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청춘의 결핍, 연애의 빈곤시대

입력 2018-09-1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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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임철순 이투데이 주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아픈 청춘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말과 같다. 그 말은 ‘청춘 시기에는 고민하고 방황하기 마련이다. 우리도 그런 시기를 거쳐 와서 잘 알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라는 반감이 심하다.

환자들은 위로의 인사에 민감하다. 위로하고 격려한다고 건네는 말 속에 담긴 진실의 무게와 가식의 두께를 본능적으로 재고 알아낸다. 환자는 환자끼리 잘 통한다. 문자 그대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소통과 교류를 한다. 병에 대한 분노와 절망, 치유를 위한 노력과 기구(祈求)는 그들 모두의 공통된 마음이며 한결같은 일이다.

지금 우리의 청춘세대는 늘 아프고 외롭고 괴롭다. 어려운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취업, 결혼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하는 세대를 ‘N포세대’라고 한다.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 5포세대(3포세대+내 집 마련, 인간관계), 7포세대(5포세대+꿈, 희망)에서 더 나아가 포기해야 할 게 너무 많은 세대다. 그런 세대는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거나 자신이나 사회에 대해 공격행위를 하게 된다. N포세대가 늘어나면 전체 사회가 함께 아프게 되고 병들어 간다.

몇 백 년 전에도 그런 사람은 있었다. 조선의 열성 독서가 유만주(1755~1788) 같은 이는 열 가지가 없는 십무낭자(十無浪子)로 자처했다. 운명, 외모, 재주, 세련된 태도, 재능, 재산, 집안, 언변, 필력, 의지 가운데 하나도 없다는 좌절선언이었다. 여러 번 과거에 떨어졌던 그는 책과 자신의 일기 속으로 숨어 살다가 일찍 생을 마쳤다. 삶은 기록으로 남았지만 그 자신은 불운했고 불행했다.

불운과 불행을 이기는 힘으로는 사랑보다 더 나은 게 없다. 자기에 대한 사랑이든 이성에 대한 사랑이든 아니면 하느님 또는 초월자에 대한 사랑이든 어떤 대상을 이해하고 아껴주는 마음이 있어야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발전을 지향할 수 있다.

특히 청춘시기에 남녀 간의 사랑은 이성과 세상을 알아가고 인간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의 중요한 일이다. 그것을 사람들은 연애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 자체가 잘 쓰이지 않고 있다. 김광섭의 ‘연인’이라는 시에는 “어디로 거닐어도 그이뿐입니다/어디를 돌아봐도 그이뿐입니다/지구는 그의 가슴입니다/내 길은 모두 다 거길 갑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의 ‘혁명 이후’라는 시에는 “연애하는 사람들처럼/울기 쉬운 마음”이라는 대목도 있다.

청춘시절의 연애는 일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마음의 힘이 된다. 사랑은 떠나도 그 사랑의 기억과 마음은 남아 시련과 절망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하고 일어서게 하는 힘이 돼준다.

그런데 오늘의 연애는 정신의 교류나 성숙과 거리가 멀다. 연애의 빈곤은 이미 사회 구조적 문제이다. 연예인을 육성 관리하는 연예기획사는 ‘연애기획사’나 마찬가지다. 남녀 연예인이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사귀는 단계라거나 열애(연애가 아니다!) 중이라고 하다가 금세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헤어지기로 했다고 발표하는 식이다. 인기 관리를 한다고 당사자들이 서로 좋아한다는데도 부인하고 출연을 봉쇄하는 경우까지 있다. 연애의 1회성과 부박함을 부채질하는 이런 행태는 쉽게 학습되고 모방된다.

청년들아, 서로 사랑하라.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알고 싶어지거든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을 읽어라. 그 책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는 서는 법과 걷는 법을 배우고 말하는 법과 읽는 법도 배운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빛이 없으면 꽃 한 송이 피지 못하듯 사랑이 없으면 인간으로서 살 수 없다.”

이미 1930년대에 쓴 서정주의 시 ‘바다’에는 “눈 뜨라, 사랑하는 눈을 뜨라 청년아”라는 말이 나온다. 이 가을에 그런 말을 해주고 싶다. 청춘은 가난하고 결핍되고 연애는 빈곤한 이 시대 이 계절에. fused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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