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부부 만남은 없었다

입력 2018-08-2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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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보다 더한 괴로움은 없고, 특히 생이별보다 더한 아픔은 없다. 까짓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사는 결별쯤이야 고통이라고 할 게 못 된다.”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표현한 생이별의 참혹함과 처절함이다.

인생살이에서 가족과의 생이별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 생사 여부도 모른 채 누렇게 바랜 사진 속 희미한 기억만을 붙잡고 살아가던 이산가족들이 만났다. 92세 노모는 71세 아들의 주름진 볼에 하염없이 얼굴을 비볐다. 오열하던 아들이 보여준 사진 속 지아비는 남으로 피란한 지어미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속절없이 세상을 떠났을 게다. 1·4 후퇴 때 갓난아기인 막내만 둘러업고 남으로 내려온 99세 할머니는 일흔이 넘은 두 딸을 보자마자 “아이고” 하곤 말을 잇지 못했다. 67년의 세월이 지나 할머니가 돼 만난 세 모녀는 손을 꼭 잡은 채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모두 반으로 동강난 조국을 둔 죄뿐이다.

누구 하나 눈물겹지 않은 사연이 없다. 얼마나 그립고 서러웠으면 “단 1분만이라도 같이 살다 죽자”고 80대 노인이 오빠를 부여잡고 엉엉 울며 응석을 부릴까. 그런데 이번 상봉 행사엔 부부가 한 쌍도 없단다. 한국전쟁 당시 스무 살이었다면 올해 여든여덟 살이니 그럴 만도 하다. 어쩌면 부부 상봉뿐만 아니라 가족 상봉 자체가 어려워질 날도 머지않았다. 실제 1988년부터 올 7월까지 상봉을 신청한 이산가족 13만2603명 가운데 7만5741명이 이미 세상을 떴다. 생존자 5만6862명 중 85%가 70세 이상 고령으로, 매년 수천 명씩 비원(悲願)을 풀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있다. 갈 길은 먼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상봉 행사의 정례화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하는 이유이다.

상봉(相逢)은 ‘서로 만나다’라는 뜻으로 ‘상우(相遇)’와 같은 말이다. 만남에는 상봉 외에도 조우(遭遇), 해후(邂逅) 등이 있는데, 각각 쓰임새가 다르니 주의해야 한다. 상봉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 ‘중로상봉(中路相逢)’처럼 미리 약속한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만날 경우 쓸 수 있다. ‘중로상봉’은 추석 즈음에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 반나절을 함께하며 회포를 푸는 풍습으로, 우리말로는 ‘반보기’이다. 출가한 여성에게 언감생심 친정 나들이가 허락되지 않던 먼 옛날 이야기이다.

조우와 해우는 ‘우연히’, ‘뜻밖에’ 만났을 때 적합한 말이다. 둘 다 ‘약속하지 않은 만남’이지만 의미상 차이가 있다. ‘조우’는 우연히 만났을 때 알맞은 표현이다. “복잡한 지하철 5호선에서 옛 연인을 조우해 눈짓만 하다 눈물지으며 내렸다”처럼 쓴다. ‘해후’는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남’을 뜻한다. 그러니 어제 헤어진 친구와 오늘 우연히 만났다면 해후라고 할 수 없다. 박경리 소설 ‘토지’에 “이십 년 만의 해후를 기뻐하기는 이들의 심정은 사실 착잡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산 상봉…’ 제목을 달고 뉴스를 보도하는 매체가 여럿이다. ‘헤어짐이 만나다?’ 이런 말은 결코 존재할 수가 없다. 줄이는 것에 익숙한 나머지 ‘가족’을 버리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제대로 쓴 ‘이산가족(離散家族) 상봉’ 역시 한자말로만 이뤄진 게 영 마음에 걸린다. 이산은 헤어져 흩어짐, 상봉은 서로 만남을 뜻하니 ‘헤어진 가족 만나기’로 표현하면 어떨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쉽게 알아듣고 즐겨 쓸 수 있는 말이 최고이다. jsjy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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