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인문경영] 꼰대도 광대도 아닌 통 큰 어른 되기

입력 2018-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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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에 대한 경계는 우리 사회의 주요 담론 중 하나다. 꼰대는 늘 경계와 비판의 대상이다. 심지어 ‘꼰대 포비아(phobia·꼰대 과잉 경계증)’가 생길 정도다. 신세대가 꼰대를 두려워하지만, 기성세대는 꼰대라는 뒷담화를 들을까 봐 걱정한다. 심지어 30대 직장인조차 ‘젊은 꼰대’라는 말을 들을까 입을 다문다고 털어놓는다.

꼰대 포비아 부작용으로 이전 시대엔 없었던 광대형 어른이 등장했다. 이들은 신세대의 맘에 드는 이야기만 적당히 해 관심을 받는다. 인생철학과 조언을 들려주기보다 허물없이 어울리고 맞장구를 치는 동화(同化)를 ‘조화’로 착각한다.

광대형 어른의 폐해는 꼰대 못지않다. 막상 신세대와 대화를 나눈 이들은 “무조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것만은 아니더라. 어른의 죽비소리 같은 매서운 조언에 목말라하더라”는 이야기도 털어놓는다. 꼰대의 참견은 싫지만 어른의 인생철학은 기대한다는 이야기다.

꼰대라고 하면 경기를 일으킨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문제가 되는 것은 ‘말’ 자체보다 발언의 자격이다. 자격 없는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꼰대지, 조언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꼰대도 광대도 아닌 어른의 자격은 무엇인가.

먼저 주착과 주책의 구분이다. 어른은 주착(主着)이 있다. 어른은 주책없는 것을 조심하되 주착은 가졌다. 주착의 사전적 정의는 일정하게 자리 잡힌 생각이다. 바꿔 말해 줏대가 있는 것이다. ‘주책없다’는 자신이 할 일도 아닌데 먼저 덤비는 사람이다. 한자어인 주착(做錯)이 이에 해당한다. 잘못인 줄 알면서 저지르는 과실이다. 발음은 같지만 의미는 전혀 반대다.

둘의 결정적 차이는 타깃(Target), 타이밍(Timing), 타이틀(Title)의 3T를 고려해 최적화해 말하느냐 여부다. 지당한 이야기보다 중요한 것은 합당한 이야기다. 내 이야기의 유용성 못지않게 상대의 수용성을 고려하라. 대상의 특성, 조언 시점, 주제 초점 등을 고려하는 게 어른의 진정한 주착이다.

둘째, 분수와 푼수의 구분이다. 어른은 분수를 안다. 푼수는 분수(分數)에서 유래했지만 정반대의 뜻이다. ‘분수를 알다’는 자기의 처지에 맞는 한도를 안다는 뜻이다. 푼수는 10푼이 다 못 되는 수로, 생각이 모자라는 경우다. 신세대가 ‘꼰대’라 비웃는 것은 틀린 말을 하거나 함량 부족의 말을 해서가 아니다. 본인이 감당 못하는 말을 해서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이중 기준이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 기준만을 들이대는 게 푼수의 증거다.

본인부터 실행, 실천하고 있는 사항을 이야기하는 게 어른으로서의 분수다. 선의의 의도로만은 부족하다. 거대담론의 온당함보다 작은 실천의 각론과 앞가림에서 타당함을 보일 때 10푼을 꽉 채운 분수가 된다.

셋째, 축적인가, 퇴적인가. 어른은 경험을 축적한다. 축적과 퇴적의 차이는 유연성이다. 경험이 축적되지 않고 퇴적되면 화석이 된다. 꼰대는 “옛날에는…” 하며 과거 성공 경험으로 모든 것을 재단한다. “요즘 애들은…” 하며 진영논리로 구분한다. 자신의 잣대로 의견을 제시하고 그 ‘정답’만 따르도록 강요한다. 그때 맞은 게 지금은 틀릴 수도, 그때는 틀린 게 지금은 맞을 수도 있다. 기성세대의 경험을 존중하고 전수하려면 유연함이 필수다.

유연성은 물렁함이 아니라 말랑함이다. ‘~해야 한다’의 당위형 명제를 ‘~할 수도 있다’의 개방형으로 치환하는가. 과거를 향해 있는가,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가. 유연성과 개방성의 판별법은 쌍방대화인가, 일방통행인가를 살피는 것이다. 나만 옳아서 계도의 대상으로 보이면 십중팔구 꼰대일 가능성이 높다.

끝으로, 통이 큰가, 오지랖이 넓은가이다. 어른은 통이 크지만 꼰대, 광대는 오지랖만 넓을 뿐이다. 통은 그릇, 도량이고, 오지랖은 겉옷인 윗도리의 앞자락을 뜻한다. 통이 크면 상대를 담아낼 수 있다. 오지랖은 넓어봤자 남아돌 뿐이다. 겹치고 덮고 가려 거추장스럽다. 통과 오지랖의 차이는 입으로만 말하는가, 지원의 손도 보태는가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꼰대의 참견도, 광대의 아양도 아닌 어른의 품격이다. 꼰대가 문제가 아니라 꼰대의 말을 할 자격과 품격을 갖춘 어른이 부족한 게 더 큰 문제다. 주책 있고 분수를 아는 통 큰 어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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