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더 읽기] 산은, 한국지엠 법정관리 신청했어야 했다

입력 2018-05-0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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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기업금융부 기자

제목부터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미 산업은행과 GM의 한국지엠 자금 지원안이 확정된 상황에서 법원 주도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얘기를 꺼내는 것을 쉬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 회사가 망하는 줄 아는 국내 정서상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 산은이 '한국지엠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어야 했다'라는 논거는 무엇일까.

이유① GM은 최대 주주이자 최대 채권자, 한국지엠을 포기하기 어렵다 = GM이 한국지엠의 최대 주주이자 최대 채권자(채권 전액 보유)란 게 첫 번째 이유다. GM은 자기 돈을 꺼내 자신이 소유한 회사에 빌려줬다. 한국지엠의 부채를 늘린 것은 GM이며, 그 부채를 상환하거나 또 이를 유예할 수 있는 권한 역시 GM이 갖고 있다. 여기에 한국지엠의 지분 대부분을 GM(76.96%)이 보유하고 있다.

이는 무슨 뜻일까. GM이 한국지엠의 주주와 채권자 속성을 모두 지닌다는 얘기다. 더 상세히는 회사가 정상 경영 상태일 때는 주주로서 한국지엠의 흑자를 도모하며, 회사가 부도 위기일 때는 채권자로서 채권을 회수하는 유인 체계를 지니고 있다. 우리 사주를 보유한 노동자가 주주이자 임금 채권자인 것과 같은 이치다. 다시 말해 한국지엠의 경영(존속)과 회생 동기 모두를 GM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산은이 GM의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발표 이후인 2월께 이 회사의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법원은 회생계획안을 인가하기 전에는 모든 채무를 동결한다. GM은 단 한 푼도 본사로 가져갈 수 없다. 이어 법원이 선임한 관리인과 조사위원이 회사를 실사한 뒤 회생계획안을 마련한다. GM의 경우 최대 주주이자 최대 채권자이기 때문에 기업회생절차 과정에서 법원이 모든 채무를 출자전환하고, 대주주의 지분은 감자됐을 것이 유력하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GM은 한국지엠의 최대 주주로서 경영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채권 상환의 성격이 분명하지 않다”며 “법원 역시 이런 경우 채권은 출자전환하고 대주주의 지분은 감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GM은 주주이자 3조 원에 달하는 채권자인 속성상 한국지엠을 바로 포기하기 어렵다. 두 가지 유인 체계를 모두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 역시 GM이 직접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할 가능성을 굉장히 낮게 봤다. 이 때문에 산은은 물론 GM 역시 법원의 조치 이후 한국지엠에 신규 자금을 투입했을 것이 유력하다. GM이 먼저 “한국지엠의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겠다”는 카드를 꺼내 흔들며 압박하기 전 산은이 먼저 이를 신청, 선공에 나설 수 있었다.

이유② ‘기업회생절차’ 카드만으로 구조조정에 성공했다 = 산은이 한국지엠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어야 하는 두 번째 논거는 ‘GM이 구조조정에 성공했다’란 사실 때문이다. GM은 비정규직은 해고했으며 대규모 희망퇴직을 받았고 군산공장의 문을 닫았다. 한국지엠 노조는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갈 경우 노동자가 더 큰 양보를 해야 될 것으로 우려했다. 막판 합의에 나선 배경이다.

하지만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기 전, 이미 GM은 ‘신청한다’는 카드만 꺼내 흔들며 구조조정에 성공했다. 정부와 산은 역시 막판에는 노조의 양보를 촉구했다. GM의 구조조정 성공을 조력했다. 해고된 직원이 세상을 등져도 변한 건 없고, 변하지도 않는다.

GM과 한국지엠 노동자 모두 채권자인데, 한 채권자가 다른 채권자에게 대폭 삭감과 양보를 요구하는 불평등이 발생했다. 채권자 동등의 원칙에서 어긋난다. 그러나 법원하에서는 동일 선상에서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다.

궁금증① 산은은 기업회생절차 신청을 아예 배제했나? = 그럼 산은은 한국지엠 기업회생절차 신청을 전혀 검토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했다. 이번 협상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산은은 한국지엠 기업회생절차 신청을 법무법인 세종 등에 자문했다. 산은이 직접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을 때에 유리한 점 역시 분석했다. 통합도산법은 회사의 지분 10%를 보유한 주주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왜 안 했을까. 산은은 대규모 기업의 구조조정 주도권을 법원에 넘기려 하지 않는다. 올해 6월 일몰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의 2년 재연장을 산은과 금융당국이 바라고 있는 것과 같은 논리다. 사전 동기에 해당한다. 사후 동기로는 한국지엠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 산은은 국정조사를 받아야 한다. 이 경우 2010년 산은과 GM이 맺은 ‘장기발전 계획서’부터 2013년 우선주를 상환받은 것까지 모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 때와 마찬가지로 ‘과거는 덮고 가자’는 논리가 작동했을 것이란 얘기다.

궁금증② 8000억, 출자가 대출보다 유리했나? = 산은이 한국지엠에 투입하는 7억5000만 달러(8000억 원)를 출자가 아닌 대출로 실행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산은이 해당 자금을 한국지엠 상환전환우선주에 투자하는 것은 지분율(17.02%)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주요 의사결정에 반대할 수 있는 비토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해당 우선주는 2024년부터 상환받거나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다. 산은은 이를 모두 보통주로 전환, 지분율을 유지하거나 늘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분율이 17%이든, 30%이든 대주주가 아닌 이상 이 숫자가 주는 권한의 차이는 없다. 지분율을 조금 늘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비토권 역시 10년 시한부다. 앞으로 9년 뒤 다시 협상에 나서야 한다. 또 지분율이 낮아진다고 해서 주주 간 계약서에 비토권을 넣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빚은 그렇지 않다. 산은이 한국지엠 대출 비중을 늘리면 대주주가 아닌 이상 유용성이 떨어지는 주식보다 더 큰 영향력을 GM에 행사할 수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주식과 채권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 좋지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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