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경제지도 바뀐다] 일감 없는 현대중...희망퇴직 간담회 가요

입력 2018-10-04 09:09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해양플랜트 공장 35년 만에 올스톱

▲조선산업과 화학산업이 흥망을 달리하며 울산의 경제지도가 뒤바뀌었다. 울산 현대중공업 인근 ‘현대백화점 울산동구점’이 한산한 반면, 석유화학단지와 에쓰오일 사택이 있는 남구의 ‘현대백화점 울산점’ 거리는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오승현 기자 story@
입구의 경비는 삼엄했다. 취재차량이 진입하려 하자 두세 명의 보안 요원들이 앞을 막아섰다. “회사 지침에 따라 출입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정문 앞에서 10분 정도 흘렀을까. 우두커니 서 있는 취재진을 향해 보안요원이 손가락으로 50m 정도 앞에 있는 주차공간을 가리켰다. 관계자가 나와서 인도할 때까지 거기서 기다리라고 했다. 울산의 세찬 바닷바람이 연신 뺨을 때렸다.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내부에 위치한 노동조합 사무실을 방문했다. 현재 외부인으로서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에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바로 노조 사무실이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업황 악화로 야드에 대한 언론취재를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출근은 합니다. 그러나 일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김형균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이 꽤 길게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현대중공업 해양공장은 지난달 가동을 멈췄다. 1983년 해양공장 별도 준공 후 처음 있는 일이다. 2013년 4조7000억 원에 육박했던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의 매출액은 올해 8000억 원대에 불과할 것으로 관측된다. 해양플랜트 업황 악화가 급속도로 진행됐고, 값싼 인건비로 무장한 싱가포르 등 경쟁 국가의 저가 공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해양사업본부 소속 2600여 명은 순식간에 유휴 인력이 됐다. 해양사업의 불황은 몇 년 전부터 예견됐지만 제대로 대비한 노동자는 많지 않았다. 과거 해양사업부는 조선사업부와 더불어 현대중공업을 이끄는 ‘투톱’으로 꼽혔다. 해양플랜트의 계약 규모는 대부분 건당 10억 달러(약 1조 원)를 웃도는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노동자들은 회사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컸다.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모습. 오승현 기자 story@
과거 해양사업부에서 근무했다는 한 노동자는 “해양플랜트의 경우 용접을 하고 나면 손으로 용접한 부분을 직접 쓸어보며 검사를 진행한다”며 “선주사에서 품질에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조선사의 기술과 경험은 중국과 싱가포르 등 후발주자에 비해 비교우위가 크다는 평가도 받아온 터라 이번 위기도 무난히 지나가리라 여겼다. 공장을 방문하기 전 통화한 백재효 울산상공회의소 울산지역인적자원개발위원회 사무국장은 “현대중공업 원청과 하청 모두에서 퇴직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상공회의소에서는 조선업 관련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교육과정을 개설해 재취업 등을 알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퇴직도 일도 하지 못하는 ‘출근자’는 현재 1200명에 달한다. 해양사업부 유휴인력들은 하루 종일 텅 빈 작업장에서 시간과 씨름하고 있다. 조선업 근로자들은 대부분 ‘반’ 단위 조직으로 구성돼 움직인다. 예전엔 반장과 함께 반이 몰려다니며 일을 했지만, 요새는 반 단위로 희망퇴직 안내 간담회 등에 참석했다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고 연신 담배를 태우는 것이 전부다.

야드에서 불안이 쌓여가는 사이 노사의 장외 대립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측은 해양사업부 인력에 대해 30개월치 기본급 지급 등을 골자로 한 희망퇴직 접수를 받고 있다. 곧 정리해고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노조는 강력히 반발하며 ‘조선 부문으로 전환 배치’를 요구하는 중이다.

울산공장을 뒤로하고 나오면서, 노조 건물 상단에 붙은 표어가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라는 문구가 새삼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