하였다. ‘세계의 공장’ 중국을 배경으로 무수히 많은 소상품 공급업자들이 만들어낸 무수히 많은 상품을 세계 모든 곳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알리바바의 사업 모델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중국의 무수히 많은 상품과 공급자들이 모두 알리바바의 온라인쇼핑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알리바바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는 700만여 명의 판매자와 8억 종 이상의 제품이 등록되어 있다. 소비자는 어떠한 상품이든 알리바바의 온라인 쇼핑에서 구할 수 있다.

마윈은 소기업들이 온라인을 통하여 독립된 세계를 만들어내야 하며, 그것이 곧 온라인의 진정한 혁명성이라고 확신하였다. 2014년 현재 알리바바를 통한 거래는 중국 GDP의 2%에 이르고, 중국 국내 온라인 거래의 80%가 알리바바 계열사들을 통해 이뤄졌다. 국내 소포의 70%가 알리바바 관련 회사들을 통해 거래되었다.

손자병법·36계의 뛰어난 전략

알리바바를 필두로 하는 중국의 몇몇 창조적 기업들은 중국 시장의 조건을 토대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하였다. 이들은 지대물박(地大物博)의 중국이라는 조건에서 전쟁을 치르듯 ‘손자병법’과 ‘삼십육계’의 전략이 현란하게 구사되는 격렬한 시장 경쟁과 현실에서 놀라운 결과를 성취해냈다.

알리바바는 뛰어난 상업 전략을 구사하였다. 마윈은 오픈마켓인 타오바오(淘寶) 사이트를 준비할 때 회사 내에서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친 채 ‘깜짝’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하는 ‘기습공격’ 전략을 구사하였다. 알리바바 B2B 서비스도 마찬가지였다. 타오바오의 B2C 서비스도 판매자들에게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 차별화 서비스로 승부를 띄웠다.

당시 마윈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는 아시아이고, 미국은 미국이다. 지금의 전자상거래는 완전히 미국 방식이다. 아시아는 자신의 독특한 방식을 가져야 한다.” 미국의 전자상거래 거두인 e-Bay는 1999년 1억8000만 달러를 투자하면서 중국 시장에 진출해 시장점유율 90%를 석권하던 절대 강자였다. e-Bay는 12~15%에 해당하는 판매수수료를 받아 챙기고 있었는데, 이것이 그들 이익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e-Bay는 중국 고객들을 자신의 온라인쇼핑 사이트에 등록시킬 때 영문 이름을 요구하였다. 중국 고객으로서는 적지 않게 불편하였다. 중국에 대한 일종의 우월감의 표현이거나 최소한 고객 중심의 서비스 정신을 벗어난 것이었다. 타오바오는 그렇지 않았다.

또 e-Bay는 상품을 등록하거나 매매할 때 모두 유료였지만, 타오바오는 무료였다. 당연히 수많은 판매자와 소비자들이 타오바오로 밀려들었다. e-Bay도 뒤늦게 무료로 전환했지만, 이미 타오바오에 시장을 장악당한 뒤였다. 결국 2006년 e-Bay는 중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나폴레옹처럼 작지만 위대한 꿈

서방을 비롯한 세계 사람들은 중국 시장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중국인들이란 짝퉁이나 만들고 베낄 줄만 알지 ‘창조’와 같은 행위는 도저히 해낼 수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마윈을 위시한 중국의 창조적 기업가들은 독창적인 상업 모델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을 만들어냈다. 알리바바는 전 세계 8억7000만 명의 고객에게 하루 5500만 개의 물건을 배송하는 거대 기업으로서 시가총액 4200억 달러에 이르는 ‘기업 제국’으로 성장했다.

잡지 ‘포브스’는 마윈에 대해 이렇게 평하였다. “오목 패인 광대뼈, 구불구불한 머리카락, 장난기 있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 153㎝의 키에 45㎏의 개구쟁이 어린애와도 같은 이 기이한 사람은 나폴레옹과 같은 체격을 지녔지만, 동시에 나폴레옹과 같은 위대한 꿈도 지니고 있다.”

현대 중국 경제의 ‘작은 영웅’ 마윈은 최근 내년 9월 10일 알리바바 회장의 직위에서 물러난다고 선포함으로써 다시금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9월 10일은 그에게 매우 의미 있는 날이다. 자신의 생일이자, 알리바바 창립 기념일이며, 중국 교사의 날이다. 그는 물러나 교육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며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김용(金庸) 무협소설의 열렬한 팬으로 ‘협객’의 삶을 소망해온 그는 공언대로 내년이면 일선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의 퇴진에는 ‘중국정부 압력설’이 제기되는 등 뒷말도 무성하다. 하지만 일선 후퇴와 관계없이 그의 행적이 앞으로도 세계인들의 뜨거운 관심사가 되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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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 국제관계학과 석·박사, ‘사마천 사기 56’, ‘중국을 말한다’ 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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