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근로시간 주는데…‘워라밸’은 빛 좋은 개살구

입력 2018-06-1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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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산업2부 기자

“가시적인 숫자만 줄인다고 ‘워라밸’이 실현될까요. 시간만 단축하는 것일 뿐 업무량이 줄어든 건 아니니까요. 오히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만 커집니다.”(30대 직장인 박모 씨)

7월 1일부터 근로시간 단축제가 시행되면서 본격적으로 ‘주 52시간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제도 시행의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당초 일·가정의 양립 실현을 통해 삶의 질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달리 부작용과 후유증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해내야 할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인력 충원 없이 근로시간만 줄인다고 하니 퇴근 후 집이나 카페에서 업무를 이어가는 자발적인 야근을 강요당하거나 점심시간· 휴게시간도 업무에 할애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회사 규모가 작거나 근로시간 단축 예외 업종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국내 유통기업들은 규모와 여력이 되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선제적으로 변화에 대응해 왔다. 대형 마트들은 1시간 폐점 시간을 당겼고, 백화점과 홈쇼핑업계는 PC-OFF제를 시행하고 있다. 유연근무제를 마련해 연장근무를 할 경우 다음 날 근무시간에서 해당 시간을 차감하도록 했다. 반면 일부 업체들은 “이미 우리는 주 52시간 이하로 근무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현 정부가 기대하는 고용 창출 효과보다는 인력을 늘리지 않으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생산 비중이 높은 식품 제조업이나 규모가 작은 중소·중견 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근로시간 단축까지 맞물려 비용 부담 증가가 불가피하다 보니 여력이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근로시간 단축제의 본질은 우리나라의 근로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형식적으로 시간만 주 52시간으로 맞춰 놓았다고 ‘워라밸’이 실현되지는 않는다. 직장인들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가장 기대하는 효과는 ‘삶의 질’ 개선이다.

기업은 법을 지키고자 표면적인 시간 줄이기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업종과 직무 특성을 고려한 대응책을 마련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직원들의 실질적인 ‘워라밸’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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