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선 칼럼] ‘의도한 잘못’이 된다

입력 2018-07-1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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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즈파트너스 대표이사

세상에 악한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악한 행동이 성립되려면 반드시 ‘의도성’이 포함돼야 한다. 선한 사람도 의도와는 다르게, 어쩔 수 없이, 결과를 알 수 없기에, 원치 않는 악을 저지르곤 한다. 누군가 ‘의도하지 않은’ 악을 저질렀을 때, 우리는 결과론적으로 그를 악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응당한 벌을 준다.

반대로 어떤 때는 정상이 참작돼 벌를 경감해주거나 면해주기도 한다.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면 몰랐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의도’의 여부는 가치 판단에 있어 큰 무게추로 작용한다. 어찌 보면 자기합리화로 악용될 여지도 있으나 좋게만 보자면 참 다행스러운 처사다.

최근 인터넷 신문에서 ‘식약처, 탈모 화장품 온라인 과대광고 무더기 적발’ 제하의 뉴스를 접했다. 내용을 살펴보니 탈모 제품들이 의약외품에서 기능성 화장품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미처 광고문구를 수정하지 못해 발생한 사례가 있어, 당국이 시정, 경고, 행정처분 등의 조치를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탈모 제품이 기능성 화장품으로 전환되는 과정의 행정 태도를 근접거리에서 접했던 필자에게 있어 이런 보도자료는 말 그대로 ‘성과 보여주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식약처에서 변경된 법령에 대해 세부지침을 제대로 알려주기만 했어도 업체들은 ‘시정’하고 ‘경고’받을 이유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대중의 시대다. 사람도 많고, 직업도 다양하고, 정신세계도 다들 똑같지 않은 만큼 사건의 행태나 이를 쳐다보는 가치관도 다양하다. 그러나 연예나 트렌드 뉴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건에서 보편과 정도가 있을 뿐 다양한 시각이 전제되진 않는 것 같다. 누군가 불을 지피거나 불을 끄고, 또 누군가는 휘발유를 들이붓는 역할을 한다. 그 과정에서 열(劣)의 모양새를 띤 곳은 적이 되거나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비난의 꼭짓점에 도착하면 우여곡절의 과정은 깡그리 무시된다. 법원의 판단에 앞서 이미 인민재판이 끝나 처형대로 올려지고 있다. 불만 지피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은 이미 처형됐다.

대표적인 것이 1989년 삼양라면 ‘우지파동’이다. 쓰면 안 될 공업용 기름을 썼다고 식약처가 발표했으나 결국 깨끗한 2등급 우지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기업은 이미 수천억 원의 손실과 임직원 1000여 명이 퇴사하고 난 이후였다. 2009년 ‘쓰레기 만두’ 파동은 또 어떠한가. 정부는 연일 25곳의 의심 제조업체를 공개했고, 언론도 덩달아 선정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업계는 자연스레 사면초가 상황에 놓였었다. 수년 후에 ‘쓰레기 만두는 무해했다’로 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제조업체 사장 중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였다. 2015년의 ‘가짜 백수오’ 사건도 결국 해당 업체는 혐의를 벗었지만 재정적 손실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국내 백수오 농가는 하루아침에 희망을 잃었다.

의심이 가는 것이라도 정제되지 않은 정보는 릴리즈에 있어 조심해야 한다. 의도하지 않았다면 다행이다. 그런데 그 의도가 이슈를 만들기 위함이거나, 혹은 각 행정부처의 업무 성과를 포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관행이었다는 말로 떠넘길 시대도 지났다. 식약처의 조심스럽지 못한 발표 하나로 중소기업과 임직원은 생계를 잃을 수도 있고 농가는 쑥대밭이 된다. 제대로 된 행정지도만 있었어도 이번 탈모 화장품의 시정명령과 행정처분은 그 수가 상당히 줄었을 것이다. 잘 몰랐기 때문에 ‘시정’ 조치를 했다는 것으로 면피하지 말고, ‘잘 알 수 있도록’ 행정지도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단속은 계속해야겠지만, 법령의 지침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아니면, 단속이 아니라 ‘계도’라도 했어야 옳았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누구에겐 행복을 빼앗는 잘못이 된다.

의도의 여부가 가치 판단의 중요한 잣대가 계속되기를 희망해본다. 누구라도 실수를 할 수 있다. 의도하지 않은 실수라면 사과하고 반복하지 않으며 고쳐나가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는 ‘의도한 잘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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