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의 햇살과 바람] ‘띄엄띄엄’이 뭐예요?

입력 2018-08-3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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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거창여자중학교를 다닐 때 다섯 명의 친구들과 늘 함께 몰려 다녔다. 고등학교에 가면 못 놀 거라며 학교가 끝나면 이 집 저 집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다니며 깔깔거렸다. 그 친구들은 고등학생 때는 대학생이 되면 못 놀 거라고 했고, 대학생 때는 졸업하면 못 놀 거라고 했었다.

‘잘 놀자’가 그때의 가장 소중한 가치였다. 어린 시절 전쟁을 겪어서인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무엇을 잘 놀았는지 알 수 없는 그 친구들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부산 서울 대구로 뿔뿔이 헤어졌고 방학이면 다시 얼싸안았다. 그리고 매일 만났다.

누군가가 이름을 짓자고 했고 우리는 그 이름을 ‘행주치마’로 정했다. 다들 찬성했다. “행주치마가 되어 세상의 더러운 것을 닦아내는 여성이 되자”고 다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하지만 그땐 심각하게 만든 이름이었다.

대학에 가선 문학도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친구들과 뭉쳤다. 그 모임의 명칭은 ‘대지(大地)’였다. 당시 펄 벅의 ‘대지’를 읽고 사명감으로 문학의 대지, 인간의 대지, 여성의 대지가 되겠다고 명동까지 나가 맥주를 마시며 손을 걸었던 것이 1963년이다. 다리가 아파도 하이힐을 신고 하루 한 번은 명동을 나가야 그날 할 일을 한 것 같았던 그 시절, “우리는 문학도니까”라고 이유를 붙이며 참 많이 싸돌아다녔다.

대학 3학년 때 결성된 총학생회를 함께한 친구는 12명이었다. 그 친구들과의 모임 명칭은 ‘님회’였다. 서로 서로 ‘님’으로 생각하고 모시자는 것이 그 이유였고 우리가 만드는 사회를 ‘님’처럼 모시는 사회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거룩한 의미도 있었다. 1965년 졸업을 한 후 그 친구들과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만난다.

연애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교육시키고, 드디어 아이들을 결혼시키고 정년퇴직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죽은 친구도 있고 과부가 된 친구도 있고 아들을 잃은 친구도 있다. 모이면 늘 빠지지 않고 대학시절 이야기를 한다. 인생의 어느 순간, 한 페이지도 서로 모르는 일이 없다. 미워하고 욕하면서도 만나면 함께 사는 사람처럼 예쁘고 반갑다.

오십이 되었을 때 문단 친구 몇 명과 마음이 맞아 자주 문학적 담론을 했는데 그때 모임의 명칭은 ‘마흔’이었다. 백 살이 돼도 마흔처럼 열정을 잃지 말고 열심히 쓰자는 이유를 달았던 것 같다. “마흔은 참맛의 출발이요, 인생의 정점”이라고 떠들다 “일생을 마흔같이”라고 외치며 건배도 했다.

김점선(1946~2009) 화백과 함께한 ‘가위’ 모임도 특별했지만 더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모임의 명칭은 ‘띄엄띄엄’이다. 이어령 선생과 이근배 시인, 장태평 전 장관, 정진홍 선생과 함께 서너 번 만난 적이 있다. 이어령 선생이 정진홍 선생을 보고 “이름 하나 지어라”라고 하셨는데, 광주과학기술원(GIST) 다산특훈교수 정진홍 선생이 언뜻 스쳐가는 영감을 잡아 지은 이름이 ‘띄엄띄엄’이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너무나도 매력적인 이름이다.

그런데 여러 이유로 그분들을 오래 뵙지 못했다. 이름을 바꿔야 할까. ‘너무 너무 띄엄띄엄’이라고. 명칭은 무엇인가 그 사람들의 성향이나 핵심을 나타내는 것인가. 아니면 목표를 말하는 것인가. 모임의 명칭은 위트가 있고 핵심이 한번에 잡혀야 좋은 이름일 것이다. 인생의 양념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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