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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도 지금의 내가 가장 ‘새로운 나’ 아닐까요”
입력 2018-10-10 18:06   수정 2018-10-10 18:10
[브라보마이라이프] 2006년에 펴냈던 산문집 ‘붉은 리본’ ‘사교성 없는 소립자들’로 재출간 한 소설가 전경린

▲자녀들이 장성하고 난 뒤, 공허함과 홀가분함을 동시에 느낀다는 전경린 소설가는 홀로 책상에 앉아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오병돈 작가 obdlife@gmail.com
‘감정의 일생을 쓰는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전경린(全鏡潾·56). 최근 그는 산문집 ‘붉은 리본’(2006)을 ‘사교성 없는 소립자들’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엮었다. 오랜만에 옛 애인을 만나듯 설렘과 불안의 감정을 동시에 느꼈고, 원고를 다시 펴보기까지는 꽤 머뭇거렸다. 한 편 한 편 지난 글을 읽는 과정이 “새 과도로 얇게 사과 껍질 깎듯 아슬아슬했다”는 그는 사과 속살처럼 드러나는 마음을 보듬어가며 사색의 지도를 그려나갔다.

원고를 다시 읽으며 문장을 정돈하고 새 글을 몇 편 추가했지만, 본래 내용을 바꾸지는 않았다. 지나간 일이란 있었던 그대로가 좋은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은 써낼 수 없는, 그 시절만의 감수성과 예민함이 담긴 문장들이 너무나 귀했기에 차마 훼손할 수 없었다. 다만 눈에 띄게 바꾼 것은 제목. 이전 산문집과 내용은 변함없다지만,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상이했다. 무언가 결합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리본’과 대조되는 ‘사교성 없는’이라는 표현 때문일까. 달라진 제목이 지닌 의미가 궁금했다.

“사람들은 사교성에 대한 강박감이 있죠. 다시 책을 펴내며 한때 썼던 짧은 글들을 별다른 연관성이나 순서 없이 자유롭게 담고 싶었어요. 어떠한 관계의 강박을 덜어내고 ‘사교성 없는’이라 적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한편으로는 단어(소립자)와 단어 사이를 관계 짓는 글쓰기의 어려움을 내포할 수도 있겠다 싶었죠.”

삶의 운명성 발견한 자는 두렵지 않다

산문집 속 ‘생의 방향을 바꿀 때’에는 “욕망이 아니고서는 이 잔인한 삶의 중력을 이기고 다시 가벼워질 방법이 없다. 욕망이란 다름 아닌 자기 안의 능동성이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이에 전경린은 “욕망의 자발성을 적극 긍정한다”며 “능동적으로 욕구한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 덧붙였다.

“욕망과 필요성이 일치하면 참 행복하죠. 노력하기도 쉽고요. 반대로, 필요한 것과 욕망하는 것이 어긋날 때 인간은 무척 괴롭죠. 내 욕망은 따로 있는데, 필요한 것들만 하며 살다 보면 정작 자신과는 멀어져 버려요. 자기 소외가 일어나는 거죠. 최대한 욕망과 필요를 일치시켜 나가야 하는데, 그건 자신의 순수성, 투명성, 선명성 등을 갖췄을 때 잘 이뤄져요.”

또 다른 글을 통해서는 “자신의 삶에서 운명성을 발견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의 길에 들어선 것을 아는 자는 두려움이 없다”라고 했다. 이 또한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었다.

“욕망과 필요성이 일치하면 그만큼 운명성을 찾기가 쉬워요. 아마 그 문장을 쓴 게 40대 초반이었을 거예요. 30대까지는 내가 글을 계속 쓰다 보면 나중엔 더 잘하게 되리라는 믿음이 강했어요.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보니,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걸 깨달았죠. 새로운 글을 쓰는 일은 늘 막막하고, 새로운 벽 같아요.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어디 도망갈 곳이 없을까, 글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 다른 일로는 먹고살 수가 없고, 막상 그러고 싶지도 않더군요. 그 지점에서 ‘아, 나는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운명성을 확인한 거죠. 덕분에 다행히 욕망과 필요성이 일치하는 삶을 살 수 있었어요.”

나에게 부족한 것은 나 자신뿐

작가로서의 운명성을 발견했지만, 책에서 전경린은 “나는 온갖 것에 얽매여 살아왔고, 완전히 작가로서 살아본 적도 없다”고 토로했다. 완전한 작가로 사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소설이 탄생했을까.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작품세계가 펼쳐지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궁금증을 늘어놓자, 그는 “분명한 건 지금보다 훨씬 작품이 적었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완전히 작가로 산다는 건 꼭 작품을 많이 낸다는 의미가 아녜요. 그보다는 저절로 쓰고 싶은 게 생겨날 때까지 기다리고, 내 속에서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충분히 시간 들여 풀어낼 수 있는 여건, 그런 걸 꿈꿨던 거죠. 이상적인 삶을 사는 작가는 드물다고 봐요. 전업 작가로 사는 게 결코 만만치 않거든요. 이 또한 일이니까요. 20년 가까이 작가로 살며 낸 책만 20여 권이니, 거의 매해 작품을 내놓은 셈이죠. 수압이 높을 때 벌어진 틈으로 거센 물줄기가 팍 터져 나오잖아요. 그러한 시달림과 얽매임 사이로 더 속도감 있게 생산적인 글들이 뿜어져 나왔다고 생각해요.”

물론, 자녀들이 독립한 뒤 전보다 여건은 더 좋아졌다. 방해받지 않고 홀로 책상 앞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맘 편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행복을 느꼈다.

“그렇게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는 걸 보면 어떤 사람은 ‘고독’이라 하겠죠. 카프카는 죽기 얼마 전 ‘나에게 부족한 것은 나 자신뿐이다’라는 말을 남겼어요. 현대인은 저마다 ‘자기’가 부족한 삶을 살고 있거든요. 우스갯소리로 ‘출근할 때 집에 간을 내놓고 간다’고 하잖아요. 그렇듯 마음을 집에 두고 다니니 종일 자신하고 떨어져 있는 거예요. 일을 하면서도 외롭고,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낯설어하죠. 우린 너무 오랫동안 나와 헤어져 살아 고독을 힘들게만 여기는 것 같아요.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고독은 오히려 충만한 경험인데 말이죠.”

그의 소설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속 한 노인을 묘사했던 문장이 떠올랐다. “노인은 자신과 함께 삶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인생은 그렇게 사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함께 삶을 느끼며. 가장 편안한 장소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가장 일상적인 기쁨을 누리며.” 전경린 역시 그러한 노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누구든 바랄 수 있는 삶이지만, 그는 자기와의 헤어짐이 길수록 쉽지 않으리라 짐작했다.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자기 삶을 찾거나, 자기를 감당하는 건 어려워요. 그러다 보니 대부분 중년 여성은 자신을 놓아 버리죠. 좋은 엄마, 좋은 할머니로 헌신하며 사는 삶을 택하곤 해요. 나이 든 여자에게 아름다운 것들은 거의 과거 속에 머물러 있어요. 때문에 끊임없이 젊은 시절을 복기하죠. 그립고 슬프지만 결국 지난날 자신의 아름다운 기억과 경험에서 힘을 얻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봐요.”

결핍과 충만, 같은 운명의 다른 표정

충만한 고독 속에서 쓸쓸함과 동시에 홀가분함을 느낀다는 전경린. 그는 나이 들수록 삶에 칭칭 묶여 있던 끈들이 저절로 하나하나 풀어지는 듯하다고 표현했다.

“삶에서 놓여나는 기분이랄까? 공허함이라 할 수도 있죠. 황량하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현실이 그래요. 중년을 지나고 보니 사람의 착각 중 가장 큰 두 가지가 바로 ‘삶은 의미 있다’와 ‘인간은 누구나 특별하다’더라고요. 오히려 젊었을 때는 반드시 이러한 착각을 해야 하루하루 열심히 살 수 있어요. 반대로 나이가 들면 그 착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죠. 그렇게 나와 세상에 관대해지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나이 듦과 함께 찾아오는 홀가분함을 누릴 수 있어요.”

산문집 추천사에서 김훈 소설가는 “전경린의 글 속에서 결핍과 충만은 같은 운명의 다른 표정”이라고 썼다. 그 말처럼 전경린이 느끼는 공허함과 홀가분함, 고독과 행복, 모순되는 것들 사이에는 오묘한 동질감이 존재했다. 젊음과 늙음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흔히 과거의 나는 젊고, 지금의 나는 늙었다고 말하죠. 그건 인생을 연대기적인 관점에서만 보기 때문이에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죠. 새로움을 얻는 만큼 나를 부정하고, 버리고, 상실하기도 해요. 생채기는 남지만 그렇게 자발적으로든 강제로든 우린 나이 듦과 동시에 새로워지는 중이에요. 그러니 아무리 늙어도 언제나 지금의 내가 가장 ‘새로운 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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