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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속으로] 합병비율 논란과 시사점
입력 2018-07-12 10:57   수정 2018-07-12 11:01
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소장

▲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소장
필자는 지난 3년간 SK부터 삼성, 롯데, 최근 현대차그룹까지 대한민국 최고 그룹들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을 몸소 경험했다. 지주사로 전환한 롯데를 제외한 기업 대다수는 개편안에 합병 결정을 포함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주주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당연히 자신이 보유한 주식이 상대 회사 주식과 어떤 비율로 교환되는가, 즉 합병비율이었다. 한국은 합병비율을 법으로 정하고 있어 당사자 상호 간 ‘협의’로 가격을 산정하는 미국, 영국, 일본과 큰 차이를 보인다. 적대적 인수합병(M&A)에 한해 합병 가액의 하한을 법으로 정하는 독일과도 결이 다르다. 문제는 이렇게 ‘합법적’으로 정해진 가격이 얼마나 ‘합리적’인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2015년 SK C&C와 SK주식회사의 합병 건은 상장사들이 교훈으로 삼을 만한 사례다. 현행법상 상장사의 합병가액은 합병 결의 전일, 1주일, 1개월 전 가중 평균 주가로 결정된다. 양사는 각각 12%와 23.8%씩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했는데, 이 사실을 합병과 동시에 공시해 문제를 키웠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발행 주식 수 자체를 영구적으로 줄이는 것이므로 주가는 당연히 오르게 돼 있다. 이로 인해 그 가치만큼 합병비율이 달라지므로, 자사주 소각공시는 ‘합병 공시 전’에 이뤄졌어야 했다. 합병 당시 0.02%에 불과했던 그룹 총수의 기존 지주회사인 SK주식회사에 대한 지분은 합병 이후 23.4%로 확대됐고 SK주식회사 주주들의 권익은 상대적으로 열위에 처하게 됐다. 지주사 전환을 위해 어느 정도 메리트가 필요하다고 해도 절차상 명백한 흠결이었다.

비상장사 합병 건에서도 절차적 타당성의 오류는 쉽게 발견된다. 최근 철회된 현대차그룹 개편안은 최대주주 관련 딜에서 상장사가 비상장사로 전환되면서 가치평가에 자의성이 커진 경우다. 현행법상 비상장사의 합병 가액은 자산가치 40%와 수익가치 60%를 합산한 본질가치로 산정한다. 알짜 사업부를 넘기는 현대모비스의 주주 입장에서는 100% 수익 가치로 평가받고 싶을 테지만 그럴 수 없었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글로비스가 이를 가능한 한 낮은 가격으로 매입해야 오너가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모비스 일반 주주들의 권익은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됐다. 합병 주체는 사업의 이익 창출력을 평가하는 현금할인법(DCF)상 이론적, 실무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수익가치를 낮출 수 있다. 공정 합병가격 산출에 필요한 유사 기업 선정에도 자의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 밸류에이션에 정답은 없다지만 논란을 피해갈 수는 없다.

현행 합병제도는 최대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다.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 미국처럼 합병 조건(Fair Price)뿐 아니라 합병 거래(Fair Dealing) 자체에 대한 ‘절차적 공정성’까지 엄격히 요구하는 사례(Entire Fairness Test)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영미권, 일본, 독일처럼 사전 공시 절차와 이사회 역할을 강조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겠다.

현행 합병제도의 세부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합병 공시에 대한 엄격한 절차와 세부 기준, 업종마다 적합한 다양한 평가 모델을 활용하는 것이다. 상장사 간 합병 시엔 가격과 가치의 괴리가 클 경우 가격 재조정 기준을 생각해 볼 수 있고, 비상장사 합병의 경우 사업, 순자산, 이익 면에서 최대한 유사한 기업과 비교할 수 있도록 기준을 좀 더 촘촘히 정할 수도 있다. 또한 단일 회계법인이 한 그룹 내 별도 계열사 간 합병 거래를 평가하는 관행도 이해상충 문제를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다. 상법상 주주 평등의 원칙과 민법상 쌍방대리 금지와 같은 일반 법리를 자본시장법에 단계적으로 충실히 반영할 필요도 있다.

지배주주는 법이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자신에게 최대한 유리한 합병 조건을 선택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기업의 행위 자체를 문제 삼긴 어렵다. 다만, 적어도 절차만큼은 해당 거래 당사자들뿐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이 모두 수긍할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공정해야 한다. 내용은 형식과 더불어 완전하다. 공정한 가격이 공정한 절차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형식은 현상의 선험적인(a priori) 조건이다.’ 약 250년 전 칸트가 남긴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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