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보물선 재림을 막으려면

입력 2018-08-0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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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용 자본시장부장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그날 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얼음처럼 차가운 공포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팔과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 돈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된 순간, 나는 갑자기 공포에 휩싸였다. 내 인생이 이번 한판의 도박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죄와벌’로 유명한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1867년 출간한 ‘도박사’의 한 대목이다. 신비주의, 실존주의적 작가로 각인됐던 그가 심각한 도박 중독자였고, 평생 도박 빚에 시달렸다는 사실, 또 도박 자금 마련을 위한 생계형 작가였다는 사실이 꽤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요즘 같은 시장 침체기에는 손실이 너무 커서 자포자기하는 투자자가 눈에 띄게 늘기 마련이다. 또 한편에서는 본전 회복을 위한 초강수를 두기도 한다. 평소에 분산투자와 손절매 원칙을 잘 지키는 투자자들도 손실이 누적되면 마음이 급해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본전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베팅은 과해지기 마련이다.

사기로 결론 날 가능성이 커졌지만 이번 보물선 사태는 이런 심리를 노리고 등장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발 빠르게 움직였고, 개인적인 차이는 있지만 투자자들 역시 예전 동아건설이나 삼애인더스 당시에 비해 차분히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전무후무한 가장 자극적인 펄로 인식되는 보물선 테마가 상한가 한 방으로 사실상 마무리 수순에 돌입한 셈이다.

“도박처럼 주식시장은 언제나 더 큰 자극을 원한다. 이번 보물선 사태로 확실히 증명됐듯이, 이제 시장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펄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시장에서 꽤 알려진 어느 선수의 말처럼 짧은 기간이지만 ‘돈스코이 호’가 시장에 던지는 교훈은 꽤 크다.

20년 가까이 주식시장의 옵서버 역할을 해온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지금의 장은 쉬는 게 최선의 투자 전략으로 보인다. 쉰다고 아예 물러나 있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투자자들이 범하는 중대한 실수 가운데 하나가 큰 추세를 놓치는 것이다. 대개는 시장에서 물러나 있다가 추세를 예측하려 한다. 주식에서 일관된 예측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추세를 놓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항상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다. 다만 그때까지 손실 최소화에 주력해야 한다.

현금도 주식과 마찬가지로 한 종목이라 생각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현금은 시장에서 어떠한 돌발 변수가 발생해도 결코 꿈쩍도 하지 않는 완벽한 하방 경직성을 지닌 종목이다. 또 기회가 왔을 때는 시장에 참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상승 추세에서는 주식 비중을 높이고, 하락 추세에서는 현금이라는 종목의 비중을 높이는 게 유일한 해답이다.

원칙도 위험관리도 없는 투자는 손실만 키우기 마련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기본이다. 마음이 ‘대박’이라는 콩밭에 가 있는 투자자들에게 ‘기본’이니 ‘원칙’이니 하는 말들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장은 언제나 그랬듯이 급한 투자자들을 주시하고 있다가 ‘보물선’ 같은 일격을 가해 치명상을 입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장세에서 필요한 원칙은 이익보다 생존이다. 시장은 하락이 있으면 반드시 상승이 오기 마련이다. 주식시장 경험이 있는 투자자라면 모두가 아는 기본이다. 그러나 일관되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예전에 대박의 기억을 갖고 있는 투자자들은 더 그렇다. 하지만 시장은 특성상 특정 구간에서 특정 종목이 급등할 때 공교롭게도 본인이 그 종목을 선택할 수 있다. 천부적인 투자 감각이나 노력이 아닌 오로지 운일 확률도 꽤 크다는 의미다. 도박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개인의 노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으면 중독성이 더 강해지기 마련이다. 심판보다는 본인이 직접 동전을 던져 승패를 가르는 것이 훨씬 흥미로운 이유기도 하다.

<사족>악명 높은 선장 플린트가 숨겨놓은 보물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외다리 해적 존 실버의 이야기나 인디아나 존스가 성궤를 찾아 떠나는 모험 등을 보고 자란 세대다. 개인적으로 보물선의 존재를 믿는다. 다만 키덜트의 동심(?)을 위해서라도 돈스코이 호는 바닷속에 그대로 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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