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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기획_도전하는 여성 (27)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여자 무서워 겸상도 안 하겠다니…미투 본질 모르는 무식한 발언”
입력 2018-04-20 10:22
45년간 94만 건 법률상담·화해조정, 호주제 폐지 등 주도…‘여성지도자상’ 수상 고질적 가부장 의식이 부른 ‘미투운동’… 체계적 성평등 교육 조직문화 개선 필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여성과 남성으로 태어났을 때 모든 법이나 제도, 사회구조학적으로 똑같이 행동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특히 가정은 인간의 존엄성과 양성평등하에 움직여야 합니다. 사회가 변하고 인식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가정의 문제는 미묘하고도 세밀합니다. 사회 흐름에 맞게 의식구조를 바꾸는 노력을 지속해야 합니다.”

곽배희(72)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은 이같이 말하면서 사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선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과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단위인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발전하고 그 안의 구성원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곽 소장은 1969년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3년 국내 최초 민간법률구조 기관인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상담위원으로 일을 시작했고, 2000년 소장으로 취임해 상담소를 이끌고 있다. 45년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몸담으면서 94만여 건의 법률 상담과 화해 조정을 통해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을 직접 도왔다. 또 법률구조사업에 기반을 둔 가족법개정운동에 나서 동성동본금혼 폐지 및 호주제 폐지, 이혼숙려제도 도입 등을 이끌어냈으며, 1998년 가정폭력특별법 제정 시엔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국 특유의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성차별적 의식구조를 바꾸고 올바른 성 관념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 자문위원 활동과 교육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곽 소장은 여성들의 가정문제 법률구조와 가족법 개정 운동에 힘써온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제16회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를 만나 한국 사회의 여성, 그리고 가정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이며, 가정문제 법률상담을 하면서 나타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법 개정 사안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봤다. 또 최근 한국사회에 거세게 불고 있는 미투(me too·나도 말한다) 열풍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들어봤다.

-우선 ‘제16회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소감은?

“영광스럽고 기쁘다. 1대 소장을 지낸 고 이태영 선생께 배운 대로 따라한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일에 대한 보람과 가치를 깊이 있게 깨닫게 됐다. 활동적인 성격이 아니어서 상담소의 목적에 맞게 이 안에서 조용히 업무를 수행했고, 때론 상담소 일과 연관돼 있을 때 서슴지 않고 밖에 나가서 일했는데 그런 것들이 쌓여서 상을 받은 것 같다.”

-18년째 소장을 맡아 상담소를 이끌고 있다. 그간의 소회는.

“우리사회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곳이 우리 상담소다. 내 안방 이야기를 아무에게나 할 수 없지만 여기 오면 그걸 다 털어놓는다. 안방 문제를 들여다보는 사회의 최일선이라고나 할까. 가정이 사회의 기본단위이니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각계각층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가정과 연결돼 있다. 특히 가정문제, 부부 사이, 부자지간, 아들·딸 사이 등 문제가 생겼는데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법을 몰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면 우리를 찾는다. 지난 한 해 15만여 건의 상담을 했다. 가사 사건은 법보단 화해 조정을 통해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 사건 당사자는 남이 아닌 혈연 관계로 맺어져 있으므로 소송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나를 필요로 하는 여성들이 울면서 하소연하는 말을 들어주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다.”

-우리나라 여성·가정 문제의 현주소는 어떤가.

“근본적으로 가족 내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시대별로 사회 인식이 변화하면서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1950~60년대 후반에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하던 때라 남편의 외도와 폭행, 남편 가족과의 갈등이 주를 이뤘다면 1980~90년대는 삶의 질에 대한 문제로 바뀐다. 소통불가, 불성실, 무능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이지만, 정신적·심리적인 부분이다. 2000~2010년대에 들어오면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면서 삶의 질에서 ‘존중’에 대한 가치를 중시하게 됐다. 오랜 기간 구속받고 핍박받았던 여성들은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는 반면 남성들은 부모 세대에 빗대어 변화를 거부한다. 지금도 가사와 육아를 공동의 일이 아닌 여성의 몫으로 생각한다. 역할과 의무, 책임 등의 깨달음 없이 가정의 화목을 위해 아내의 의견을 듣고 돕는 셈이다. 양성 평등이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편견과 인식구조를 바꾸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 미투 열풍이 거세다. 미투 열풍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최근이지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가부장적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 전반적으로 남녀에 대한 이중적 잣대를 갖고 있었다. 성에 대한 무도덕, 부도덕한 가치의 기준을 지니고 있었고, 가정 내에서 외도가 성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수십 년 전부터 가정문제뿐만 아니라 사회문제가 될 것으로 보고 외도 문제를 이야기해 왔으나, 이론적으로만 ‘나쁘다’라고 생각할 뿐 아내에 대한 폭력과 별개로 봤다. 지금 일어나는 미투 운동은 당연한 거다. 이 같은 운동으로 성폭력이 근절돼야 한다.”

-곽 소장이 생각하는 해법이 있다면?

“어떤 제도나 법적 장치를 통해 가해자를 구속하고 높은 형량을 주는 것으로는 역부족이다. 사후 대책이 중요하다. 의식이 변해야 한다. 부적절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이 옳지 않음은 물론 더 나아가 범죄라는 인식이 특히 남성들에게 의식화돼야 한다. 또, 어린 시절부터 적절한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시킴으로써 ‘이건 안 되는 일’이라는 인식이 체화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직장 내에서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직장 안에서는 개인을 넘어 사회인에 대한 형벌이다. 직장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사평가, 고과점수 등을 통한 징계, 퇴사 절차로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조직문화를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지속성이다.”

-미투 운동의 반작용으로 여성을 배제하는 펜스룰까지 등장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미투 운동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잘못된 행동임을 깨닫기는커녕 ‘같은 자리에서 식사도 안 한다’는 것은 무식한 발언이다. 자기 자신이 그만큼 미숙하다는 이야기이며, 남성들의 인식 수준을 드러내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같이 일은 하되 인간으로서 사회통념상 허락되지 않는 일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개방된 사회에서는 내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스스로 구분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여성 인권 혹은 가정문제와 관련해 새롭게 만들거나 개정해야 할 법이 있다면.

“호주제가 폐지됐지만, 여전히 아버지 성을 따르는 것이 당연시돼 있다. 단서 조항에 혼인신고 시 부모가 합의하면 합의한 성을 따른다고 돼 있으나 혼인신고를 하면서 자녀의 성에 대해 고민하는 부부가 몇이나 되겠는가. 의논 자체가 안 된다. 자녀가 출생한 후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성을 따르도록 바꿔야 한다. 결혼은 안 했지만 아이가 있는 여성이 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미혼모 대신 비혼모라 부른다. 결혼을 못 한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안 한 엄마란 의미다. 이들을 도울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곽 소장의 목표는?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법을 모르기 때문에 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당하는 일이 없도록 가정 법률 적용의 저변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법률복지도 국가의 사회복지제도 틀 속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계속 늘어나는데 정부 지원 예산은 매년 줄거나 동결된다. 예산 확보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이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곽 소장은 1973년부터 국내 최초 민간법률구조 기관인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상담위원으로 일을 시작했고, 2000년부터는 소장으로 상담소를 이끌고 있다.고이란 기자 photoe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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